서란은 유흔이 곁에 있기에 어둠을 바라볼...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작은 세상의 비망록(6-2)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5/02 [10:24]

서란은 유흔이 곁에 있기에 어둠을 바라볼...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작은 세상의 비망록(6-2)

이슬비 | 입력 : 2017/05/02 [10:24]

제6장 작은 세상의 비망록(2)

 

[지난 글에 이어] 서란은 방문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초는 서란의 바로 옆에서 여전히 주황색 불꽃을 밝히며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무서워?”
 
유흔이 물었다. 서란은 한 번 웃었다.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올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섭지 않아.”


?”

 

유흔이 있으니까.”
 
유흔은 방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등을 기대어 앉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문살에 바른 종이 위로 겹쳐졌다.
 
유흔.”

?”

 

유흔은 항상 내 곁에 있어줄 거지?”


그래, 항상 네 곁에, 우리 화야 곁에 있어줄 거야.”


정말? 그러면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줄 거지?”


그래, 항상 네 곁에, 우리 화야 곁에 있어줄 거야.”


정말?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어줘야 한다?”


. 그래, 그럴게.”


정말? 약속하는 거다?”

 

그래, 약속할게.”
 
대답이 거듭될수록 유흔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더욱 짙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유흔은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유흔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더욱 짙게 묻어 나와, 어느새 노래 전체를 적시고 있었다.
 
kyrie, kyrie, kyrie,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eleision, christe, eleision
kyrie, elei, kyrie,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유흔은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반짝이는 눈물이 손가락에 묻어나왔다. 또다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유흔은 자꾸만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유흔, 울어?”


아니야. 안 울어.”
 
유흔은 눈을 깜빡여 애써 눈물을 달랬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서란이 알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유흔.”


?”


울지 마.”


…….”


울지 마, 유흔.”


…….”


유흔마저 없으면 나는 또 혼자야.”
 
서란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서란은 무릎을 세우고 손을 포개어 얹었다. 그 위에 머리를 기댄 서란은 또다시 유흔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 두고 어디 가지 마. 유흔마저 없으면 나는 또 혼자야.”
 

 
어둠에 삼켜지지 않는 것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고,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어둠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카무이신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인간들에게 가장 잘 일 깨워준 스승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카무이신이 아니고, 카무이신처럼 될 수 없는 법. 인간은 결국, 누군가가 곁에 있지 않으면 어둠을 바라볼 수 없었다.
 
서란 또한 그러하였다. 서란은 유흔이 곁에 있을 것을 알기에 어둠을 바라볼 수 있었고, 유흔은 서란을 두고 갈 수 없어 방문 뒤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어둠이 빛에 의해 서서히 사라지고, 세상이 희부옇게 밝아올 무렵, 유흔은 방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는 서란이 다 녹아가는 초에 의지해 미동도 하지 않고 방 안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야.”
 
유흔은 서란을 불렀다. 미동도 하지 않고 어둠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서란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조각상을 깎아 놓은 것처럼 차가운 표정과 눈길에 유흔은 얼른, 서란을 품 안에 끌어안았다. 그러나 서란의 눈길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내가 왔어.”


…….”


나 왔어.”


…….”


너 두고 어디 안 갔어.”


유흔.”


?”


알아. 유흔은 항상 내 곁에 있을 거잖아. 나 두고 어디 안 갈 거잖아.”
 
말을 마치자마자 서란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유흔은 털썩, 하고 품 안에서 무너지는 서란의 몸을 단단히 받치고, 머리를 무릎에 뉘여 놓았다. 간밤의 긴장이 풀린 것인지 잠이 든 서란의 손에는 굳어진 촛농과 이빨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
 
유흔은 서란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 방 안에 가득 풀어둔 쥐와 뱀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방 안에는 핏방울들이 곳곳에 튀고, 쥐와 뱀들의 잘린 머리와 몸통들이 한가득 널브러졌다.
 

 
고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서란은 한동안 본국검법 수련을 시작하지 못했다. 독이 없는 뱀들이었다 해도 이빨자국을 통해 세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서란은 한동안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드디어 서란이 붕대를 푸는 날이 되었다. 유흔은 서란의 손을 잡고 연무장으로 가 목검 하나를 쥐어주었다. 서란은 처음 보는 신기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듯 목검을 만지작거렸다.
 
이제부터 우리 화야도 검을 배우는 거야. , 우리 화야가 배울 검법은 본국검법인데, 본국검법은 이렇게 넓고 탁 트인 곳에서 사용하기 좋아. 왜냐하면…….”
 
한참을 설명하던 유흔은 멀리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한 사람이 하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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