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아코디언 소셜펀딩

김석호 기자 | 기사입력 2016/05/24 [13:40]

‘바람의 노래’ 아코디언 소셜펀딩

김석호 기자 | 입력 : 2016/05/24 [13:40]
1940년대 후반 초등학교 시절 음악을 배워 본 적도 없는 소년은 풍금을 좋아했다. 학예회 연습곡을 연습하던 중 담임선생님께서 풍금을 연주하라고 해 풍금을 배워본 적도 없는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풍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소년도 놀라고 신기해했다. 칠십 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냥 스스로 희한했다며, 지금 생각해도 그게 어떻게 연주가 되었을까 신기해하는 이. 그 소년이 바로 시대를 연주한 마에스트로 아코디어니스트 심성락이다.
 
 
아코디언을 처음 본 순간
경남고등학교 1학년 시절 부산 광복동 악기상에서, “아코디언을 처음 본 순간 금방이라도 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후 그 악기상에서 살다시피 하며 가게를 대신 봐주곤 했다. 독학으로 연주 실력이 일취월장 늘어가던 중 부산 KBS방송국에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생겼고, 악기상 사장의 추천으로 반주를 시작하게 된다.
 
1956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사람이 귀한 때라 군예대 대장의 간곡한 입대 권유로 들어갔고 결국 논산 제2훈련소 군예대 악장(樂長)까지 맡게 된다. 이때 나이가 21살. 근성과 책임감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하면서 편곡과 화성학을 배우게 되었고, 음악공력이 배가 된다.
 
전역 후 카바레에서 일하다가 지구레코드사 사장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지금의 실력을 쌓은 것 역시 이때 장충동 녹음실 세션으로 들어가면서 대가(大家)들과 함께 연주하며 보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50명이 함께 연주하며 한 사람의 연주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아날로그 녹음 방식이었기에 항상 긴장하고 집중하면서 연주를 하다 보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오르간과 아코디언 전문 연주자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다.
 
▲ (사진 = EBS 지식채널e 화면캡처)
 
사고로 잃게 된 마에스트로의 절친
대중음악의 전설로 불리우는 팔순의 아코디어니스트 심성락. 그는 최근 사반세기를 함께해 온 악기(슈퍼 파올로 소프라니 5열식, 이태리산)를 잃었다. 4월초 서울 군자동 자택에 화재가 나면서 그 악기도 잿더미가 되었다.
 
현관 옆에 두었던 악기라 집어 왔으면 될 터였지만 당신의 실수로 행여 인명 피해라도 날까봐 뛰쳐나간 팔순의 악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쳐 이웃들에게 알리고, 119에 신고를 하는 등 악기를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심성락의 연주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역사
심성락의 연주 이력은 그대로 한국 대중음악사가 된다. 패티김, 조용필, 이승철, 신승훈, 김건모 등 국내 가수 열중 아홉은 그의 음악이 채색되었다. 현재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등록된 그의 연주곡만 7천여곡, 음반은 1천여장에 이른다.
 
▲ (사진 = EBS 지식채널e 화면캡처)
 
그에게 불었던 시련의 바람
2009년 대중가요 사상 최고령 뮤지션의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발매소식과 활발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세상 밖으로 노구를 이끌고 나온 이 거장은 당시 깊은 상처를 입고 사람을 믿지 못할 정도로 고통 속에 빠진다. 지인들에게 이용당하면서 받은 상처와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나를 살린 건 후배들과 젊은 팬들이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나선 2010년 GMF(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서 ‘최고의 순간’과 ‘최고의 공연’ 어워드 2개 부문을 수상하고,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1백회 특집’과 ‘EBS space공감’ 출연을 계기로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렸고, 마침내 2011년 6월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초로 생존하는 연주자에 바쳐진 헌정공연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라 뜨거운 눈물을 보인다. “음악이 싫어진 나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후배들과 젊은 팬들이었지요”

 



 
 하지만 낯선 아코디언은 노장의 그것과는 달랐다
무대 위에서 그의 연주는 빛이 났다. 앉아서 연주하는 그의 무릎위에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해 보이는 낯선 아코디언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인에게 빌려 연주한 아코디언이 내는 소리는 노장의 그것과는 많이 달리 들렸다.
 
당시 ‘Right Now Music 2016’ 최성철 대표를 비롯한 조직위 식구들은 각방으로 노력하기 시작한다. 이 노장의 악사에게 생명과도 같은 악기를 헌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모았고 이를 위해 소셜펀딩을 제안한다.
 
 
전설의 부활을 알리는 소셜펀딩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생존하는 연주자에게 악기를 헌정하고, 그 후원자들에게 소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감사의 공연을 하기로 결정한다. 후원을 통해 마련되어질 악기 벨트에 후원자들의 이름을 한 땀 한 땀 새겨 넣고, 후원 금액에 따라 감사의 친필 메시지 카드, 한정판 LP(Vinyl)와 LP미니어쳐CD, 공연 초대권 등 리워드 상품이 준비되었다. 예술, 문화컨텐츠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http://tumblbug.com/shimsungrak)과 함께 한다.
 
"수많은 무대와 사람을 거쳤지만 1950~1960년대 다방에서 매일 음악만 듣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어요. 그 시절 듣던 음악이 내가 지금까지 연주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거죠. 그때 명연주자들을 보면 악기회사에서 특별히 헌정한 악기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것보다 더 감사한,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니 울컥 눈물부터 납니다”
 
 
(자료제공 = 페이퍼레코드 최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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