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영미의 고백 "난 생활보조 대상자"

5·18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에 접하는 아픈 현실, "어쩌다 이지경..."

서문원 기자 | 기사입력 2016/05/19 [14:57]

시인 최영미의 고백 "난 생활보조 대상자"

5·18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에 접하는 아픈 현실, "어쩌다 이지경..."

서문원 기자 | 입력 : 2016/05/19 [14:57]
시인이자 소설가 최영미가 최근 SNS계정에 "(내가) 생활보조금 대상이 됐다"라고 고백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영미 작가는 지난 2006년 사회 풍자와 통찰이 담긴 시집 '돼지들에게'로 제13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녀가 운동권 세대의 암울함을 그린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는 당시 50만부가 판매됐다. 또한 이 시집은 10년전 일본에서 출판돼 현지 문단과 매스컴으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마포 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 신청 통보를 받았다"며, "연간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고 전했다.
 
SNS 글 "연소득 1300만원 미만에 무주택"

최 시인은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선입견 없이) 나를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의 컴퓨터가 기특하다"고 언급하고, "하지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라고 아픈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또 출판사에 전화해 "2년 넘게 밀린 시집 인세를 받기 위해 '근로장려금 대상자'라고 밝히고 3년전 발행한 책의 인세 89만원을 받았다"라고 언급하며, "밀린 인세를 받는데 '근로장려금'만한 협박이 없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 최영미 작가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16일자 편지     ©서문원 기자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안양시에서 생활고와 최장염과 갑상선 기능항진증을 앓다 아사(餓死)한 사건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심지어 당시 영화계와 문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마저 안타까워했어도 상황은 변한게 없다.
 
또한 고인의 이름을 빌어 급하게 만든 '예술인 복지법'(2012년 11월 실행)은 예술 활동 실적이 없으면 혜택 적용 조차 안되는 무용지물이다. 여기에 예술인 복지법 산재 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문인을 비롯한 예술인들은 보험금을 납부할만한 고정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시인의 빈곤 그 현실앞에...
 
이뿐이랴? 작가들이 집필한 저서들의 인세는 박하기 그지 없다. 장기불황이 고착화된 국내 출판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또한 이 나라는 작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해외에 비해 더 열악하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각종 사고를 치고 몇 년 혹은 몇 개월 자숙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지상파, 종편, 케이블, 홈쇼핑 채널들은 무수히 많다.
 
현존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 체육, 관광으로 묶여있어 단 한 가지도 집중 못하기 때문일까? 이건 누가 봐도 가혹한 현실이다.

해외에서 '인문학이 죽었다'라고 한탄하는건 사회적 토대가 있음에도 물질만능주의로 쏠리는 인간들의 백태가 아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인문학이 죽었다'라고 말하는건 다수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횡포 때문은 아닐지?
 
5·18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은 어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당시를 문학으로 표현한 최영미 시인의 심경 토로는 근황 보도로 끝났지만, 같은날 보도된 개그맨 유상무 성폭행 사건은 각 포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오늘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 정도 토대면 한국의 인문학은 죽은게 아니라, '애초 없었다'가 맞다. 아닌가?
 
비슷한 시기,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부커 상을 수상했어도 '국내 인문학의 활력소'라고 말하기 보다 '노벨문학상 도전 가능해'로 보도한 한국 언론의 일희일비는 정치인들의 무지함으로 만들어진 '예술인 복지법'이 정한 실적을 채우고도 남을 성 싶다.
 
"한국 인문학, 죽은 게 아니라 애초 없었다"
 
끝으로 최영미 시인의 이수문학상을 안긴 시집 '돼지들에게'에 나오는 '돼지의 변신'을 올린다. 최근 다시 출판된 이 시집 가격은 8,100원(은행나무). 영화 한편 보는 값보다 더 저렴하다. 하지만 잘나지도 않은 이 민초가 읽기에는 예리한 통찰과 해학이 넘쳐난다.
 
 돼지의 변신  - 최영미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리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인터넷저널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최영미 시인 생활보조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