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실천', 성유보 선생 별세

심장마비 8일 72세로 타계, 동아투위 민언련 언개연 활동하며...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10/10 [10:36]

'언론자유 실천', 성유보 선생 별세

심장마비 8일 72세로 타계, 동아투위 민언련 언개연 활동하며...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10/10 [10:36]
언론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온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이 심장마비로 8일 타계했다. 향년 72세.
 
피디저널에 따르면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50여년의 세월을 싸워 온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에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 민주화를 일생을 바친 성 전 위원장이 영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언론계와 언론단체 인사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는 2015년 동아투위 결성 40주년을 맞아 관련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 박정남 독립PD는 9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성 전 위원장 타계 하루 전인 지난 7일 오후 2시경 병실에서 성 전 위원장과 만난 이야기를 통해 한 명의 언론인으로서 성 전 위원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전했다.
 
  ▲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PD저널  
▲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PD저널
동아투위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인터뷰를 요청한 박정남 PD에게 성 전 위원장을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며, 링거를 빼고 자켓을 입고 병실 밖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박 PD는 성 전 위원장의 건강이 염려돼 퇴원 후 뵙겠다고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것이 박 PD가 본 성 전 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박 PD는 “성 선생님께 왜 밖에 나가서 인터뷰를 하시겠다는 건지 묻자, 선생님은 언론인으로서 독자와 시청자를 만나는데 환자복을 입고 만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유보 한 물 갔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고 그러셨다”며 “내가 보기에는 선생님이 영원한 현역으로 남으시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 PD는 “선생님은 지금의 언론 상황을 많이 답답해하셨다. 40년 전 상황과 달라진 게 없이 오히려 더 교활해졌다 말씀하셨다”며 병실에 계시는 와중에도 한국의 언론을 걱정했던 성 전 위원장의 모습을 전했다.
 
성 전 위원장은 지난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지난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참여했다. 1975년 3월 17일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해직된 후 함께 해직된 113명의 기자·PD와 함께 동아투위를 결성해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다.
 
성 전 위원장은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월간 <말>을 창간했으며, 1988년 한겨레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밖에도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편 빈소는 유족의 뜻에 따라 9일 밤 11시경 일산병원에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으며 발인은 오는 11일이다. 고인은 민주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남양주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언론·시민단체들은 9일 낮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장례 절차 등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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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동만 2014/10/13 [02:29] 수정 | 삭제
  • 성 형, 어찌 그리 일찍 갑니까?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심심 조의. 장동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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