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전영화의 고전 ‘컴앤씨’

[베스트 무비] 도한수(자유기고가)

도한수(자유기고가) | 기사입력 2006/12/28 [18:02]

러시아 반전영화의 고전 ‘컴앤씨’

[베스트 무비] 도한수(자유기고가)

도한수(자유기고가) | 입력 : 2006/12/28 [18:02]
▲1985년 제작된 러시아 반전영화  <Come and See - Idi I Smotri>   ©인터넷저널
1985년 제작된 러시아 반전영화 <Come and See - Idi I Smotri>는 1943년 나치군의 러시아 침공당시 벨로루시에 거주하던 순박한 소년 플로리아(알렉세이 크레프첸코)의 민병대 입소로 시작한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면서 빨치산과 전쟁을 동경하던 소년 플로리아. 공산주의자들이 결성한 빨치산 민병대에 입대하는 날 아침 그는 마치 놀이동산에라도 가는 듯 새 양복을 차려입은 채 한껏 들떠있다. 얼굴 하나 가득 미소를 띤 채 어머니의 만류에도 여동생들과 장난질만 하고 있는 그는 여느 소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전쟁이 꼬마들에게 처절한 광기가 아닌 낭만적인 놀이와 영웅, 그리고 새로운 뉴스거리로 다가오듯, 소년에게 전쟁은 고리타분한 마을에서의 탈출이자 자극적인 경험의 출발이었다. 여느 꼬마가 그렇듯 플로리아 역시 전쟁영웅을 희망하는 순진한 소년일 뿐이다.

전쟁영웅 꿈꾸며 총 든 플로리아
 
하지만 감독 엘렘 클리모프(Elem Klimov)는 이런 순진하기만한 소년이 영웅이 되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드디어 출정일, 소년은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늙은 빨치산은 포위되는 것이 어떤 것인 줄 안다”, “우리는 적의 숫자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는 대장의 연설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리 없다.
소년은 자신의 새 구두를 선임빨치산의 낡은 구두와 바꿔 신고 예비부대에 남아있으라는 대장의 명령에 좌절하고 만다. 그토록 기다렸던 첫 출전이 좌절되는 순간이다.

대원들은 떠나고 예비부대에 남겨진 플로리아. 하지만 그는 그 곳에서 독일군의 폭격을 받는다. 그리곤 전쟁이 주는 공포를 처절하게 느끼며 놀이가 아님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 뒤 소년은 공황상태에 빠질 때마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간 플로리아. 하지만, 마을은 텅 비어있고 집에는 보고팠던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없다. 식탁 위에 아직 채 식지 않은 스프를 떠먹으면서 그는 가족의 죽음을 예감한다.

마을의 은신처로 사용되는 늪지대의 섬으로 달려가는 소년의 등 뒤로 학살당한 마을 사람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소년은 이것을 보지 못한 것일까. 은신처에 가족이 생존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애써 외면한 것일까. 마침내 은신처에서 가족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다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영화는 이때부터 긴박해진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보여준 장면일부의 모태가 되었을 야간 사격장면이 섬뜩하다. 마치 다음날 아침 마을의 학살을 예고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바로 이때부터 소년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늘어간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공포. 그 속에서 소년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그는 독일군의 학살 장면을 보며 오기와 분노를 키워간다. 학살의 광기는 오장을 도려내는 듯 한 처절함을 안겨준다.
학살의 광기에 이성을 잃어가
 
살고 싶으면 아이를 두고 나오라는 독일군 장교의 선무방송. 당한만큼 갚아줘야 한다는 빨치산의 처절한 복수심. 그 속에서 소년은 서서히 죽고 죽이는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그는 다시 총을 들고 살의에 가득 차 전선으로 달려간다.

영화 ‘컴 앤 씨’는 1985년에 제작되었다. 나치가 마을 창고에 주민들을 몰아넣고 소이탄으로 태워 죽이는 장면 등 여러 전투장면을 통해 전쟁이 주는 공포감과 광기를 여과 없이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4회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 작품은 1989년 한국에서는 명동성당과 일부 대학교에서 상연되었다. 이 작품을 본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당시의 느낌이 생생하고 충격적이다. 아직도 내 머릿속엔 “인간은 전쟁을 통해 총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광기로 무장한다”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날 이 늪으로 끌고 왔어요”라며 절규하는 여주인공 글라샤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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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2007/01/09 [11:12]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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