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민주화, 그 간절한꿈 2015년을 향해

아웅산 수지 여사, 1일 재한 버마인들 3백여명과 ‘재회 그리고 대화’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3/02/04 [01:46]

버마민주화, 그 간절한꿈 2015년을 향해

아웅산 수지 여사, 1일 재한 버마인들 3백여명과 ‘재회 그리고 대화’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3/02/04 [01:46]

“메수 짬마 바지, 메수 짬마 바지~.” 한국에 거주하는 버마인들이 닷새간의 일정으로 첫 방한한 아웅산 수지 여사를 보자마자 외친 말이다. ‘어머니 수지, 건강하세요’ 함성이 그녀를 보려고 몰려든 인파로 꽉 들어찬 김대중 도서관 지하 컨벤션홀 한 가득 울려퍼졌다.

애타게 고대하는 조국 버마의 민주화. 이를 실현할 민주화운동 아이콘 아웅산 수지 여사(68).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버마인들에게 수지는 민주주의와 희망의 상징. 그러니까 그들이 그녀를 만나는 것은 오랜 세월 꿔온 꿈을 이루겠다는 ‘희망선언’인 것이다.

3년 전 가택연금에서 해제되고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의원으로 선출된 수지. 그녀는 2015년 총선에서 개헌의석 확보에 최선을 다하자며 ‘민주 버마’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단결을 호소했다. 수지를 대리자이자 꿈으로 간직하는 버마인들은 그렇게 간절한 꿈을 더 크게 새겼다.

▲ 아웅산 수지 여사가 지난 1일 김대중도서관 지하 컨벤션홀에서 열린 '재한 버마인과 대화'에 참여하려고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 최방식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대표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그리고 ‘8888민중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을 이끈 아웅산 수지 여사가 지난 1일 오전 10시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홀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버마인 3백여명과 두 시간여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NLD코리아 주최한 이날 모임에는 한국에 망명한 NLD구성원과 샨족·킨족·카렌족 이주자들이 참여했다.

DJ도서관에 울려퍼진 “메수 짬마 바지”

방한 닷새째이자 마지막 날 첫 행사는 김대중도서관 지하에서 시작됐다. 때 아닌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날. 8시 30분여 동교동 건물로 들어서는 데 수지 얼굴을 지근거리에서 보려고 몰려든 버마인들이 1층과 지하 홀로 가는 길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일개 의원인데 무슨 검색을 이리도 엄격하게 하나 싶을 정도로 지나친 검색에 1시간이 넘게 입장객 짐 수색이 이어졌다. 소수민족의 무장투쟁이 계속되고 있고 또 해외이다 보니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이라 애써 이해하기는 했지만, 국가 원수급에 해당하는 검문검색에 좀 짜증스럽기도 했다.

일대 전쟁이 끝나고 행사장이 버마인들과 일부 언론사 기자들로 꽉 들어찬 가운데, 그녀가 환호 속에 등장했다. “메수 짬마 바지” 함성이 이어진다.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의 환영사와 선물 증정. 그리고 그녀가 확성기를 잡았다. 하지만 블랙아웃. 버마어로 1시간 30여분 넘게 행사가 진행됐으나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

그렇게 지쳐갈 때쯤, 행사를 마쳐야 한다는 동작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이희호 여사가 박지원 의원 등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잠시 사진 찍을 시간을 가졌고, 이어 버마인들의 선물 증정시간이 이어졌다.
 
▲ 민족민주동맹코리아가 지난 1일 오전 10시 김대중도서관 지하 홀에서 개최한 '버마인과 대화'에 참여한 아웅산 수지 여사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최방식


그간 못 알아들은 내용을 파악하려고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마웅저(40·남)를 데리고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10여년 넘게 한국에 거주 중이며 ‘망명자’ 신분의 마웅저. 수지를 만난 기분을 묻자, 그는 “20년만에 어머니를 만난 기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적 희망’에 대해 ‘조금은 실망’이라고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수지는 이날 기조연설에 이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먼저 연설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버마인들에게 배울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하고 물질만능주의가 아닌 마음 속 가치와 그에 바탕을 둔 조국사랑을 주문했다. 또 소수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배려가 필요한 때라며 카렌·샨·킨 등 소수인종 격려발언을 이어갔다.

“2015년 대통령 되는 겁니까?”

이어진 질의응답. “‘기회가 된다면 대통령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데, 2015년 선거에서 대통령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래야 버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수지는 “NLD와 나, 그리고 여러 단체들이 입장이 있고 역할도 있으니 지지해 달라, 함께해야 이룰 수 있다”고 직답을 피했다.

수지는 이어 버마 정치운동의 미래와 독립운동을 벌이는 소수인종문제에 대해서도 늘 고민하고 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니 적극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유사한 정치적 변화를 겪었던 한국의 시민사회와 연대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녀는 또 2015년 선거에서 이기려면 NLD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 뒤, NLD만 선거승리를 바라는 게 아닌 만큼 공동의 이익·이해를 반영하는 정치운동으로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또 과거 무장투쟁을 했던 일부 단체를 현정부가 테러단체로 못 박고 협상에서 배제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려느냐는 질문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 아웅산 수지 여사가 '버마인과 대화'를 마치고 재한 버마인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기념촬영. 수지 여사 왼쪽 곁 검은색 자켓 차림이 네투나잉 NLD코리아 의장.     © 최방식


해외거주 버마인들 교육문제와 관련,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를 통해 지원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해외 이주노동자 보호와 관련해서도 대책을 논의하고 해외 대사관에 이주민 보호에 앞장서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대사관의 경우 이주노동자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국회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버마 여성들의 서구화를 우려하는 질문에는 “남자들도 똑 같은데, 왜 여자만 가지고 그러냐”고 눙치고, “한국도 서구문화가 처음 들어올 때 문제가 됐지만 자기문화와 잘 융합해 새 문화를 만들어 가듯이, 버마도 처음에는 따라할 지 모르나 곧 발전방안을 찾아 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럽의 한 인권변호사의 비판적 발언에 대해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고 옳은 지적은 수용하면 된다”고 답했다. 또 질문이랄 것도 없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수지 소식을 전하고 소통할 방안을 요청하는 당부도 이어졌다.

독재자 딸과 한류스타 만나기, 그 뒤...

기자도 수지 여사를 처음 대했다. 고대하던 버마 민주화 물꼬가 트이고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려도 없지 않은데, 한국의 YS집권기를 떠올린 건 왜인지 모르겠다. 군부세력과 손잡고 그들의 과거 범죄를 엎어준 민간정부의 씁쓸한 기억.

유종순 전 ‘버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는 “기대도 많고 걱정도 많다”고 언급하고, “버마 민주화운동 세력이 움직이고 있으니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들이 잘하도록 도울 뿐이며, 선택은 그들의 몫이니 그들이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 아웅산 수지 여사가 '버마인과 대화' 시간을 마쳐갈 무렵 이희호 여사가 찾아와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 최방식

한쪽에선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수지가 안재욱, 이영애 등 한국 유명 연애인과 만나고 만찬을 하는 걸 봤습니다. 미얀마에 한국 드라마 등 한류가 거세다고 하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좀 ‘그런 거’ 아닌가요? 버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우리들은...”

씁쓸함은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도 남았다. 수지는 ‘평창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개막식에 초청돼 내한했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자를 만났는데, ‘장군의 딸’이자 여성 지도자를 부각하려는 당선인 측 의도에 부합하는 훌륭한 기삿거리였던 것. 그만큼 수지의 한국방문은 시기적으로 민감했고, 방한 일정 또한 좀 더 세심한 검토 속에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인데, 억측이 아니길 빈다.


 ‘8888민중항쟁’은?

‘8888버마민중항쟁’은 1988년 8월 8일 양곤(당시 수도) 등 버마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였던 투쟁. 48년 영국으로부터 식민지 해방의 기쁨도 잠시.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 일상화한 좌우 대결과 폭력, 그리고 집권 독립운동가 출신 엘리트집단 내의 분열로 버마 정국은 10여년 넘게 혼란스러웠다. 이틈을 타 62년 네 윈(지금은 사망)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다. 이에 25년여 군사독재에 시달리던 버마인들이 88년 반독재투쟁을 시작한 것.

네윈 정권이 휘청거렸고, 소마웅이 친위쿠데타로 집권하고 항쟁을 무력 진압했다. 8월 8일, 양곤에서 10만명이 거리시위를 벌였는데 총과 탱크로 진압했다. 1달이 넘게 100만여명이 거리투쟁을 벌였으나, 탱크로 진압했다. NLD측은 적어도 3천여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80년 광주항쟁과 비교되곤 한다. 일부는 정글로 숨어들어 무장투쟁을 벌였고, 다른 일부는 태국국경을 넘었다. 이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진 NLD-LA(민족민주동맹 자유지역, 버마 내부 조직은 그냥 NLD로 부름) 조직원들이다. 한국에도 NLD코리아가 결성돼 있다.

소마웅 군부는 ‘피의 학살’에 따른 불만을 잠재우려고 총선을 통해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하고 1990년 5월 총선을 실시했다. 수지가 이끄는 NLD가 전체 의석의 81%를 차지하자, 군부는 선거를 무효화하고 수지를 가택에 연금했다. 2천명의 민주인사를 체포·투옥했다.

92년 친위쿠데타 2인자였던 탄 쉐(74)가 소마웅으로부터 실권을 넘겨받았다. 97년 국가통치 기구도 '국가평화발전협의회'(SPDC)로 재편했다. 2011년 탄쉐는 민간 정부에 권력을 이양했다. 2011년 2월 4일 의회선거에서 전체 659표 중 408표를 획득한 테인 세인을 대통령으로 임명하고 SPDC를 해체한다고 밝혔다.

수지는 1989년부터 가택연금을 당했는데, 21년 만인 2010년 해체됐다. 지난해 4월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녀는 72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88년 귀국 NLD를 결성했다. 부친 아웅산 장군은 47년 7월 수지가 2살 때 반대파의 정치적 음모로 동료장권 8명과 함께 암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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