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몬티’ 고향 ‘크레이지스타일’로 3개월

[영국쉐필드대학 유학기1] 애정탐구 잠시 거두고 학문 닦아야 할...

윤경효 | 기사입력 2012/01/28 [12:00]

‘풀몬티’ 고향 ‘크레이지스타일’로 3개월

[영국쉐필드대학 유학기1] 애정탐구 잠시 거두고 학문 닦아야 할...

윤경효 | 입력 : 2012/01/28 [12:00]
 [2011-12-26] 9월 14일 수요일 밤 비행기로 한국을 떠나 영국 쉐필드에 정착한 지 어느덧 101일째. 내 시간 감각이 혼돈에 빠졌다. 불과 지난 주 하우스메이트(housemate)들과 함께 성대하게 열었던 파티가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니... 벌써 한 학기가 끝났구나 싶다.

놀랍게도 영국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현지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마치 예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환경이 낯설지가 않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공부하러 온 만큼 빠른 적응으로 집중할 수 있어 좋긴 한데, 당최 새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으니 예전 아시아를 돌아다닐 때만큼 지역사회에 대한 탐구심이 생기질 않는다.

한학기 끝났는데 호기심 안생기니

이곳에서 지낸 지 3개월이 지났건만, 아직 학교, 집 주변만 알고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서울 사람이 남산타워, 63빌딩에 잘 안 가고 오히려 서울명소를 잘 모르는 것처럼... 헐~ 새로운 환경 탐험에 대한 의욕 상실이 지난 2년간의 장기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 때문인지, 서구 사회에 대한 나의 편견(알 것 다 안다는) 때문인지 아직 감을 못 잡겠다. 둘 다 일수도 있겠지만...
 
▲ 1만 여명이 운집한 공공노조 집회 현장. 대처 총리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많은 노동조합들의 활동이 약화된 상황에서 영국의 공공노조가 가장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기에 이들의 공공예산 및 연금 삭감 반대 시위의 성공여부가 사기업 노조들의 노사협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 윤경효

여하튼, 이런 무기력증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 도시에 대해 풀어내고 싶은 얘기가 없다. 초기 산업도시로 영국의 번영을 이끌었던 도시이자 영화 ‘풀 몬티(The Full Monty)’의 배경 도시인데... 쩝(-,.-);; 내년에는 옛 시가지, 빈민구역 등을 조만간 꼭 돌아다녀 보기로 다짐한다.

유학을 떠나기 전 우려했던 것에 비해 진보적인 교수들도 만나고, 수업도 큰 어려움이 없고 기대 이상으로 공부를 즐기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토론 수업 때 ‘선빵’ 날리기 전략 등 여러 선배들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지난 10년간의 현장경험이 공부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현장에서 겪었던 그 많은 문제들과 고민들이 오래 전 학자들에 의해 심도 있게 연구된 것들을 보면서, 정말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구나 싶다. 이미 누군가 지나간 그 길을 나도 조심스레 따라갈 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던가. 왜 훌륭한 학자들, 선각자들이 그리 겸손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다시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 에세이 주제를 교수들이 제시한 주제가 아닌 ‘시민사회운동의 세계화’, ‘시민사회운동의 제국주의’라는 것으로 감히 내가 직접 선택한 지라 준비하는데 조금 부담이 되고 있다. 교수들도 시민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에세이 주제를 허락하기는 하나 큰 도움을 못 주겠노라 아예 선언을 했다.

▲ 쉐필드 사회당 소속 학생들이 공공노조 시위에 대한 지지와 함께 정부의 교육예산 삭감 및 대학 민영화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윤경효


‘선빵’은 날렸는데, 에세이가 걱정

주로 국가 정책, 국가 간 관계 연구에 집중하는 정치학 영역이다 보니,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여전히 ‘시민사회’가 변방 연구주제인걸 목도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관련 학술자료를 찾으니, 직접 연관된 자료만 벌써 46권이나 된다. 이 책들을 모두 봐야 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비주류인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하나. 헐~ 그나저나 사례연구를 해야 하는데, 사례 찾기가 복병이다.

작년부터 불붙은 영국의 노동자 집회 및 시위가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운동과 경쟁하듯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전국적으로 대규모 공공노조 집회 및 시위가 있었는데, 500여명의 쉐필드 대학생들도 교육예산 삭감 및 대학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시위에 동참했다.

등록금이 전년도에 비해 약 2배나 인상된 데다 민영화 이후 등록금이 미납될 시 학문적 성취와 상관없이 학위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똑똑해도 돈이 없으면 졸업장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집회 전부터 대학생들 조직을 담당한 ‘쉐필드 학생 사회당(Student Socialist Sheffield)’ 회의를 참관했다. 비록 사전 홍보 및 조직 활동이 부족해 더 많은 학생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한 한계를 보이기는 했으나, 학생들이니 시행착오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 내년 1월 또 다른 집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기대(?)된다.
 
▲ 정치학 대학원이 개최한 종강 파티. 한 학기 스터디그룹 친구들… ^.^     © 윤경효

한국과 마찬가지로 12월이 시작되자마자 여기저기서 다양한 파티가 열리고, 기분 좋게 취한 취객들이 친구들과 더불어 왁자지껄하며 밤거리를 가득 메웠다.

국가별 노는 취향도참 다양하다. (나의)중국 친구들은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저녁식사 후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다가 9시경부터 둘러앉아 술 먹이기가 목적인카드놀이에 집중한다. 인도 친구들은 단어 맞추기 스피드게임 등 가족오락관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회당학생회’ 반민영화시위 관심

서유럽 친구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듯 손에 술잔(또는 술병)을 들고 이 사람 저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즐기다 취하면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아예 클럽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러시아, 동유럽 친구들은 대화는 즐기나 춤추며 풀어지는 것에는 약하고, 남미 친구들과 아프리카 친구들은 어디서나 분위기에 맞춰 잘들 논다.

한국 친구들(내 주변 친구들의 의견에 따르면)은 중국 친구들처럼 폐쇄적이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적극적이지도 않은 편. 좋게 말하면 점잖게 분위기에 맞춰주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눈에 띄지 않는다는... 헐~ 이리 모아 놓고 노는 것만 봐도 지역별 문화나 분위기 차이가 감지되는 듯하다.

▲ 하우스메이트들과의 크리스마스이브 만찬. 기독교인은 한 명뿐인데, 다른 종교인들도 크리스마스를 자기 축제처럼 즐기는 것이 재밌다. 크리스마스의 세계화라 해야 하나? 헐~     © 윤경효


나는? 어딜 가나 오지랖 넓은 근성을 버리지 못해 국제적으로 여기 저기 쑤시고 다니는 나는 여기서 한국인이 아니다. 하긴 헤어스타일부터 외국 애들도 ‘크레이지 스타일(Crazy Style)’라고 부를 정도로 튀니까. 헐~

올 한 해를 돌이켜 보니, 잠시 몸담았던 회사에서 만난 친구들, 클래식 기타 동호회 사람들, 쉐필드 대학에서 만난 교수와 학교 친구들 등 좋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오랜 친구들과의 더욱 깊어진 우정 등 유난히 사람들과의 인연이 많고 깊어진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에 대한 격려의 한 해였던 것인가? 나를 격려하고, 따뜻하게 감싸며, 내 심장을 말랑 말랑하게 해 준, 내 인생에서 주요 페이지를 차지할 2011년이었다.

이제 사람들에 대한 애정 탐구는 잠시 쉬고, 책과 씨름해야 할 시간. 감히 새로운 주제로 에세이를 쓰겠다고 교수들한테 큰 소리쳤던 패기는 어디로 가고, 어찌 정리해 나갈까, 슬슬 스트레스가 엄습해 오기 시작하고 있다.

▲ 서로 배려하고, 지지해 주는,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는 어리지만 성숙한 나의 사랑스러운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했다. 왼쪽부터 딕시(인도), 캐시(중국), 제니(중국), 엘런(중국), 밀리(인도), 니하(인도), 캐롤(케냐), 루루(인도).     © 윤경효


패기는 사라지고 슬슬 스트레스...

2012년은 소망컨대, 학문을 통해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배양하는 시간이 되기를...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있게 되기를... 삶이 나를 속일 지라도 내 자신에 대한 도전에 지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싯달타, 비쉬누, 알라, 그 외 내가 아직 인지하지 못한 모든 신들에게.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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