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높은 삶으로 보상해야지, 금전보상은 무슨..."

'조선' 보도로 상처입은 김형근 교사의 민주화운동유공자 관련 편지

리복재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06/12/09 [12:52]

"질높은 삶으로 보상해야지, 금전보상은 무슨..."

'조선' 보도로 상처입은 김형근 교사의 민주화운동유공자 관련 편지

리복재 대표기자 | 입력 : 2006/12/09 [12:52]
2005년 5월 전북 회현산에 전북 임실 관촌중 학생들과 학부모 180여명을 인솔하여  ‘남녘 통일 애국열사 추모제( "빨치산 추모제".조선일보식 표기) 전야제인 문화행사에 참가했던 김형근 교사(46·전북 군산동고). 그가 지난 7월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싣는다.
 
이 편지에서 김교사는 아들에게 자신이 민주화운동을 벌여온 이력, 그리고 민주화유공자로 등록해 연금등의 혜택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를 거부하는 이유 등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는 12월 7일자 기사를 통해 “전북 임실군 관촌면 K중학교 도덕교사였던 김모(48·군산 D고)씨가 공안당국의 내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에 소읍(小邑)이 술렁거렸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김교사는 공안당국의 내사나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교사가 조선일보의 왜곡보도가 나온 다음 아들에게 일기형식으로 남긴 글 전문이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는 이제 빛이 바랜 5.18 민주화운동 투사였단다.


내내 보상금 신청을 하라고 아빠에게 종용하더니만, 오늘은 518단체로부터 국가의 유공자로 보훈처에 신고하라고 서신이 왔구나.

아빠가 신고해서 국가의 혜택을 받게 된다면 우선 너에게 가장 큰 이득이 돌아올텐데, 아빠는 이번에도 거절하고 말았구나. 아빠가 너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슬픈 각인밖에 없는데도, ... 아빠가 너무 잘나서...

아들아 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교도소에서 나와 너의 담임 선생님을 찾아보았더란다. 담임 선생님이 처음에는 아빠가 계시지 않는 줄 알았었다고 하더니, 나중에 통일운동이 무슨 죄냐고 묻더라. 그저 황송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담임의 얼굴을 보지도 못 하고 돌아왔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급 게시판 위에 자기소개 란에 쇠창살을 그려 넣고 그 뒤에 사진을 붙여 <전과 0범 김민철>이라는 소개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는 너에게 죄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단다. 하고 많은 상상력 중에서, 곰 그림도 있고 나무 모양 장식도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그 상처가 어린 너에게.. 모든 것이 즐겁고 아름답게 보여야 할 나이에..

언젠가 1995년 더운 여름날 너와 나 둘이서 팬티만 입고 큰방에서 자고 있는데, 형사들 100여명이 몰려와서 아빠 손에 수갑을 채우고 군화발로 집뒤짐을 할 때 놀라서 울고만 있던 어린 너는 무슨 생각을 했겠니? 그래서 아빠는 너에게 죄인이란다.

어떤 설명도 없이 이 담에 크면 아빠를 이해해주겠지 라는 막연한 이해심을 기다리며 그때 그때 상황을 넘기고 만 아빠는 또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용서가 된다면 몇 마디라도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말해보자.

우선 아빠는 못 다한 꿈으로 맺혀 있단다. 민주화라는 것은 국민 모두가 주인 되고 복된 삶을 이루는 것이지. 그런데, 여전히 사회는 사람보다는 돈이 우선이고, 돈에 얽매여 하루하루 지친 삶을 이끌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단다.

민주화는 이들에게 사람 사는 희망을 주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주인일 뿐, 대다수는 가난과 빈곤으로 주인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냉혹한 곳이란다.

돈이 없으면 아이들 학교에도 제대로 보낼 수 없고,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유가 나라가 분단된 때문이고, 우리나라를 자본주의, 그것도 미국자본주의 시장 원리인 약육강식 체제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국가 예산의 많은 돈을 제 민족과 대결하고자 쏟아 붓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 사는 놈은 살고 죽은 놈은 죽으라 하니 더더욱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아빠는 20대 젊은 나이에 부르짖었던 민주화와 통일의 꿈을 아직도 가슴에 맺힌 한으로만 삭이고 있는 거란다.

아빠 생각은 이렇다. "보상이라니? 보상받을 것이 있으면 민주와 통일로 보상이 되어야지. 국민들의 보다 질 높은 삶의 보상이 되어야지. 그리고 아빠가 무엇을 했다고?"

또 아빠는 너에게 국가유공자 자녀라는 특별한 혜택을 주고 싶지 않단다. 학교 다니는 과정도 아빠가 노력해서 학비를 대면되고, 입시나 취업 등도 정당하게 경쟁해서 스스로 뚫어내길 바란단다.


너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은 너의 삶의 과정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판단한다.

그리고.. 아빠는 이 나라에서 주는 ‘예우’를 너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해야할 것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너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희망을 만들어 가길 바란단다.

아직 이 나라는 정의가 불의가 되고, 양심이나 진보가 이해관계로 먹칠해져있고, 우리 삶에 고통을 주는 근본요인은 저만치 웃고 있는데, 사람들은 눈앞의 싸움만 익숙한 땅이야.

군사적 주권조차 없는 이 나라의 ‘예우’를 너에게 준다는 것은 아빠에게는 치욕이란다. 아직도 분단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한 아빠는 자랑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단다.

아들아!

아빠가 젊었을 때 더 일을 해서 분단 구조만이라도 벗어냈다면, 후대인 너에게 짐 하나를 덜어주었을 것을...

아빠의 짐을 그대로 아가, 너가 커가는 과정에 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빠가슴이 더 답답하단다.

힘내라 아들아!

영광은 영광을 받을 자격만이 아니라 영광의 조건이 이루어져야 받을 수 있는 거란다.

2002. 7. 18
너의 아빠가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쓰며.. 
 




▲김형근 교사의 아들 김민철군의 자기소개서. 수감자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아빠의 전력을 알아서였을까? 보는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 플러스코리아


원본 기사 보기: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570(plu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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