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녀 중심 모계사회, 남성평등 외쳤을...

[동남아일기27-태국] 시민행동의 활동가 제이가 스님 되는 날

윤경효 | 기사입력 2010/02/24 [01:17]

신녀 중심 모계사회, 남성평등 외쳤을...

[동남아일기27-태국] 시민행동의 활동가 제이가 스님 되는 날

윤경효 | 입력 : 2010/02/24 [01:17]
12월 8일 오전 9시. 5인승 밴에 덩(Dung), 누이(Nuy), 엔(En), 눔(Num), 써(Seo), 고(Goh), 눈(Nun), 미(Mee), 그리고 나까지 9명이 몸을 실었다. 태국 동쪽 끝 우본(Ubon)까지 약 8~9시간 동안 가야 한다는데, 뒷좌석에 여자 셋, 남자 한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고, 남자 셋은 짐칸에 탔다. 우본은 시민행동(Community Organization for People’s Action)의 활동가 제이(Jay)의 고향으로, 내일 그 곳의 한 절에서 제이가 스님이 되는 날이다.
 
우본은 푸른 문(Mun)강과 노란 메콩강이 만나는 곳으로 유명한데,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3개국 국경이 만나는 곳에 광활한 열대원시림이 펼쳐져 있다하여 태국 관광청이 북쪽의 ‘골든트라이앵글’과 대비해 ‘에메랄드 트라이앵글(Emerald Triangle)’이라 이름 붙였다. 국립공원이 3개나 있을 만큼 원시적인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우본(Ubon)으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 풍경(사진 위 왼쪽, 오른쪽).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국도를 혼합해 놓은 것 같다. 1차선도 있고, 2차선도 있고, 도심을 관통하기도 하고. 동쪽으로 갈수록 평야지대가 펼쳐져 나무만 없으면 지평선도 보일 듯. 차창 밖 쭉 뻗은 도로를 보노라니, 몽골의 초원이 생각난다. 그래선지 시속 150~160km로 달린다. 속도제한이 없는 게 독일의 아우토반이 부럽지 않다. 헐~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덩, 누이, 써, 고, 눔, 눈, 나, 미(아래 왼쪽). 우본의 빈민센터 앞에서, 눔, 눈, 미, 고, 누이, 덩(아래 오른쪽).     © 윤경효

 
참고로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은 루악(Ruak)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의 접경지대를 말하며, 태국,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중국의 운난성 접경지대를 포함해 대마초 등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에머랄드 트라이앵글’행 투어
 
콘껜(Khon Kaen), 우본(Ubon) 등 태국 동북부 지역을 이싼(Isan/Issan/Isaan/Isarn)이라 부르는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라오(Lao)족계로 라오스어와 유사한 말을 사용하나, 문화는 캄보디아와 비슷하다 한다. 원래 이 지역이 크메르제국(캄보디아)의 일부였다가 18세기 말부터 태국의 영향권에 들어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라오족이나 타이족과 구분해 이싼족이라 부르며,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콘깬과 우본에 갔을 때, 태국말도 잘 못하는 내게 이싼어를 가르치겠다고 팔 걷어붙였던 주민들이 여럿 있어, 참 난감했었다. 헐~
 
▲ 태국 지도 동북쪽에 자리한 우본.     © 윤경효

 
이싼지역은 농업이 주를 이루지만 고온 건조한 기후로 인해 다른 지역에 비해 생산량이 떨어지는데다, 경제사회적인 조건 때문에 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한다. 현재 많은 국제 개발NGO들과 인류학 연구자들이 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저녁 7시쯤 우본에 있는 제이의 집에 도착했다. 다른 차를 타고 온 30여명의 전국빈민조직연대(FRSN) 사람들은 벌써 도착해 식사까지 마쳤단다. 마중 나온 제이를 보니 머리도 눈썹도 모두 깨끗이 깎았다. 어제까지 술 마시며 키득대던 제이가 머리를 깎고 나더니, 갑자기 점잖아졌다. 잘 웃지도 않고, 엄숙한 표정으로 일관이다.
 
15일 후에 다시 속세로 나올 거면서 너무 심각한 얼굴로 있는 게 좀 웃기긴 했지만, 어쨌든 수행자가 되는 것이니, 나름 각오를 단단히 했을 수 있겠다 싶다. 태국에서는 불자들의 경우, 남자들이 군대 가듯이 절에서 일정기간 수행하는 것을 반의무적으로 한다고 한다.
 
▲ 절에 가기 전 머리와 눈썹을 모두 깎은 제이(왼쪽). 본격적인 계를 받기 전 상좌스님의 지도 아래 어머니로부터 법복을 받아드는 제이(오른쪽).     © 윤경효

 
“이싼어 가르치겠다고? 참 난감”
 
태국의 불교도가 인구의 약 94.7%(2000)라고 하니, 사실상 대부분의 남성들이 스님이 되는 경험을 했을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6개월이라는데,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수행에 들어가는 제이는 15일 동안만 속세를 떠나있을 예정이다.
 
태국불교에서 스님은 남자만 될 수 있으며, 현재까지 비구니는 인정하지 않고 있단다. 종종 사원에서 흰색 법복을 입고 삭발을 한 여성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스님이 아닌 ‘마에 지’(Mae Ji)라는 수행하는 여성 불자이다.
 
국내외적으로 비구니를 인정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도 태국의 비구교단은 비구니교단을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한다. 종교계에서의 여성차별이야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비구니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좀 놀라울 따름이다.
 
스님이 된 제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제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여성들은 행여나 신체접촉이 있을까 조심스럽다. 수계식이 끝나고 불자들의 공양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공양하면서 제이를 보고 씩 웃었던 내가 얼마나 예(禮)에서 벗어났었는지를 나중에 인터넷의 정보를 통해 알았다. 헐~
 
▲ 두 분 상좌스님의 경구 암송 후 큰 스님이 제이에게 법복을 입혀주셨다(왼쪽). 법복을 입은 후 직속 상좌스님에게 인사드리는 제이(오른쪽).     © 윤경효

 
제이가 머무를 집이 있는 사찰로 이동한 후 다함께 앉는데, 사람들은 바닥에 앉고 제이는 의자에 앉는다. 스님에 대한 존중·존경의 표현으로 자신의 머리를 스님의 머리보다 낮은 곳에 둔다는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수계식이 있었던 사찰에서 스님들은 단상 위에 앉아 불자들을 굽어보았다. 제일 존중받아야 하는 스님들과 머리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왕밖에 없단다. 왜냐면, 왕은 속세를 다스리는 부처님의 현신이니까. 헐~
 
비구니 인정 않는 태국 불교
 
갑작스런 신분변화와 관계변화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제이를 보고 있노라니 어색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15일 후 수행생활을 마친 제이가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비자 만료로 그전에 태국을 떠나야해 못 보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규율대로 움직이는 스님들과 불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태국이 생각 외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제프의 지적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국 말을 잘 몰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나타나는 위계를 못 느꼈는데, 제프의 말에 따르면 상당하다고 한다.
 
인간정주연합의 분위기가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느슨하고 수평적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또래의 친구인 덩과 누이 사이에서도 1년 먼저 일을 시작한 덩이 누이에게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누이는 묵묵히 따른다고.
 
▲ 큰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제이를 상좌를 비롯해 다른 스님들이 둘러싸고 경구를 암송하고 있다.(왼쪽) 계를 받은 제이와 함께 큰스님과 12명의 스님들이 모두 불자들을 향해 앉아 경구를 암송하고 있다.(오른쪽)     © 윤경효

 
나이, 학력, 사회적 지위 등 어떤 것으로든 한번 위, 아래가 정해지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에 이유 없이 따르는 경향이 많단다. 재밌는 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나이가 어린 사람이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이 높으면 ‘피(Pi)’라는 존칭어를 사용해 대우하는데, ‘피’는 소위 윗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 태국교포분의 말씀에 따르면, 한번 이 관계가 정해지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부리고’ 대신 ‘보호’하는 책임을 지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따라야’ 한단다. 그래서 태국사람들과 관계를 설정할 때 유념해야 한다고. 태국 종교문화를 보면 신들에게도 서열이 있고, 그에 따라 역할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과 사회문화가 꼭 닮았다. 헐~
 
위·아래 정해지면 무조건 따르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도 이슬람 종교문화의 영향으로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인간관계와 문화를 목격했었는데, 불교국가인 태국도 못지않은 것 같다. 가만 보면, 종교문화가 강한 사회가 유난히 보수적인 성향을 여전히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도 한때 유교의 가부장적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성향이 희미해지면서 보수적인 위계질서문화가 많이 깨지고 있고, 서양도 소위 ‘신실한’ 종교인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기독교의 가부장적 질서가 깨진 것 같으니 말이다.
 
▲ 비구스님이 된 제이와 인간정주연합 활동가들(사진 왼쪽). 제이가 15일 동안 기거할 처소(사진 오른쪽). 계를 받은 후 사람들이 제이의 바루에 공양을 할 때, 나도 20바트 공양하면서 제이를 보고 웃었더니, 누이가 웃어선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스님들이 여성과 ‘접촉’하면 즉시 ‘파계’란다. 때문에, 스님이 지나갈 때 여성들은 길을 비켜주어야 하며, 공양할 때도 스님의 발밑이나 일정하게 떨어진 곳에 음식을 놓으면, 스님이 가져간다고. 수행 중 가장 힘든 게 아무래도 ‘색(色)’인가 보다. 이리 엄격한 걸 보니... 헐~ 그래서 사진 찍을 때 멀찌감치 떨어져 찍었다.ㅋ.     © 윤경효

 
한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 심지어 경제에 이르기까지 종교가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점점 궁금해진다. 어쩌면, ‘신녀’ 중심이던 원시종교의 고대사회가 모계적 성향이 강했다 것을 생각하면, 이후 신의 대리인이 남성으로 바뀐 후 그 지위가 역전되었을 지도 모른다.
 
아주 옛날 여성의 권력에 대항하여 남성들이 평등을 부르짖었고, 신녀의 세계에 조금씩 남자무당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으나, 워낙 텃세가 심했던지라 남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종교체계(기독교, 이슬람교, 불교)를 수립, 그 세를 확장시키면서 여성종교인 원시토속종교를 몰아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헐~
 
아~ 궁금한 것은 많아지고, 지력(知力)과 시간은 제한적이고, 버겁다, 버거워...스읍…-,.-;;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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