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백귀야행(百鬼夜幸)(30-2) "가주 될테니"

이슬비 | 기사입력 2020/01/02 [10:35]

[연재]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백귀야행(百鬼夜幸)(30-2) "가주 될테니"

이슬비 | 입력 : 2020/01/02 [10:35]

<지난 글에 이어서>

무슨 일이냐?”

 

뻔뻔하기는. 서란은 잠시 소리 없이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 터인데 무슨 일이냐니. 서란은 허리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무슨 일이냐고 내 묻지 않느냐!”

 

서란은 추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어울리지도 않는 흰옷을 입은 탓에 그의 모습은 경박하게만 보였다.

 

멍청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옷 고르는 안목도 형편없군.’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한씨가의 정실부군이람. 서란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사람은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첫인상을 보는 법이었고, 그것은 그 사람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본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고, 때에 맞게 외모를 가꾸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 꼴로 자신을 만나러 오다니. 서란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한씨가의 제2후계 서란, 저의 살해모의자이며 한씨가 제2후계의 살해모의자인 분께 그나마 공경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그러니 그대께서는 부디 저의 공경심을 시험하지 마시옵소서.”

 

스스로가 듣기에도 명백한 비아냥조였다. 서란은 추을을 향해 한 발자국을 더 내디뎠다. 불빛 아래 드러난 추을의 표정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동시에 어려 있었다.

 

무슨 말이냐? 내가 너를 죽이려 했다니?”

 

한 번 보시지요.”

 

서란은 횃불을 들고 죽은 시위들이 시체를 비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위로 횃불을 떨어뜨렸다. 시체들에 불이 붙어 확, 하고 타올랐다.

 

기름을 끼얹어라. 시위 따위가 죽으면 화장한 뒤에 그 뼛가루와 함께 위로금을 유족에게 전달하면 될 일이다.”

 

…….”

 

또한 정실부군이 첩실이 되는 일은 이보다 더 간단하지.”

 

내 지금 무슨 말이냐 묻지 않았느냐! 또 이 시체들은 다 무엇이냐?”

 

서란은 한 번 웃었다. 이제는 추을이 우습다 못해 가엾기까지 했다. 서란은 말했다.

 

당신이, 그리고 자여의 시종장이 저를 죽이기 위해 매수한 이들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무어?”

 

또한 이들은 당신이 저를 죽이기 위해 끌어들인 암살자들이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서란은 비화, 구향, 소하, 자영, 화요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서 추을을 노려보았다. 추을이 서란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큰이모부님.”

 

서란이 추을의 곁으로 바짝 다가들었다. 서란은 말했다.

 

윤희를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리고 자여는 누가 죽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네년……!”

 

, 바로 저입니다. 제가 반드시 그리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아 가주가 될 것입니다.”

 

서란은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정옥이 뒤에 유란을 대동한 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서란은 정옥을 향해 몸을 돌리고 예를 표해보였다.

 

한씨가의 38대 제2후계 서란, 가주님을 뵙습니다.”

 

한씨가의 37대 정실부군 소추을, 후계살해모의 및 미수 혐의로 3개월 간 금족령에 처한다. 또한…….”

 

서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3개월이라. 그 정도면 자여의 세력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한씨가의 제1후계 자여의 시종장 홍녀를 후계살해모의 및 미수 혐의로 당장 끌어내 교형에 처하라.”

 

정옥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시위들이 자여의 처소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서란을 바라보며 정옥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마치 너만은 절대 가주가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이모부님.”

 

서란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추을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가 오랏줄과 망치, 명부를 들고 다가오는 것 같아 추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이모부님.”

 

서란이 추을의 세 발자국 앞에서 멈춰 섰다. 순식간에 서란을 중심으로 공기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서란은 말했다.

 

제가 여기에서 만족하실 것이라 보십니까?”

 

왜 이 말이 나온 것인지는 서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자신은 정옥을, 추을을, 자여를, 그리고 더 나아가 한씨가를 향해 전쟁을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서란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판결을 내리는 것 같은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서란은 운명의 심판관이라도 된 듯한 태도로 추을에게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 저를 멈추고 싶다면 지금 당장 죽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끝내는 당신의 딸을 죽이고 그 이름을 모두가 망각하게 할 것입니다.”

 

서란은 정옥의 뒤에 선 어머니 유란을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흰 옷을 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어머니는 평소와 달리, 터키석과 에메랄드로 만든 새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서란은 그런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저는 반드시 살아남아 가주가 될 테니까요. 그래야 저에게 독을 먹였던 친어미의 손길에서 살아나온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서란은 유흔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마치 그만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자신의 편이라는 듯이.

<다음 글로 이어짐>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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