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제 내실화를 위하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기사입력 2018/02/18 [11:40]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제 내실화를 위하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입력 : 2018/02/18 [11:40]

 

이금형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최근 현직 여검사가 자신이 당한 검찰 내부의 성추행 실태를 고발하면서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내가 40년간 몸 담았던 경찰 또한 그런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젊은 여경 때부터 보아왔던 현실들이 가슴 아프고 답답하지만, 이렇게 피눈물 나는 과정을 거쳐서라도 우리 사회가 정상화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왜, 남의 가정사에 참여하느냐!”며 항의하는 가정 폭력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또 하나 간과되거나, 알고도 잠정적으로 숨겨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가정 폭력”이다.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인식의 시대에 살았던 50대 이상의 분들, 특히나 보수성이 강한 특정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아직도 가정 폭력 자체를 그리 큰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둔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어찌되었던 아이의 아버지라는 생각에 자녀를 위해 가해자를 변호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다른 폭행 사건과 달리 옆집에서 벌어진 일을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가해자가 폭력을 계속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심한 폭행에 대해 경찰이 정당한 개입을 해도 “왜, 남의 가정사에 참여하느냐!”며 항의하는 적반하장의 경우도 종종 당하게 된다.

 

지난 연말에는 비공개로 운영되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까지 가해자가 침입하고, 현장에 있던 여성·청소년계 소속 사법 경찰관이 피해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여 사회적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 딸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OECD 국가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후진적인 일들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가정 폭력 전담 경찰관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최근 이런 상황에서 시의 적절하게 ‘가정 폭력 전담 경찰관 제도의 현황과 개선 방안’이라는 중요한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국회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입법조사처가 선도적으로 이런 주제를 다루어 준 것도 고마운 일이고, 또 이슈 리포터 형식의 짧은 보고서이지만 내용도 충실하고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매우 반갑고, 여성학을 전공하신 분이 경찰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정리해 주신 것이 신선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것이 1998년이니 이제 20살이 되었다. 그러나 법 제정 당시만 해도 가해자·사법기관·언론인 등 상당수의 사람들이 가정 폭력을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을 법이 정착되기 위한 과도기라고 인정하더라도, 이제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 이제는 국민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은 어떤 이유로도 가정 폭력을 용납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요구나 법률상의 취지와 달리 현실은 여전히 가정 폭력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발생한 가정 폭력에 적절하게 대응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 
 
첫째, 가정 폭력 관련 법률의 핵심이 되는 ‘가정 폭력 전담 경찰관’의 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지난 2014년 가정 폭력 전담 경찰관 138명 배치를 시작으로 지금은 전국적으로 3,049명의 여성청소년 수사과 경찰들이 근무하고 있고, 학대예방경찰관(APO)은 334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서울시의 경우 재발 우려가 상당히 있어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를 필요로 하는 2,117개의 가정을 담당하는 전담 경찰관은 85명에 불과하다.

 

또한 학대예방경찰관이 1인당 2명에서 58명까지 매우 편차가 넓어 재발 우려가 있는 심각한 가정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담경찰관의 증원뿐만 아니라 재발 우려 가정 수를 적정하고 균등하게 배치하는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둘째, 현재의 ‘가정폭력방지법’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강제로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 미국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체포 우선주의를 통해 가해자와 분리할 수 있도록 해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가해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은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한 이후의 일이다.

 

경찰이 출동했음에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제지하지 못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와 법률은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제 실제로 경찰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나서주어야 한다. ‘가정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에 체포 우선주의에 대한 조항을 신설하는 노력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셋째, 경찰 직무 매뉴얼을 구체화하고 단계별 세분화하여 보호 조치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경찰의 법 집행은 목적이나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집행 과정을 규정해 놓은 절차에 따라야만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세세하게 나열하는 대륙법 체계가 아니라 영미법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률은 포괄적인 상황이나 전체적인 방향만을 명기하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부딪치는 상황만으로 정확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현상의 이면에 담긴 범죄적인 요소나 범법적인 부분을 당장 구분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실수없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무 매뉴얼이다.

 

신고 접수와 출동 후 현장 도착, 현장에서의 상황 대처 및 개입, 현장 정리와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매 단계마다 세밀하게 규정하는 직무 지침이 필요하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한다면 구체적인 상황을 매우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무 지침에 따른 행위를 하였다면 불의의 사고나 피해가 발생해도 당사자인 경찰의 책임을 묻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안심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가정 폭력과 같이 상황이 복잡하거나 판단이 매우 애매한 경우는 우선순위와 행동지침을 규정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규정이 없이 현장에서 경찰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포괄적인 위임을 하는 경우에는 개인의 성격이나 경험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소극적인 대응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찰이나 소방,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과 같은 것을 제정해서 공익과 선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오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경찰관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대 예방 경찰만 가정 폭력에 대응한다는 보장이 없다. 상시적으로 현장에 출동하는 지구대나 파출소 등 일선에 근무하는 경찰들은 항상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백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사법 집행의 원칙이라고 하지만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범인도 잡고 피해자도 보호하고, 재발도 방지하는 것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가능해진다. 관련 법률에 대한 교육이나 직무 지침과 메뉴얼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당장은 실용성이 높지 않더라도 직무 교육 과정에서 인권 보호의 강화는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 개정을 통해 인권 교육의 대상과 시간 및 점검 체계 등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지역별로 균등하고 전문적인 내용의 인권 교육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사례를 중심으로 대상자들의 요구에 맞는 실질적인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진행하기 위해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의 협력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개선 방안들은 모두 필요하고 좋은 제언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될 때까지 자주 반복해야 실질적으로 개선이 될 것이므로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국민이 안전한 나라가 복지국가다

 

나는 현장에서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보아왔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가정 폭력 관련 법률을 만드는 데 적극 참여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 경찰로서의 당연한 업무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2001년 초대 경찰청의 여성실장으로 근무하면서는 강력범죄자들이 대부분 성장기에 다양한 형태의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중심으로 “가정 폭력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흉악범 사례를 분석해서 가정 폭력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성악설(性惡說)이 옳은지 성선설(性善說)이 맞는지는 경찰로 40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겪은 범죄자들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서 가정 폭력이 자라나 학교 폭력과 성 폭력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나중에는 일반적인 사회 폭력과 조직 폭력의 단초가 된다는 것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가정 폭력은 모든 폭력의 기본이 되므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 뿐 아니라, 확산과 재발을 막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제는 범죄 예방 차원에서도 가정 폭력은 매우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촉발된 촛불 혁명은 지난 대선에서도 안전한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요구로 분출되었다. 당시 주요 후보들은 이렇게 제안된 국민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공통 공약으로 안전을 강조했다.

 

최근 국무총리가 중심이 되어 각 부처로부터 올해 정부 업무 보고를 받을 때도 자살 예방이나 산업재해 방지 등 국민의 안전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에 이대병원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집단 사망 사건이나,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로 수많은 입원 환자들이 어이없이 질식사를 당해야 했던 참사의 근저에는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던 공통점이 있다.

 

이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정기적인 예방과 점검을 의무화하고, 여기에 국가의 예산을 제대로 투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 국민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 이제는 안전에 돈을 써야하고, 국민들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이 최고의 복지이고,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가 복지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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