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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7.1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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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고루성에 금지된 노래 서란의 가슴 울려"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14장 '임의 침묵'(14-1)
 
이슬비

 제14장 임의 침묵(14-1)

 

<지난글에 이어서> 

이 세상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묘한 도리가 여러 가지 있다 하였다. 그 신묘한 도리라는 것들은, 동쪽 하늘에서 서쪽 하늘까지 오가는 해와 달의 도리이기도 하고, 때에 맞춰 비와 눈을 내리고 바람을 불게 하는 하늘과 땅의 도리이기도 하고, 그 해와 달과 하늘과 땅을 있게 하고 인간들이 살아 숨 쉬게 하는 우주의 도리이기도 하다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도리들보다 더 신묘한 도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약과 독의 도리라 하였다.

 

이것은 독초입니다.”

 

간무 3, 지금은 멸문당한 공가인, 을씨가의 가주 려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몇날며칠을 두문불출하며 침상 위에서 보냈고, 그녀의 병을 진찰하기 위해 여러 명의 용한 의원들이 다녀갔으나 아무도 그 병이 무엇이고, 원인이 무엇인지, 또 치료법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그녀가 입에 거품을 물고 눈동자를 까뒤집으며 사지가 뒤틀려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녀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간무대제의 태의 연우가 처방이라며, 푸른 잎과 줄기를 말린 것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런 연우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려울의 아들 화인은 잎과 줄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 그 잎과 줄기가 화마인이라는 환각제임을 알았다.

 

그러하냐?”

 

, 어머니. 이것은 분명, 화마인이라는 환각제입니다. 주로 말린 잎을 태워서 연기를 들이마시거나, 차로 우려 마시지요. 많은 양을 복용하거나, 장기간 복용할 경우, 중독이 되어서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는 독초입니다.”

 

화인은 연우가 두고 간 화마인의 잎과 줄기를 버리려 하였으나, 려울은 그런 아들을 만류하였다. 어차피 원인 모를 병으로 고생하다 죽어가는 처지. 그러니 잠시나마 환각에 삐져 병을 잊다 죽어가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려울은 아침저녁으로 화마인의 잎과 줄기로 차를 우려마시고, 밤이면 잎과 줄기를 태워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려울이 화마인의 잎과 줄기를 복용한지 석 달이 지났을 무렵부터 증상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반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려울과 화인은 연우를 찾아갔고, 연우는 그들 모자에게 신농본초경(神 農 本 草 經)’이라는 서책 한 권을 건네주었는데, 그 서책에는 전간(癲 癎)’이라는 병과, 그 병에 쓰이는 약재가 적혀 있었다.

 

가주님의 병은 바로 이 전간이라는 병이었습니다. 전간은, 구하에서 가장 오래된 의서인, 이 신농본초경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그 역사가 깊은 병이지요. 어쩌면 천상계의 지배자이신 대일여래께서, 당신의 손자인 초아를 이 땅 위에 내려 보내셨을 때부터 존재했던 병일지도 모르지요.”

 

한데?”

 

한데, 명색이 용하다는 자들이 어찌 그리도 하나같이 전간이라는 병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 이것 제가 다 통탄할 지경입니다그려.”

 

…….”

 

어찌 되었든, 공자님께서 알고 계시는 것처럼 화마인은 환각제가 맞습니다. 많은 양을 복용하거나, 장기간 복용할 경우, 중독이 되어서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는 독초이지요. 하나,”

 

하나?”

 

화마인은 적당한 양을 복용할 경우, 여러 가지 효능을 볼 수 있습니다. 성질이 찬 탓에 경미한 설사를 일으킬 수 있기에 소화제로 쓰이며, 노인과 임산부, 허약자의 변비약으로 쓰이기도 하지요. 또한 화마인은 혈압을 떨어뜨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술과 함께 우려내어 혈압이 지나치게 높은 사람에게 처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주님처럼 전간에 걸린 이에게 장기간 적당한 양을 처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옴이 난 자리에 짓찧어 바르거나 기름을 내어 바르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길로, 려울과 화인 두 모자는 훌륭한 명의를 의심한 일에 대해 사죄하고 큰절을 올렸으며, 방계의 인물들 중 학식이 뛰어난 이들을 뽑아 보내어 연우에게 의술을 배우게 하였다.

 

 

제아무리 좋은 약이라 하여도 적당한 양을 복용하지 않으면 독이 되고, 제아무리 극악한 독이라 하여도 적당한 양을 복용하면 약이 되니, 이보다 더 신묘한 도리가 세상에 있겠는가. 하니, 의약의 신묘한 도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신묘한 도리라고 이를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 적어도 유흔이 보기에는 그러하였다.

 

유흔은 예기(禮 記)를 읽으며 뜻풀이를 하고 있는 서란을 바라보았다. 사비국과, 구하의 명에서는 선비라는 작자들이 평생에 걸쳐 읽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 한다는 사서오경 중, 사서와 삼경을 모두 떼고, 이제는 이경 중 하나에 해당하는 예기를 공부하고 있는 서란은 분명, 영리한 아이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제1후계가 열여섯이 되면 후계혈전을 치르게 되어 있는 이곳 가유에서 서란은 그저 아주 평범한길을 밟아 나가고 있는 것뿐이었다.

 

자여가 소학을 공부한다며?”

 

조금 전까지 예기에 몰두해 있던 서란이 서책에서 고개를 들고 유흔을 바라보았다. 유흔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고는, 서란이 조금 전까지 뜻풀이를 하던 공책을 펼쳐보았다. 공책에는 예기의 각 구절에 대한 서란의 뜻풀이와 함께, 의미심장한 시구가 적혀 있었다.

 

나 한 번 날개를 펼쳐

구만 리 상공을 날아오르려

석 삼 년을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데

매미와 참새가 자꾸만 비웃는다오

아서라

이 나무에서 저 나무 위로 옮겨가기만 하는

매미와 참새가

구만 리 상공을 날아가는 내 뜻을 어찌 아리오

 

장자 소유주편의 대붕이야기를 보고 시를 쓴 거야?”

 

유흔은 서란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이제 겨우 열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인 서란이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서란이 어른들조차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고, 어른들조차 가질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의 깊이가 있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학문적 성취와 예술적 소양, 감성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도 세계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서란은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만인 앞에 제시하는 지배자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서란은 지금 금족령에 처해진 상태였다. 금족령에 묶여 처소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설 수 없고, 공식적으로 죽어도 될 아이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서란이 그런 지배자가 될 수 있기는커녕, 언제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유흔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는 서란의 하얀 손을 지그시 잡아 눌렀다. 서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흔의 품으로 다가들었다. 유흔은 그런 서란을 꼭 안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kirie, eleision, christe, eleision…… 유흔은 자신이 늘 부르는 노래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한씨가의 본거지요, 한씨가 영지의 본성인 이곳 가라고루성에서는 불릴 수 없는 노래가 서란의 가슴을 조금씩 두드렸는지, 서란은 유흔의 노래에, 역시 이곳 가라고루성에서는 불릴 수 없는 노래로 화답했다.

 

Agnus Dei, qui tolis pecata mundi

miserere nobis

dona nobis pacem

 

지금 서란이 부르는 이 노래 또한 유흔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서란은 유흔의 품으로 더욱 더 파고들었다.

 

화야?”

 

유흔은 서란을 불렀다. 유흔의 옷 뒷자락을 붙잡은 서란의 작은 손이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우리 화야도 알고 있었구나.”

 

유흔은 서란을 품에서 떼어내고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서란의 통통한 볼을 쓰다듬으며 유흔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글에 계속>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사입력: 2017/12/04 [10:56]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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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연재소개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중소수자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작가 이슬비. 그가 체험한 폭력과 상처, 그리고 억눌렸던 삶을 녹여 쓴 서사극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 피다'. 가상의 중세 섬나라 부 상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오컬트무협판타지 그 소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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