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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9.1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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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때를 알아야...피는 꽃도 꽃이랴"
[연재무협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꽃이 시들어도'(10-2)
 
이슬비

제10장 꽃이 시들어도(2-1)

 

<지난 글에 이어서>
유흔은 쓰러진 초옥의 품에서 황제를 향한 연서가 떨어지는 장면을 읽어 내려갔다

"신첩이 폐하를 처음 뵈었던 날도 오늘처럼 이리 하늘이 맑은 날이었지요.
그때, 저는 제 앞에 나타난 사내가 폐하인 줄도 모르고 꽃밭에서 운우지정을 나누었지요.
이제 와 폐하와 저의 첫 만남을 추억하는 것은, 폐하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폐하를 원망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여염의 부부들처럼 사랑하지 못하였던 것, 그것을 한탄하기 위함입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저의 이름이 왜 초옥(草 屋)’이나 물으셨지요.
왜 하칠 이름이 초가(草 家)냐 물으셨지요.
그때 하지 못하였던 대답을, 마지막 가는 길에서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이름인 초옥을 짓기 위해서는 짚과 풀이 필요하지요.
누군가는 하찮다 여기는 짚과 풀이 누군가에게는 집을 짓는 귀한 자재가 되고요.
이처럼 비천한 신분의 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귀히 사랑 받으라, 제 어머니는 그런 의미로 저의 이름을 지으셨다 합니다.
폐하, 신첩 초옥, 비록, 저의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폐하께 사랑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만큼 폐하를 사랑하였기에 제 이름의 의미를 다하고 갑니다.
하니, 행여나도 너무 괴로워마세요.
이제 저는 폐하와 가화를 남겨두고 떠납니다.
신첩 초옥, 다음 생에서도 폐하를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도록, 폐하보다 조금 일찍 가 기다리고자 합니다."
 
지금은 남녀 사이에 빼놓을 수 없는 일로 자리 잡은 연서 주고받기또한, 해이안교의 시대 귀족들에게서 유래된 풍습이니 알 만하지 않은가.


유흔은 책장을 덮고, 잠든 서란의 옆에 누웠다. 또래보다 크다 하나, 유흔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몸은 품 안에 넉넉히 들어오고도 남았다.


 
391년의 세월을 견딘 해이안교의 시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두 황제의 싸움. 선릉황제와 정무여제의 싸움. 아니, 정확히는 태후와 황제의 싸움. 다시 말해, 보주태후와 정무여제의 싸움은 해이안교의 시대가 낳은 모순들과,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신흥세력들, 그리고 구세력과 신흥세력의 이해관계의 대립을 모두 보여준 희대의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제명여제는 본래부터 황제로 태어난 인물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경목황후의 딸로, 일찌감치 태녀로 책봉 받아, 제왕학 수업을 모두 마친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 함녕황제를 대신하여 섭정을 하는 도중에도, 또 아버지를 대신하여 군의 지휘를 맡을 때에도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차기 황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태녀전하, 소신 유구의 사신 신지, 태녀전하께 문후 드리옵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오랜만이오, 신지 왕자. 그래, 어인 일로 이 부상국의 조정을 찾아오셨소?”


, 전하. 요 몇 달 사이, 부상국의 제화족 상인들이 유구의 다이항에서 소란을 벌이는 일이 자주 있는지라, 황제폐하와 태녀전하를 모시고 이에 대한 논의를 좀 할까 하여 이리 알현을 청하였나이다.”


논의라 한다면……. , 제화족 상인들의 소란으로 인해 피해를 본 유구국 상인들이라도 있소?”


그렇사옵니다, 태녀전하. 하여…….”


하여, 우리 부상국 조정에 피해보상을 요구한다 이것이오? 이보시오, 신지 왕자. 내 그동안 유구국 상인들이 우리 부상국 상인들에게 조후의 품질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하고 있었건만, 그 은혜를 이리 갚아도 되는 것인가?”


……!”


좋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 부상국 조정에서 유구국 조정에, 질 낮은 조후로 인해 우리 부상국 상인들이 본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면 되는 것이겠군.”
 
이렇듯 정무여제는 태녀 시절부터 내치(內 治)는 물론, 외치(外 治)에도 뛰어난 인물이었고, 모든 부상국인들은 응당, 그녀가 선릉황제의 뒤를 이어 차기 황제로 즉위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했던 선릉황제의 황후가 아들을 낳으면서 권력의 양상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선릉황제의 친척조카이기도 한 황후는, 운한지씨가 출신인 강목황후의 딸보다 자신의 아들이 황가의 권위를 더 잘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며 궁 내부의 사람들을 포섭했다.


그리고 선릉황제가 세상을 떠난 그날, 황후는 황제의 유지를 조작해 태녀를 밀어내고,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앉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 했던가. 태후는 운한지씨가 출신의 섭정을 물러나게 한 것으로 모자라, 조정에 조서를 내려 섭정과 관백을 두는 제도를 폐할 것을 천명하며,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자신이 직접 섭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명실상부한 부상국의 1인자로 등극한 태후는 이듬해 또다시 조서를 내려, 어린 황제를 자신의 이복손윗누이에게 양위토록 하고, 태황제가 된 아들을 내세워 ()’이라는 기관을 설치하였다.
 
하하. 계모님, 아주 귀여운 수법을 쓰십니다그려. 태황제가 황제의 자문 역할을 하여, 황제가 국정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야말로 계모님께서 이 나라의 모든 실권을 쥐고 흔드시겠다고 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아닙니까?”
 
태황제가 ()’을 통해 현 황제의 자문 역할을 하여, 현 황제가 국정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 설립 취지는 정무여제를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야말로 해이안교의 시대 내내 황제의 권위를 크게 약화시켜왔던 섭정과 관백 제도의 부활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둘의 차이점을 굳이 찾자면, 섭정과 관백의 역할을 ()’이 대신 흡수한 것이라는 정도일 뿐.


제명여제가 보기에 이것은 계모인 태황태후가 자신의 손발을 묶어두려 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의 책임자요, 최고 결정권자는 태황제였고, 자신의 동생인 태황제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러니 ()’의 책임자요, 최고 결정권자가 될 사람은 자신의 계모인 태황태후였다.
 
그대들에게 섭정과 관백의 권한을 돌려주겠소.”
 
그 무렵, 귀족들은 황가의 권위를 높이려는 태황태후의 정책에 위기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정무여제는 그를 이용하여,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그 후, 정무여제를 도와, 태황태후와 태황제를 실각시킨 귀족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고, 이는 신흥세력들인 무사들의 성장으로 이어져 가라고에 막부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밤 사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것일까. 서란이 먼저 일어나 역사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유흔은 서란이 읽고 있는 쪽을 같이 들여다보았다.
 
정무여제의 마지막에 대한 편이로구나…….”
 
유흔은 책에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실각하던 날, 스스로 황궁에 불을 지르고, 황제의 인장을 우물에 던져 넣고, 황제의 대례복을 하나하나 벗으며 군사들에게 자신을 겁간할 것을 요구한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처절함이 아니었을까.


유흔은 문득, 면경에 비친 서란과 자신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 한씨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는 서란도, 그런 서란을 지켜보는 자신도 정무여제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는 때를 알아야
피는 꽃도 꽃이랴
 
서란이 짧은 시를 한 수 읊었다. 그 시는 다름 아닌, 정무여제가 마지막 순간에 지은 그녀의 절명시였다. <다음 글에 계속>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사입력: 2017/07/09 [09:20]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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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중소수자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작가 이슬비. 그가 체험한 폭력과 상처, 그리고 억눌렸던 삶을 녹여 쓴 서사극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 피다'. 가상의 중세 섬나라 부 상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오컬트무협판타지 그 소설 속으로...
서란은 이제 유흔이 들기에 벅찰만큼 무거웠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새벽의 광명, 새벽의 빛"
"비 오는 날의 전투란 곧, 지옥의 아귀다툼"
"피는 여전히 검붉고, 호방한 맘 거두지 않으리"
휘몰아치는 격동의 세월 난세에 파란이 이누나
겉으론 평온한 얼굴, 속으론 흐느껴 통곡했다
"울음을 삼키며 서란은 유흔을 부르고 불렀다"
"까맣게 탄 손 하나가 서란의 팔을 잡아왔다"
"붉은 피가 높이 뿜어 나와 밤하늘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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