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란에게 본국검법 가르치는 이유가 무언가?"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맹호은림(猛虎隱林)(5-2)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4/08 [08:01]

"서란에게 본국검법 가르치는 이유가 무언가?"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맹호은림(猛虎隱林)(5-2)

이슬비 | 입력 : 2017/04/08 [08:01]

제5장 맹호은림(猛虎隱琳) (5장 두번째 글)

 

<지난 글에 이어>

애초에 쉬운 길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인가?’
 
검법을 익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쉬운 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고서야, 유흔은 자신이 요 며칠,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흔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검법서에 등장하는 초식들을 하나하나 샅샅이 훑어보았다. 검법서에서는 모두 33()로 이루어진 초식을 하나하나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유흔은 33세의 초식을 설명하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바라보았다. 검법서를 지은 사람이 본국검법을 익힌 뛰어난 무인이었는지, 그림 하나하나에는 실전과 같은 역동성과 긴장감, 그리고 검법을 완벽히 익힌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완전무결함과 여유가 보이고 있었다.
 
그제야 유흔은 지금 서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국검법을 완벽히 익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서란이 본국검법을 완벽하게 익히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본국검법을 완벽하게 익힐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도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고도에는 사비국의 무역상들이나 사신들이 종종 묵어가는 숙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뛰어난 무사들을 돈으로 고용해 호위를 맡기느니만큼, 그들과 접촉한다면 본국검법에 뛰어난 무사들을 만나 대련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얼마 동안 다녀올 계획인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옥에게 재가를 받은 유흔은 그 길로 짐을 꾸려 서란과 함께 고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긴 여행에 힘들 터인데 서란을 두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리 할 경우, 서란의 친어미가 서란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도에서 유흔은 사비국에서 온 무사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북방의 독립영주가문, 다시 말해, 현재의 정세에서는 가유의 왕가나 다름이 없는 한씨가와 친분을 쌓고 싶은 사비국 상인들은 흔쾌히,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는 무사들을 유흔에게 소개시켜주었고, 유흔은 그들에게 삼백족의 검과는 모양이 다르게 생긴 제화족의 검을 보여주며 관심을 끌었다.
 
호오, 칼날의 끝이 마치 갈고리처럼 생겼습니다?”


정말 신기하군요. 우리 사비국에서는 물론, 이곳 고도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검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검은 저 몽고 오랑캐들의 검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칼날의 끝이 구부러져 있는 것이, 짐승의 목을 따기에 아주 좋게 생겼습니다그려.”
 
한 무사의 입에서 나온 오랑캐라는 말에 분위기는 금세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워졌다. 무사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가운데, 여태껏 유흔의 뒤에 서서 유흔과 무사들이 제화족의 검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던 서란이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하지. 우리 제화족은 수렵민이니, 짐승의 목을 따기 좋은 칼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통 속에서 마지막 남은 숨을 헐떡여가며 애처로이 인간을 올려다보는 짐승을 돕는 법이 뭔 줄 아나?”


……!”


바로, 그 목을 단칼에 내리쳐 한 번에 숨통을 끊는 거야. 그게 차라리 덜 고통스러우니까.”


…….”


그리고…….”


……?”


오랑캐라고 했나? 이것 미안해서 어찌하나. 우리 제화족의 기준으로 보자면, 남편을 따라 굶어죽거나 목을 매달아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여자를 열녀라고 부르며 칭송하고, 남자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여자를 자녀(恣 女)라고 부르며, 자녀안(恣 女 案)이라는 것에 이름을 올리는 사비국이야말로 오랑캐 중의 오랑캐인데?”
 
즐거운 담소로 시작했던 자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무사들은 서란을 자신들이 사비국에서 여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 부르며 사과하려 하였지만, 서란은 나는 한씨가의 후계라며 사과를 받지 않았다.
 
본국검법에 뛰어난 사비국의 무사들을 만나 대련을 하며 본국검법을 완벽하게 익혀, 서란에게 전수하려던 유흔의 계획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유흔은 그날 저녁,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저희들의 주인어른께서 공자님과 아가씨를 저녁 만찬에 꼭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무사들에게서 낮에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사비국 상인들은 행여,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 새라, 화려한 수레까지 보내며 유흔과 서란을 호화로운 저녁 만찬에 초대했다. 본래 기방으로 쓰이는 곳을 하루 동안 전세 내 꾸민 연회장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유흔은 수레에서 내리자마자 서란을 품에 안아들고 연회장의 높은 대문을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님, 아가씨. 모시게 되어서 광영입니다.”


아까의 일은 정말 송구하였습니다. 일평생을 칼만 쓰고 산 아랫것들이 배운 것이 없어 무례를 저질렀으니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어서 상석에 앉으시지요, 공자님, 아가씨.”
 
연회장의 한가운데에 놓인 상석에 앉자마자 유흔은 서란을 무릎에 앉히고 품 안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유흔은 서란의 귀에 입술을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애그, 우리 화야, 아까는 정말 잘했어.”


……?”


그래, 앞으로도 아까와 같은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하는 거야. 알겠지?”
 
기녀들이 커다란 술 항아리를 들고 다가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술잔을 차례대로 채워주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곧 한눈에 보기에도 호사스러운 산해진미들이 탁자 가득 차려졌다.
 
달이 중천에 떠오르고서야 저녁 만찬은 끝이 났다. 만찬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사비국 상인들은 서란에게는 석류석이며 황옥이며 하는 진귀한 보석으로 만든 패물들이 하나 가득 든 작은 상자를, 유흔에게는 오래된 그림 한 점을 선물로 바쳤다.


여각을 향해 달리는 수레 안에서 유흔은 사비국 상인들에게 선물로 받은 그림을 펼쳐보았다. 이제는 누렇게 변해버린 종이 위에는 하얀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고, 손에는 긴 검을 든 여자가 긴 머리를 흩날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흔은 마치 홀린 듯이 그림 속 여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림 속 여자는 다름 아닌, 유흔의 꿈속에 등장했던 그 여자였다.
 
다음날 새벽, 유흔은 꿈을 꾸었다. 이번 꿈에도 여자가 꿈에 등장했지만. 이번 꿈에서만은 지난 꿈들과는 다른 것이, 여자가 왕의 앞으로 나아가기 전, 내관 중 하나가 큰 소리로 무희 황창이라는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었다.
 
꿈에서 깬 유흔은 어제 선물로 받은 그림을 펼쳐보았다. 여자의 눈이 두려움을 잊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음을 유흔은 그제 서야 볼 수 있었다.
 
내가 서란에게 본국검법을 가르치려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본국검법은 상대를 베고, 그로 인해 끝내는 자기 자신을 베는 검이다. 그렇기에 법이라는 검으로 상대를 베고, 그로 인해 끝내는 자기 자신을 베야 하는 지배자의 자리와 가장 닮아 있는 검법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상대방을 베고, 끝내는 자기 자신을 베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안에 잠들어 있는 두려움을 없애야 하는 법이다. 아아, 나는 어찌해서 이런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그러나 서란은 이제 겨우 일곱 살 어린아이였다. 그런 서란에게서 두려움을 없애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날 내내 유흔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일곱 살 어린아이인 서란에게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을지 고민하던 유흔은 밤이 이슥해서야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화족의 무녀들이 제자들을 시험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다음 글에 계속>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슬비 오컬트무협소설 연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