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죽음, 이 시대 억울한 희생”

경찰폭력 317일만에 사망, 희생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어이없는 사태

이영일 | 기사입력 2016/09/26 [09:20]

“백남기 농민 죽음, 이 시대 억울한 희생”

경찰폭력 317일만에 사망, 희생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어이없는 사태

이영일 | 입력 : 2016/09/26 [09:20]

지난 11월 광화문 광장에서 한 농민이 20초동안 경찰의 직사 물대포을 맞고 쓰러졌다. 당시 민중총궐기 시위 현장에 참가한 가톨릭농민회 소속 농민 백남기씨. 그는 엄청난 충격의 물대포를 지근 거리에서 맞고 뇌진탕·뇌출혈에 코뼈 골절 및 시신경 손상으로 그동안 중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왔다. 

그런 그가 25일 오후 2시 14분에 결국 숨을 거뒀다. 그의 외로운 사투는 317일 동안이나 계속됐으나 많은 이들의 쾌유 염원을 뒤로 한 채 결국 안타까운 결과로 마무리됐다. 

▲ 317일간 사투를 벌여오던 농민 백남기씨가 결국사망했다. 하지만 여전히 잘못한 자는 없다.     © 연합뉴스
그의 죽음을 시위 도중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사고로 보기 힘든 것은, 시위 참가자를 보호하지 않는 인권유린적 시위진압 방식이 존재했고 사고 발행이후 정부와 경찰당국이 그동안 보여 온 무책임함과 최소한의 도의마저 상실한 뻔뻔함 때문이다. 

317일전 사고 현장에서 경찰은 시위중인 백남기씨를 향해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는 물대포를 사실상 조준 사격했고, 이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씨를 살수차 운용지침에 따라 즉시 구호조치해 병원으로 이송했어야 하지만 이를 방치해 결국 병원에 이송되기까지 44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를 살릴수도 있었던 시간이 차가운 길바닥에서 소진된 셈.

이후에도 정부나 경찰 그 누구도 경찰의 이러한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진실 규명 및 책임자 처벌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가 보편타당한 국민의 권리임에도 국가의 허락에 따라 통제하려는 듯한 박근혜 정부의 교만함에 대한 분노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공권력의 부당한 사용에 대한 중태자가 발생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어이없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나간 독재정권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켰다. 특히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의 사과 거부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백씨의 사망이후 정부가 제일 먼저 한 일도 그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 아니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에 10여대의 경찰버스를 포함한 경찰력을 배치한 것.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언제인가 보았던 지나간 독재정권의 사건 은폐모습과 이렇게 닮아있는 걸까. 고단한 317일간의 억울한 여정을 지내 온 그의 명복을 빈다.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은 후 한겨레전문필진, 동아일보e포터,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과 2019년 "일본의 학교는 어떻게 지역과 협력할까"를 출간했고 오마이뉴스 등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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