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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4.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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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냄새가 배어있는 대지의 속살
[녹색반가사유] 몸 낮춰 찬바람 피하며 벌판 지키는 방석식물
 
정미경
속절없이 봄에 피어났다가 가을이면 지고 마는 한해살이풀보다는, 그래도 겨울을 지새운 들풀이 아름다운 것은 곡절을 의연하게 넘긴 저간의 내력 때문일 겁니다. 조건타령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우직함에 매료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화려하지만 연약하고, 현란하지만 깊이가 없는 한해살이풀들의 얇은 생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생태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말입니다. 목본류가 아니면서 그 혹독한 시련을 잘도 넘긴다는 것은 참말이지 놀라움이 아닐 수 없어요.
 
▲  달맞이꽃.     ©정미경

 깊게 내린 뿌리에서 나온 잎을 서로 겹치지 않게 둥글게 배열하면서 낮게 퍼져있는 방석식물은 동토의 한기를 온몸으로 덮여주는 대지의 속옷입니다. 한껏 몸을 낮추어 찬바람을 피하고, 한줌 햇살조차도 놓치지 않으려는 나신의 속옷이지요. 제아무리 짐승들의 뭇발길에 밟힐지라도 스러지지 않는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대지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망초와 달맞이, 민들레, 질경이 그리고 쑥과 같은 초본류가 바로 대표적인 방석식물이지요. 꽃다지도 그렇고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을이 돌아오면 최대한 키를 낮춰 찬바람을 피하고 겨울이 되면 줄기와 잎을 고사시킨 후 뿌리로부터 새로운 잎을 내오거나, 씨를 뿌린 직후 싹을 틔워 그 상태로 겨울과 마주하는 방석식물의 겨울나기는 혹독한 난관을 넘나드는 지혜의 화신이기도 합니다.
 

▲ 방석식물인 냉이.     ©정미경

 안토시안이라는 붉은 계통의 색소를 잎 안에 비축하여 낮은 온도와 강렬한 햇살로부터 엽록체를 보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겨울로부터 대지를 지키고 대지의 온기를 품안에 안고 살아가는 방석식물은 벌판의 불침번, 나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잔털이에요. 따라서 살갗은 부르트지도 않고 갈라지지도 않습니다.
땅속줄기가 발달하여 번식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쑥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방석식물 중의 하나입니다. 겨우내 고구마로 연명하다가 그마저 떨어질 때 가난해서 허기진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구황식물의 대명사, 쑥은 어머니 대지가 내놓는 당신의 속살이기도 합니다.

코끝을 은은하게 자극하고 입안에서 까지 번지는 쑥향의 내음은 바로 여신의 속살 내음이기도 합니다. 어디를 가나 피어나는 우리들의 구황식물, 형형한 눈에 가득히 들어오는 수수롭기 짝이 없는 당신의 빛깔은 그래서 질리지를 않습니다.
 

▲ 혹독한 겨울나기를 한 꽃다지.     ©정미경
 
마루금과 벌판 그 어디라도 심지어는 빼곡한 잔디밭에도 피어나는 쑥은 참으로 정겨운 우리들의 젖과 같아요. 잿더미 속에서도 잊지 않고 피어나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쑥국과 쑥버무리 그리고 쑥떡으로 배를 채워주는 당신의 살점이니 오죽 하겠습니까. 미네랄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확인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움츠린 사람들의 희망이기도 하지요.

바람에 너울거리며 찌르는 듯 화려하게 와 닿는 허브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근함이 더 없이 좋은 우리 어머니의 냄새이지요. 수입종인 라벤다·민트류·레몬밤·로즈마리와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씀바귀.     ©정미경

뜨거운 물만 부어도 방안 그득하게 번지는 쑥향의 내음은 더없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기에 명상에도 그만입니다. 입안 그득하게 퍼지는 향내는 끝내 떨쳐낼 수 없었던 욕심마저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을 지녔어요. 
 
한웅큼 욕탕에 넣어주기만 해도 최고의 입욕제가 되고, 불 피우면 곧 바로 모깃불로 변신하며 찜질에도 당연히 으뜸이지요.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아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천연방향제이기도 합니다.
 
▲ 가난해서 허기진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부황식물의 대명사, 쑥.     ©정미경
상처에 찧어 바르면 살균과 진통 소염작용을 하고, 피를 맑게 하여주는 대표적인 약초입니다. 의초로 불릴 만큼 널리 알려진 쑥은 보양식과 뜸으로도 대중화되어 있지요. 찬 기운에 병을 달고 사는 여인들에게는 온혈효과와 더불어 각양각색의 부인병에 더 없이 좋은 천연약제로 되고 있습니다. 항암작용에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흔한 것이 이렇게 귀하게 대접받는 경우가 또 있을까. 정말이지 이러한 약리작용은 아파서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약제입니다. 어머니 살점이기 때문이지요. 어머니 냄새가 배어있는 속살에의 그리움, 바로 그대로입니다. 
 
짓밟혀서 문드러져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어머니의 배려가 이토록 깊을 수가 있을까. 겨우내 온기를 품고 어머니를 지켜준 그것이, 봄 되면 소리 소문 없이 상온에서 기적보다 더한 원소변환을 하여 제 자식들을 길러주니 당연히 당신의 속살이라 부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벌판 그 어디라도 피어나는 쑥은 어머니 대지가 내놓는 속살.     ©정미경
 
그러니 쑥을 비롯한 방석식물들을 봄나물이라고 부르지 마셔요. 그것은 경외하는 어머니 당신의 살점입니다. 봄이 오기에 쑥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쑥이 자라기에 봄이 오는 것입니다. 봄꽃은 방석식물이 퍼진 이후에나 피어나기 때문이지요. 
 
황량한 벌판에 그저 그런 빛깔로 깔려 있는 방석식물은 오랫동안 거동을 못하셨던 어머니가 비로소 거동을 하신다는 신호입니다. 이제 청사초롱에 불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기사입력: 2008/03/18 [10:15]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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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냉이, 꽃다지, 봄나물, 방석식물, 녹색반가사유] 어머니 냄새가 배어있는 대지의 속살 정미경 200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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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정미경님은 생태숲 해설가입니다. 환경단체인 풀빛문화연대의 기획위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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