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치에 맞나? 세상 바로보느냐?"

[김계유의 주역속으로⑤] 배합괘(配合卦)의 원리에서 배운다

김계유 | 기사입력 2008/02/10 [00:33]

"하늘이치에 맞나? 세상 바로보느냐?"

[김계유의 주역속으로⑤] 배합괘(配合卦)의 원리에서 배운다

김계유 | 입력 : 2008/02/10 [00:33]
역의 괘상을 범주로 나누면 배합괘(配合卦), 도전괘(倒轉卦), 부도전괘(不倒轉卦), 호괘(互卦) 등이 있는데 먼저 배합괘 개념을 중심으로 역(易)의 의미를 고찰해보자.

‘춘추전’에 실린 고사다. 남괴(南蒯)가 장차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면서 주역의 괘에 그 전망을 물었다. 나타난 괘상은 중지곤괘.(重地坤卦-위도 땅, 아래도 땅) 다섯 번째효(六五爻)가 변해 움직이는 수지비(水地比-위가 물, 아래가 땅)였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남괴는 자기 자신의 역모가 성공한다고 보았다. 역의 괘에서 다섯 번째 자리는 나라의 통치자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중지곤괘(重地坤卦)의 육오(六五)가 변했다면 효사가 황상원길(黃裳元吉)이니 자기 자신이 나라의 통치자가 입는 누런 황색 곤룡포(黃裳)를 입게 된다고 해석한 것이다.
 
남괴의 역모와 괘 해석은?

그러나 남괴가 자문을 구하고자 찾아간 자복혜백(子服惠伯)의 해석은 위와 달랐다. 역모를 꾀한다면 반드시 패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 까닭은 괘상의 변화를 바라보는 자복혜백(子服惠伯)의 해석이 남괴와 근거를 달리하는 데 있었다.

자복혜백(子服惠伯)이 말했다. “충직하고 믿음직한 도리라면 옳겠지만 그렇지 못하므로 반드시 패한다. 밖으로는 하늘의 이치로 강직하고 안으로는 하늘의 이치에 유순한 것이 충(忠)이요, 이치에 합당하여 바르게 행함이 신(信)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고 했으니,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치마는 아래에서 유순하게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바다. 또 元은 선의 으뜸이니, 가운데 마음(中心)에서 충직하지 못하면 그 색을 얻지 못하며, 일이 선하지 않으면 그 지극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릇 사특한 것은 易으로 물어서는 안되는데 이 세 가지가 이미 어긋났으니 남괴의 해석은 이미 어긋나 있는 것이다.”

과연 자복혜백(子服惠伯)의 해석대로 남괴의 역모는 실패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시각을 중심으로 역에 대한 의미를 정리할 수가 있다.

첫째 어떤 일을 도모함에 그 동기가 천하를 이롭게 하는 하늘의 이치에 맞느냐는 점이다. 즉 괘로 말하면 하늘(☰)에 짝이 되는 땅의 덕(☷)을 지향하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둘째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것 나름의 개념으로 온전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개념의 바탕 위에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익을 위해서는 점 치지말라"

전자는 의미가 도모하는 일의 동기에 관련된 해석이고, 후자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본질적인 안목의 문제다.

앞에서 말했듯이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일을 도모하고 있느냐를 묻는다면 그것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땅의 덕과 같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일에 대한 동기가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에만 근거하고 있다면 이것은 자복혜백(子服惠伯)의 말대로 아예 점을 쳐서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역의 이치는 여기에서 분명해진다. 즉, 역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사에 이렇게 묻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자 하는가?”

물론 궁극적인 대답은 단순하다. 곧 이웃을 통한 자기 자신의 행복이다.

생각해보라. 땅의 덕이란 무엇인가. 만물을 키우는 하늘의 덕이다. 만물을 자라나게 하고 만물을 포용하며, 만물이 힘입어 양육되는 하늘과 땅의 어진 덕성,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하고 또한 목적이기를 바란다. 유교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인의(仁義)다.

그밖에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가늠되지 않는 환희심과 충만한 행복감으로 가득해진다. 또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서 도움을 받는다는 긍정적이면서도 거대한 삶의 에너지를 만끽하게 된다. 이것은 역의 중지곤(重地坤)에서 배우는 평범한 일상의 가르침이다.

"나는 왜 이일을 하려고 하는가?"

거듭 묻는 말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행복한 삶이다. 그리고 돈과 명예 정치적인 권력은 왜 추구하고자 하는가? 행복한 현실을 위해서다. 이성을 추구하고 학문을 하면서도 동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돈과 바람직한 이성과 지위를 얻었음에도 자기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이 하늘의 기운에 힘입은 땅의 덕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자복혜백이 말하는 것처럼 삶의 동기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자복혜백은 역의 중지곤괘 해석에서 남괴에게 이점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땅괘의 변화를 해석하면서 하늘괘를 염두에 두는 입장은 그것이 단순히 하늘을 본받아야 한다는 땅의 속성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반드시 상대적인 개념의 보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온전함이 비로소 성립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복혜백의 두 번째 가르침 즉 세상의 본질에 관한 역(易)의 원리다.

"좋은 게 있으면 싦은 것도 있으니"

세상의 모든 이치는 좋은 게 있으면 싫은 것이 있다.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다. 긴 것이 있으면 짧은 것, 높은 것이 있으면 낮은 것이 있다.

그렇다면 좋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고, 싫다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높음과 낮음, 부유함과 가난함, 큰 것과 작은 것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것은 항상 반대 괘상의 형태를 통해서 그 의미의 본질이 비로소 온전해지고 또 변화하는 과정의 움직임 위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작은 것을 떠나 큰 것이 있을 수 없고, 낮은 것을 떠난 높음도 생각할 수 없다. 가난한 삶을 떠난 부유함이나 그밖의 모든 인생의 가치관들이 반드시 이와 같다. 하물며 사사로운 이기심이며, 세상을 혼란과 이전투구로 몰아넣는 배타심이겠는가.

땅이 하늘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반쪽의 덕이다. 남자가 여자의 역할을 부정하고 여자가 남자의 역할을 부정한다면 그것도 역의 이치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세상이 근거하는 이데올로기도 예외가 아니다. 흑(黑)이 있다면 백(白)이 있다. 적(赤)이 있다면 청(靑)도 있다. 이것은 역에서 짝이 되는 배합괘를 중요시하는 이유의 하나다.

"반대가 짝을 이루어 온전해지느니..."

배합괘란 쉽게 설명하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반대되는 것끼리 짝을 이루어 하나의 온전한 작용을 이룬다는 개념의 상징이다.

곧 순수한 양으로 이루어진 하늘(☰)은 모든 효가 양이므로 그 짝은 순수한 음의 땅(☷)이 된다.

불(☲)은 두개의 양이 바깥에 자리잡고 있고 가운데 하나는 음이므로 그 배합괘는, 두개의 음이 가장 자리에 위치해 있고 가운데 하나의 양이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물(☵)이 배합괘다.

나머지 괘들도 마찬가지다. 바람과 우뢰의 짝(☳uc0☴), 산과 못의 짝(☶uc0☱) 이들은 반드시 서로 반대되는 괘상의 작용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덕을 온전하게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들을 역에서는 서로 반대의 모습이면서도 오히려 상대방의 기운을 짝으로 보완해준다는 뜻에서 배합괘라고 일컫는다. 그것들은 陽이 陰으로 변하고 陰이 陽으로 변해 서로 다른 정반대편의 괘상이 되면서 만물의 변화를 이끌고 만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주역 계사전의 일음일양 작용

그래서 도란 다름 아닌 일음(一陰) 일양(一陽)의 작용을 두고 일컫는 말이라는 게 주역 계사전의 시각이다. 하늘의 기운(☰)은 산(☶)을 통해 땅으로 내려오고 땅(☷)의 기운은 못(☱)을 통해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사귐에 있어서 산(☶)과 못(☱)에 의존한다는 산택통기(山澤通氣)의 배합괘 개념이다.

봄에 하나의 양 기운이 땅 밑에서 우뢰(☳)로 움직이면 땅 위에서는 바람(☴)이 함께 만물에 온기를 더해 주니 이것은 우뢰와 바람이 만물을 살아 숨쉬게 한다는 뜻에서 뇌풍상박(雷風相薄)의 배합괘다.

또 물(☵)과 불(☲)은 서로 相剋관계이지만 맹목적으로 싫어 멀리하지만은 않는다. 불은 물을 적당히 말리고, 물은 불의 기운을 적당히 보완하는 점에서 물(☵)과 불(☲)은 서로 하나의 좋은 짝이 되는 수화불상사(水火不相射)의 배합괘다.

삼획괘를 근거로 한 팔괘

이처럼 상대적인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요긴한 구성 요소다. 그러므로 세상은 자기다운 것만을 고유한 자기의 소유물로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이치를 우리는 역에서 배울 수 있게 된다. 또 그것이 바로 자복혜백이 남괴에게 일깨워준 괘상의 교훈이기도 하다.
 
참고로 역(易)은 삼획괘(三劃卦)가 기본이다. 그 까닭은 하늘과 땅의 사귐에 의해서 만물이 전개되어진다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사상을 역의 괘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획괘를 기본으로 할 때 괘상의 종류는 팔괘(八卦)가 되는데 그 근거는 삼재를 반영하는 음과 양에 삼재를 세제곱한 2³=8과 일치하는 수이기 때문이다.

역의 기본 팔괘를 나열하면 형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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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8           7           6          5            4           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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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명    곤(坤)  간(艮)  감(坎)  손(巽)  진(震)  이(離)  태(兌)  건(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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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상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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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땅         산        물         바람    우뢰       불        못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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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란 하나의 허명인 것을 사회는 왜 이것을 우리에게 강요할까? 이력이란 하나의 그림자인 것을 사회는 왜 이것을 우리에게 주문할까? 초상이란 하나의 찌꺼기인 것을 우리는 왜 거기에서 알맹이를 찾을까?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세상 진짜도 가짜이고 가짜도 진짜인 세상 진짜와 가짜의 함정을 우리가 알 날은 언제일까? 산모퉁이에서 피어나는 한 조각의 구름이여 물안개 가득한 아침 연못의 풍경이여 가짜에 붙들린 나는 오늘도 진짜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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