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알면 무시하기 쉬운 것. 이곳에서는 무엇으로 불리는지 식물백과사전에 찾아 보았다. 독일어 이름으로 Eibisch - Hibiscus syriacus. 그런데 유래를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래졌다.
"무궁화는 아시아가 원산지로써 샤론의 장미로 불리운다. 한국에서는 2000년 전에 재배된 기록이 있고 무궁화를 직역하면 '불멸의 꽃'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1원의 동전에 무궁화가 새겨져 있으며 그 나라의 국화이기도 하다. 한국의 애국가에도 무궁화는 "샤론의 장미 / 나라의 온 강산에 피어/ 영원히 보전하세"로 노래한다. 이 노래는 온 산에 무궁화꽃이 가득한 에덴동산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실지로 눈 앞에 그렇게 피어 있지 않을까?"
우리가 부르는 실지의 노래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쓰여 있고 재배 시기와 방법에 대해 나온다. 그리고 꽃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면 갈증해소, 소화, 소염, 진통, 습진, 담즙에 좋다는 건강요법도 기록되어 있다.
“신시시대에는 무궁화를 환화(桓花)라 하여 환국(桓國)의 꽃으로 불렀으며, 단군조선시대에는 환화(桓花), 근수(槿樹), 훈화(薰花), 천지화(天指花)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표현되었다. 天指花를 머리에 달고 다닌 그 당시의 청소년을 천지화랑이라 하였고, 이것이 신라시대의 화랑도로 계승되었다.
단기고사에 의하면 "제5대 단군 구울(丘乙) 16년에(기원전 2090년 즉 지금으로부터 4088년) 임금께서 고력산(古歷山)에 행차하여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주변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라고 기록되었으며 또한 단군세기(檀君世紀) 기록에도 정축년에 친히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쌓고 환화(桓花)를 많이 심었다 하여 제5대 단군 구을(丘乙)에 대한 사실(史實)을 적고 있다.”
일제시대 때에는 사람과 말과 모든 것이 압제 당했듯이 무궁화도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정하기 전인데도 우리 민족의 저항 의지를 보이는 꽃이라 하여 일제가 의도적으로 뽑아버리기도 했고, 눈을 멀게 하는 꽃가루라는 낭설을 퍼뜨려 멀리하게 만들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였던 한서 남궁 억 선생 같은 분은 1918년 강원도 홍천 보리울의 학교와 교회에서 무궁화 묘목을 기르고 전국적으로 퍼뜨리며 민족 교육을 병행하다가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일명 무궁화 동산 사건) 이름없는 농부들은 깊은 산으로 옮겨 심기도 하고, 여인들은 무궁화 수를 놓아 나라사랑을 불태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