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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9.2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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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로잔·몽트뢰 그리고 레만호
스위스통신 "사슬없는 영원한 자유 그리워한 쉬옹성의 죄수여..."
 
프리다
제네바. 칼빈의 도시. 신교의 본고장인 제네바... 그런데 실제로 보이는 현대적 도시의 풍경은 그것과는 많이 멀어 보인다. 제네바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아름답고 검푸른 레만호수 위로 140m나 솟아 오르는 분수대 물줄기의 이국적인 모습과 함께 뒤로는 새하얀 만년설이 감싼 모습으로 마치 한 폭의 환상적인 그림 같다.
 
▲제네바에서 바라본 레만호수. 그림엽서 사진입니다.  © 프리다

▲ Cathedrale de St. Pierre. 사원은 12∼13세기에 세워졌으며

16세기 쟝 칼빈이 종교개혁을 선포한 곳으로, 약 25년간 설교했던 곳. 신학 강의를 했던 채플이 옆에 있다.      © 프리다
장 칼빈, 종교혁명가 중 가장 엄격한 자로 알려진 그는 1509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564년 이 곳 제네바에서 생을 마감했다. 제네바의 작가들은 아직도 거리를 배회하는 혁명가의 고통스런 영혼을 언급하며 칼빈의 이름을 인용한다. 엄격하고 완고한 윤리를 설파하는 칼빈의 도시에서 자유를 꿈꾸는 탄호이저 가극은 좀 생뚱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장에서 바그너의 가극 탄호이저가 상연되는 이 곳 제네바에는 자유와 낭만이 넘실거린다. 어느 지역신문이 칼빈이 탄호이저 때문에 무덤으로 되돌아간다는 조롱의 글을 싣기도 했지만 격분하거나 불쾌해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제네바인들에게서 칼빈이 주장한 색이 단조롭고 단순한 이미지의 옷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세대의 혁명이 아니라 유행이다. 제네바에서 누군가 검정색 수건을 두르고 나타난다면 그녀는 분명 아라비아의 부유층 여성으로서 쇼핑을 하기 위해 제네바로 날아왔을 것이다.

화려한 상점들에서 빛나는 사치스러운 물건들은 제네바 외의 어느 나라 여느 도시에서 쉬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것 또한 칼비니즘과 거리가 멀다. 불쌍한 칼빈은 탄호이저가 아니더라도 무덤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 바스티옹 공원에 있는 개혁의 벽     © 프리다
그럼 제네바 어디에 칼빈이 있을까? 그는 바스티옹 공원에 있는 눈에 가장 잘 띄는 개혁의 벽에 있다. 질람 파렐의 엄호를 받으며 측면에 새겨져 있고 옆으로 다른 종교사상가들이 있다. 이 비석은 환한 만큼 차가워 보이기도 하지만 제네바가 칼빈에게 크게 감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은 부유한 제네바에 대해, 꽃봉오리가 활짝 핀 도시, 국제적이고 재능 있는 도시, 너무나 많은 것을 갖추고 있으며 가장 스위스적이지 않은 도시가 스위스의 가장 유명한 도시라는 사실에 대해 감사를...  개혁의 벽은 칼빈의 발자국을 찾는 관광객들의 종점이기도 하다.
 

▲    왼쪽 Farel, Calvin, Bza, Knox  © 프리다
경영학 교수이며 제네바 전 의원인 페터 춉은 그의 글에서 오늘날 츠빙글리의 취리히는 츠빙글리즘으로 남아있지만 제네바는 칼빈 보다 루터를 더 신봉한다고 썼다.  "사람들은 칼빈을 좋아하지만 그가 무엇을 설교했는지는 모른다. 제네바인들은 교회와 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제네바를 가장 아름다운 하느님의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언젠가는 모두가 가야 하는 곳으로..."
 

▲ 제네바의 한 요트 선착장     © 프리다
칼빈은 16세기의 제네바에 새로운 종교만이 아니라 많은 영속적인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를 추종하던 수천 명의 신도들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에서, 네덜란드에서 제네바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주거공간이 필요했고 층고(層高)를 올리는 건축양식을 이용했다. 그들이 마술을 부릴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솜씨는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난 세기 동안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이 제네바로 이주해 왔고 신교도들은 다시 소수 집단이 되었다. 점점 인구가 많아지고 제네바는 외곽으로 더욱 넓혀졌다.  제네바의 시계상점들은 세계신기록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칼빈에 의해서이다. 그의 추종자 위그노인들이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이주해 왔는데 그들은 탁월한 시계공작가들이었다.
 
당시 제네바는 구교의 압박을 피해온 신교도 및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해방구 역할을 하면서 유럽의 자유지성과 신지식의 요람이었다. 위그노인들의 시계산업도 자연스럽게 제네바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후 인접 쥬라(Jura)산맥 언덕과 뇌샤텔(Neuchatel)까지 확대되었다. 
 
1785년에 약 2만 명이 제네바의 시계산업에 종사하여 연 85,000개의 시계를 생산하였는데, 뇌샤텔에서는 5만 개가 생산되었다. 이는 2004년 약 2천 5백만 개의 시계, 그리고 여러 부품이 생산되어 연간 100억불의 산업을 이루며 대부분 이를 수출하는 것과 크게 비교된다. 
 
제네바는 글로벌 세계에 이렇게 일찍 발을 내디뎠다. 시계품목 중에 칼빈 클라인도 있다.  칼빈의 유명한 이름이 들어 있지만 오늘날 이 이름은 제네바에서 나오는 게 아니며 디자인도 프로테스탄트적 유행과는 멀어 보인다.  여러 유명한 시계상표가 있지만 그 중에서 파텍 필립은 특별하다. 그 이름을 딴 시계박물관이 있고 그 역사를 전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 제네바     © 프리다
제네바는 골목 모퉁이마다 은행들이 있다.  스위스의 은행산업이 발달하게 된 주요 원인은 비밀유지와 영세중립국으로서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안정성 때문이다.  은행원이 고객의 비밀을 누설할 경우 형벌로 투옥되기까지 하는 스위스 은행의 비밀유지 원칙은 300년 전 이상의 전통이다.
 
프랑스의 앙리4세 왕이 종교전쟁 종료 뒤 위그노 신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1598년 낭트칙령(Edict of Nantes)을 발표했다. 그러나 1685년 프랑스의 왕 루이16세가 이를 철회했고 종교박해를 우려한 신교도들이 피난 길에 올라 제네바로 이주해왔다. 그들 일부가 제네바에서 은행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곳 은행의 가장 큰 고객은 아이러니 하게도 프랑스 왕이었다. 사치 등의 이유로 큰 돈을 필요로 했을 뿐 아니라 갚을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랑스 왕은 자신이 박해해 추방시킨 신교도들로부터 돈을 꾸어 쓴다는 창피한 사실을 감추고 싶어 했다. 은행주도 사업상 최대 고객인데 요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때부터 은행고객에 대한 비밀주의가 정립되었다고 한다.
 

▲ 1904년에서 1922년까지 제네바에서 제작된 자동차 Piccard-Pictet.
    오늘의 삐께 회사는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비밀은행이 되었다.     © swiss produkt 
 
이러한 은행비밀주의는 1713년 제네바 지방정부에서 법제화됐고, 스위스 연방정부도 1907년 민법에 포함시켰고, 1911년에는 노동법에 은행비밀이 누설되어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 피해고객의 손해배상을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1930년대 히틀러가 해외에 자금을 도피하는 독일인을 사형으로 처벌한다는 법을 제정하고 위기를 맞는다. 나치의 게슈타포(비밀경찰)가 스위스에 은닉된 독일인 예금정보를 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는 1934년 은행관련 연방법을 제정하여 은행비밀규정정을 강화했다. 특히 위반자를 처벌토록 하는 법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 은행비밀규정은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특히 나치 독일시대에 희생된 수 백만 명의 유태인 예금을 그냥 집어삼켰다는 게 그 이유다. 예금주가 사라져 버린데다 비밀주의 원칙까지 있으니 고스란히 은행재산이 돼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한 미국 등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스위스는 1998년 12억 5천만 불의 보상금을 유태인 피해자 가족들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 등을 증명하는 까다로운 증빙서류 요구 등으로 보상금 일부 금액만이 지급된 상태이다.


▲레만호수     © 프리다
 제네바의 토박이 가족들은 대부분 신교도들이다.  그들은 오늘도 구시가지의 그랑쥐 구역에 살고 싶어하며 수줍음이 많은 강한 칼빈주의자들이다. 강한 칼빈주의자란 부유하지만 뽐내지 않으며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을" 또는 "화려함 보다는 노동을"의 모토를 가진 사람들이다.
 
제네바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창설된 국제연맹의 본부 소재지였다. 국제연합으로 개편되고 본부가 뉴욕으로 이전된 뒤로는 국제연합 제네바 사무소의 소재지로 바뀌었으며 경제ㆍ사회분야의 각종 국제회의가 개최되는 하나의 외교센터를 이루고 있다. 
 
ITU(국제전기통신연합), IMO(국제이민기구), WMO(세계기상기구), WIPO(세계지적소유권기구), WHO(세계보건기구), ILO(국제노동기구),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ICRC(국제적십자위원회) 등 굵직한 국제기구의 소재지일 뿐만 아니라 GATT에 이어 WTO(세계무역기구)의 본부이기도 한 제네바는 수 만 명의 외교관과 그 가족들,  그리고 국제기구 근무자와 국제회의 참가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다보니 주택수요가 커 집주인이 입주자를 심사해 선심 쓰듯 세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제네바 인구 18만 중 약 30%는 국제기구 사무국 직원과 외교관 및 이들의 가족이다.  사람들은 제네바를 크림케익에 비유한다.  시민들이 크림케익처럼 층을 이루고 살면서도 서로가 섞이지 않는다고 해서이다.  겉으로 차가워 보이는 도시의 인상은 칼빈의 배고픈 영혼 때문이 아니라 젊고 호화로워 보이는 모순된 사회주의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 로잔에서 바라본 레만호수     © 프리다
레만 호수를 끼고 100Km  떨어진 곳에 로잔(인구,12만)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 뿐 아니라 약 20개가 되는 각종 스포츠연맹(예: 스키연맹, 체조연맹 등)의 본부가 있다.  태권도연맹의 본부는 서울에 있는데, 이처럼 스포츠관련 연맹이 스위스 밖에 있는 건 예외적이라 볼 수 있다.
 
로잔에는 스위스 연방 대법원이 있으며,  세계 각국 재산가들의 별장이 모여 있다. 또 관광 휴양지이고, 유명한 학교들이 있는 교육,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일컬어지는 노트르담 대성당도 이곳에 있다. 또 어떠한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예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독창적 작품을 전시하는 'Collection de l'Art Brut', 그리고 1936년 베를린 대회 이후 역대 성화를 비롯해서 메달이나 당시의 귀중한 올림픽 자료와 각 대회의 하이라이트 장면 영상자료 등을 전시한 올림픽 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로잔에서 약 20km를 가면 몽트뢰가 나온다.  멋진 여름밤의 재즈 축제와 휴양지, 호텔 학교로 유명하다.  바이런의 서사시 <쉬옹성의 죄수>로 유명한 쉬옹성은 9세기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로 넘어오는 동방 상인들에게 통행세,  물품세를 받기 위해 만들어진 문으로 13세기경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시옹(Sion)의 주교들의 소유지였으나 12세기부터 성은  사보아의  백작들에게 넘어갔다.
 
사브와의   삐에르 2세  치하 건축가 삐에르 메니에르가  대규모로 재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첫 번째 뜰 부근은 병사의 숙소와 입구였고 두 번째 뜰 부근은 성주의 숙소, 비축창고와 감옥이 있었으며,  세 번째 뜰 부근은 백작과 그의 수행원의 방과 거실들 그리고 예배당이 있었다.
 
몽트뢰는 1536년 스위스  베른지방 사람들에 의해 정복되었고, 이들은 여러 해 동안 쉬옹성을 창고와  무기고, 대법관들의 숙소로 사용했다. 1798년 보드와즈 혁명으로 베른 인이  쉬옹성을 떠났고, 1803년에는 보 지방의 소유가 된다.  건축물의 복원 사업은 19세기말에  착수 되었는데, 12세기 말 고증자료를 활용했다고 한다.
 
▲ 쉬옹성     © 프리다
쉬옹성의 죄수(The Prisoner of Chillon)
 
영국 시인 바이런이 쓴 ‘쉬옹성의 죄수' 주인공은 프랑시스 보니바르(Francois Bonnivard.1496~1570)다. 제네바의 종교지도자로서 제네바의 독립과 종교개혁을  주장하다 독재자였던 사보이 공작에 의해 이 성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4년간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고 한다.
 
보니바르는 1536년에 풀려났지만 그 후로도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였고 빅토르 위고 등 여러 유명인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특히 바이런은 셸리와 함께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니바르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그의 혁명적 투혼이 잘 나타난 ‘쉬옹성의 죄수’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 서사시는 고통과 슬픔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바이런의 이 시로 쉬옹성은 더욱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     보니바르가 갇혔던 쉬옹성의 감옥.   불안한 인간의 고독이 느껴진다.  ©프리다
-쉬옹성(城)-  바이런
 
사슬 없는 마음의 영원한 정신!
자유여,
그대는 지하 감옥에서 가장 찬연히 빛난다.
그대 사는 곳은 사람의 마음 속이기에
그대를 묶어 놓는 것은 그댈 사랑하는 마음 뿐,
그대 아들들이 족쇄에 채워져 얽매일 때
그리고 축축한 지하 감옥, 햇빛 없는 어둠 속에 던져질 때,
그들의 조국은 그들의 순교로 승리를 얻고
자유의 명성은 그 날개를 널리 펼친다.
쉬옹이여!
그대의 감옥은 오히려 성스러운 곳
그대의 슬픈 돌바닥은 제단이다.
보니바르가 한 때 그 차디찬 돌바닥이 잔디인 양
그의 발자국이 그 모두에 남을 때까지
그 돌바닥을 짓밟고 거닐었기에
아무도 그 발자국들을 지우지 말지어다!
그 발자국들이 신에게 폭정을 호소하는 증거가 되기에.
 
......중략
 
나는 절망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이 풀렸을 때
이 육중한 벽이 나에게 암자가 되었네!
기사입력: 2007/07/21 [00:54]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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