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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7.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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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자연과 어우러진 국제도시
스위스통신 인구 37만명의 금융중심도시, 3명 중 1명은 외국인
 
프리다
 금융의 도시로 알려진 취리히는 87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37만명이 사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취리히 호수 북쪽에서 시작되는 림마트강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으며 취리히 주의 수도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60km 떨어져 있는, 여름에도 산꼭대기가 눈으로 덮혀 있는 알프스 글라르네르가 보인다. 도시의 주변에는 깊은 숲을 이룬 여러 산들과 호수 주변의 가든과 공원들, 그리고 강가의 나무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푸른도시의 이미지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다.
 
▲취리히호수     ©프리다

 
▲취리히 전차     ©프리다

▲취리히시에서 전망좋은 리기블릭으로 올라가는 짧은 톱니바퀴 기차.     ©프리다

 
이 도시에서는 구역마다 두드러진 고유의 특징들을 볼 수 있는데 구시가지에 속하는 림마트강에서 취리히산 쪽의 구역은 전통적인 가옥들과 부유층들이 살고 있으며, 글라트탈 슈바멘딩엔 구역은 노동자들과 외국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림마트탈의 산업지역은 마약과 매춘으로 알려진 곳이다.

▲취리히 중안역     ©프리다
37만명이 살고 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 취리히는 인구 3명 중 한 명은 스위스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외국인이 많은 국제적인 도시라 할 수 있다. 취리히 주 외에서 출퇴근을 하는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100만명에 이른다.

 
취리히 공항은 시내에서 기차로 또는 버스로 갈 수 있다. 공항터미널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으며, 이 곳 공항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국제항공노선을 가지고 있다.
 
취리히시의 대중교통은 전철(13개의 역)과 전차와 버스. 시내에 직장이 있는 시민들은 첫째로 전차, 또는 전동버스를 이용하며, 긴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취리히 중앙역에서 기차로 로마까지 10시간이, 파리까지는 6시간이 걸린다.
 
세상을 먹거리로 볼 때, 취리히시에서는 전 세계를 먹을 수 있다. 중국식, 일본식, 멕시코, 몽고, 이탈리아... 물론 한국식도. 

 
취리히의 전통음식은 스테이크나 감자요리 등이 있지만 계절에 따라 겨울에는 퐁듀 종류, 여름에는 신선한 야채 샐러드를 즐긴다. 지갑이 두둑하지 못할 때는 패스트 푸드 음식, 피자 또는 케밥등의 음식집들도 모퉁이 마다에서 찾을 수 있다.

 취리히의 큰 축제인 러브프레이드는 베를린의 러브프레이드가 사라진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가 되었다. 전 유럽에서 100만명 이상이 모여들어 이 축제에 참가한다.

▲람마트 강가에 위치한 로마시대때의 조합건물     ©프리다

 
▲취리히호수에서 시작되는 림마트강     ©프리다

 
▲유명한 쇼핑지역 반호프거리     ©프리다


▲쪼익하우스 식당(Zeughaus)     ©프리다
그 외에도 여름불꽃 축제와 눈사람을 태우는 축제 섹셀로이텐, 호수가의 재즈축제 등이 있다.

구시가지에서는 림마트 강 주변으로 11-13세기의 가옥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이런 전통가옥들 입구에는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시기와 역사가 새겨져 있다.


취리히는 기원전, 로마시대 전부터 켈트인들의 투리쿰(Turicum)이라는 이름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이름은 라틴어로도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다.
 
로마시대에는 25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으며 여러 조합과 세관이 있었다.


쪼익하우스는 취리히 방문객 누구나 한번은 와 봄직한  취리히에서 가장 유명한 전통음식점이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많은 전통음식 메뉴와 옛날 장군이 차던 긴 칼에 음식이 담겨 나오기도 하고 중세기때의 대포나 총, 칼 그리고 갑옷,투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에 들어서면 중세시대의 어느 한 구석으로 찾아 온 느낌이 든다.
 

 
 

<취리히의 성자 펠릭스와 레굴라의 일화>

취리히의 성자 펠릭스와 레굴라 남매는 테베지역에서 살다가 로마인들의 그리스도인에게 가하는 박해를 피해 3세기에 상트 마우리스에서 글라루스 산을 넘어 취리히에 정착해 살다가 로마 총독 막시밀리안에게 발각되어 학대를 받고 와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하게 된다. 지금의 성모사원과 대사원을 이어주는 다리 옆이 만든 무덤이 순교를 당한 자리인데 후에 작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8세기때부터 성지로 지정되어 많은 순례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 계기는 814년 칼대제가 독일의 아아헨에서 사냥중에 사슴을 쫓아 취리히까지 오게 되었는데 펠릭스와 레굴라가 순교당한 장소에서 갑자기 타고 있던 말이 무릎을 꿇었다.

▲왼쪽 대사원과 오른쪽 구시청 중앙이 펠릭스와 레굴라를 위해 물위에 세워진 물탑교회.  ©프리다

 
▲성모사원     ©프리다
그리하여 칼 대제는 순교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 옆에 대사원을 지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순례자들을 돌보는 수준이었고 루드비히에 의해 먼저 성모사원(870)을 짓고 그 다음 대사원을 건축하게 되었다. 이 건축은 1100년에 시작하여 1230년 즈음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대사원은 사제였던 츠빙글리가 칼빈과 루터의 영향을 받아 취리히에서 종교개혁 운동(1519-1531)을 벌였던 곳. 후에 대사원은 개신교교회 초대교회이자 츠빙글리가 초대목사로 임몀된 곳이다.


1524년 종교개혁 기간 동안 펠릭스와 레굴라와 관계된 모든 것이 압류 당할 즈음 신도들은 펠릭스와 레굴라의 머리가 담긴 돌 비석을 취리히에서 약 130km 떨어진 안데르마트에 옮기는데에 성공했다. 1950년 카톨릭교회는 취리히에 페릭스와 레굴라 성당을 지었다.

스위스에는 26개의 주가 있는데 각 주마다 교육법과 종교가 다르다. 주로 구교와 신교로 나누어지는데 취리히는 신교의 대표적인 주이다. 스위스는 구교와 신교의 의식에 따라 주마다 공휴일도 다른 독특한 나라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츠빙글리 동상     ©프리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1448-1531)는 성서와 신앙에 대한 개념이나 새로운 교회상의 정립, 정통교회에 대한 투쟁 등에 있어서 루터나 칼빈의 공통된 기본원칙들을 갖고 있었다.
 
츠빙글리는 글라루스에서 사목하던 중 군종신부로서 전투에 두 번 참전하고 용병제도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취리히에서 사목하면서 에라스무스적인 개념의 설교를 하면서 유명해졌다.그리고 패스트 발병을 체험하고서 신앙에 대해 더욱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츠빙글리는 1521년 독일의 칼 5세와 전쟁 중이던 프랑스 프랑소와 1세의 스위스에 대한 용병 파병 요청으로 다시 한번 용병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그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교회와의 갈등과 분열은 순전히 외형적인 교회법의 위반 때문에 촉발되었다.

1522년 사순절임에도 아인지델른의 사제인 레오 쥬드와 취리히 교회 지도자들이 금육을 지키지 않고 소세지를 먹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것에 대하여 취리히를 관장하던 콘스탄츠 주교는  취리히 시의회에 이들의 처벌을 요구하였고, 시의회는 이들을 투옥하고 벌금형에 처하였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먹는 음식을 금지하는 교황의 법령에 대하여 복음에 의해 선포된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비난하였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서만이 필요하며, 교회, 공의회, 교황이 하느님의 말씀을 정의,해석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취리히 시의회가 개혁을 더디게 진행하자 일부가 과격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면서 과격한 개혁운동을 전개하게 되어 츠빙글리는 그들과 결별하였다. 그리고 츠빙글리는  루터와도 성만찬 논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루터는 성찬식에 상징적 성격이 있다는 것과 영적인 의미의 먹고 마심을 물론 전제하고 있었으나,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실재(實在)함을 주장하였다.
 
▲취리히의 옛시청. 취리히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빨간색과 초록색이다.     ©프리다

 
▲취리히호수와 강을 누비는 배는 중요한 대중교통의 하나이다.     ©프리다

▲파라데플라츠. 금융의 도시가 가장 잘 느껴지는곳. 여러 은행, 보험사,증권사들이 즐비하다.     ©프리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성찬식이 순전히 영적,상징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로써 루터와 츠빙글리는 입장을 달리하는 교파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1529년 가톨릭 동맹주들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륵가의 페르디난드 공작과 연맹을 맺자 츠빙글리는 카펠로 진군하여 가톨릭에 속한 주들은 페르디난드와 맺은 동맹을 취소할 것과 복음적 교회들의 존립을 허용할 것을 규정하는 제1차 카펠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동맹주들이 오스트리아와의 동맹관계를 취소하지 않자 츠빙글리는 경제 봉쇄령을 내렸다.

이에 반대하여 가톨릭 주들은 1531년 취리히 주의 카펠을 침입하였고 가톨릭측이 승리하여 2차 카펠 평화조약이 체결된다. 조약 내용은 프로테스탄트들은 더 이상 영토확장을 하지 않고, 신교 안에 있는 소수의 가톨릭파들에 대해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여야만 했다.
 

기사입력: 2007/07/15 [01:29]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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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 07/07/17 [21:04] 수정 삭제  
  취리히호수에 고니(=백조)가 노닐고 있군요.
아~~~ 가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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