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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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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가장 즐겨 부르는 '국민가요'
사랑·평화 노래 김민기 글·곡, 양희은 미성으로 전달 대중압도
 
유요비
▲ 양희은씨가 2005년 콘서트를 하며 동생 양희경씨와 함께 했다.     ©
 
한 가수가 자신의 대표곡을 평생 몇 번이나 부를까. 몇 백 번? 몇 천 번? 아마 많아야 몇 백번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가수는 자신의 노래를 대중들 앞에서 무려 1만 번 이상 불렀다고 한다. 바로 국민들이 가장 즐겨 부른다는 노래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다.

  아침이슬은 원래 김민기가 작사 작곡하고 부른 노래다. 그러나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대중적으로 사랑받게 한 인물은 바로 양희은이다. <아침이슬>뿐 아니라, <새벽길>, <작은 연못>, <상록수> 등 김민기와 김민기의 노래들을 더 많은 대중에게 전달한 사람이 바로 양희은이었다. 그렇다고 양희은이 단순한 전달자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김민기가 대중 앞에서 사색하는 듯이 읊조리는 철학자였다면, 양희은은 미성과 단호함을 넘나드는 음색과 절제된발군의 가창력으로 대중을 압도하는 투사였다.

  양희은은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간에 <서울로 가는 길>(1972년), <내 님의 사랑은>(1974년), <한사람>(1975년), <들길 따라서>(1976년),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1978년) 등의 앨범들을 통하여 독재에 저항했고, 유신 말기의 암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로써 달래주었다.
 
  1978년 이후 잠시음악을 떠나 방황하기도 하고 또 1980년대 초에는 암과의 투병으로 생사의 기로를 헤메기도 하였으나,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와 <하얀 목련>(1983년), <한계령(1985년)>, <숲, 이별이후>(1987년), <사랑 그 쓸슬함에 대하여>(1991년), <내 나이 마흔에는>(1995) 등으로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고, 2001년에는 데뷔 30주년을 기념하여 <양희은‘ 30-데뷔30주년 기년 음반>>(2001)을 내고 포크의 여왕으로서 대중들게 화답하고 있다.

  1970년 서울 YMCA의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던 재수생 양희은은 이듬해 서강대 사학과에 입학한 후, 당시 포크음악인들의 아지트였던 ‘OB's 캐빈'이란 생맥주집에서 송창식, 김민기 등을 만나며 가수의 자질을 키웠다. 그 해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세노야> 등이 수록된 첫 앨범을 냄과 동시에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로 대변되는 1970년대 청년문화 탄생에 불을 지피며, 여성으로서 대표적 노래꾼으로 서게 된다.

  그러나 1973년 박정희 정권이 스스로 건전가요로 선정하였던 <아침이슬>을 금지곡 목록에 올리면서 양희은의 음악적 시련은 시작된다. 1974년 1집과 2집 앨범에 실렸던 <그날>, <엄마! 엄마!>, <서울로 가는 길>, <작은연못>, <백구>등도 갑자기 방송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방송사 콘서트에서 무대에 출연한 양희은씨.

 
  1975년 긴급조치 9호가 내려지면서 박정희 정권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은 절정에 이르렀고, 대중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공부는 “공연물 및 가요정화 대책‘을 발표하고 223곡의 대중가요를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 이 금지곡 중 국내가요가 1987년 6월민주항쟁 이후 1차로 해금되었고, 1994년 2차로 외국노래와 월북음악인들의 노래가 해금되었다. 양희은의 노래도 200여곡 중 30여 곡이나 금지곡이었다. 당시 금지곡의 기준은 ’패배, 자학, 퇴폐, 국가안보와 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주는 노래‘였다.

   양희은의 노래 중 <아침이슬>은 가사 중의 “붉은 태양”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암시한다는 억지 해석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은 노래 제목이 부정적이라고,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꼬투리였고, <작은 연못>은 가사가 당시 권력의 2인자 자리를 놓고암투를 벌이던 김종필과 이후락의 행태를 꼬집었다는 이유로 금지판정을 받았다.

  <늙은 군인의 노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노래는 군 복무 중이던 김민기가 한 퇴역상사의 30년 군인인생을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작곡하여 병영에서 병영으로 구전되어왔다. 그러나 이 노래가 <양희은-서라벌,SLK1041,78년>에 수록되어 발표되자 “병영에서 괴상한 노래가 돌고 있다”며 국방부 장관이 ‘군기해의’, ‘사기저하’를 이유로 전군에 노래 금지령을 내렸다. 이 노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가사 중 ‘군인’이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워지면서 대표적인 운동가요로 자리잡게되었다.

  독재정권이 통제를 가하면 가할수록 금지곡들은 더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마련이다. <아침이슬>을 포함한 양희은의 노래들은 독재정권에 의해 오랜 기간 대중매체에서 사라졌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종 시위와 집회에서 불리워지며 더욱더 질기고 강한 생명력으로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마음속에서 불려졌던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아침이슬>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로 선정되었고, <상록수>는 1998년 정부 수립50주년기년념 공익광고(그 유명한 박세리의 벙커 샷 장면이 나오는)에 삽입되었고,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축가로 불려졌다.

  <아침이슬>. 긴 밤 지새우고로 시작하는 노래. 국민들이 가장 즐겨 부른다는 노래. 거기에는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유요비(문화평론가, 시인)

기사입력: 2007/06/04 [10:40]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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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불우선생 07/06/13 [19:11]
민중가요-노래를 찾는 사람들_ 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만, 양희은의 「아침이슬」 보다는 안치환의 「타는 목마름으로」「함께가자 우리 이길」, 그리고 「노래」등이 더 좋더군요 수정 삭제
독립군 09/07/26 [01:08]
뚱땡이는 어두운 시절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수다.단지 세월이 좋아지니 나와서 운동권 노래를 부른 덕에 마치 민주투사였던 것 처럼 둔갑한 더러운 년이요.솔직하게 먹고살기 힘들어,정보기관이 무서워 또는 더잘보이려 영혼을 팔았으니 미안 하다하고 해야지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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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달 기자님 연락처 좀 알수 있을까
무생이사위 마악전과가 있는데, 집유로
아무리 생각혀도 준표가 방빼야겠다,
씨발럼이라고 썼다가 고소당함 주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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