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 안에 생긴 캄보디아인, 특히 남성에 대한 불편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책 한권에 중심을 잃었다. 그들을 향한 화가 어느새 내 안에 자리 잡아 그들의 모든 행동이 뒤틀리게 보일 정도다.
모두가 관련된 것도 아닐 진 데, 뚝뚝이나 오토바이 기사의 친절이나 미소까지도 음흉하게 느껴지고, 경찰들이 탐욕스럽게 보인다. 어느새 내 걸음이 빨라지고, 얼굴이 굳어졌다. 8개월이 넘는 시간을 통해 간신히 느림과 여유의 미학이 내 안에 들어왔는데, 순식간에 예전의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다.
그동안 읽었던 이성적인 보고서와 통계자료의 무미건조함이 그녀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느껴지다 보니, 감성이 자극된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에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렇게까지 흔들릴 정도인 것을 보니, 아직 내 깜냥이 이를 감당해 낼 만큼은 아닌가 보다. 헐~ 캄보디아 남성에 대한 불편함에 진저리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캄보디아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한 보고서(Understanding Trauma in Cambodia, 2007, Matthias Witzel, http://mcnnews.wordpress.com/2007/12/18/understanding-trauma-in-cambodia)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프랑스 식민지배, 베트남과의 전쟁, 특히 크메르 루즈 시절을 겪은 많은 캄보디아인이 현재까지도 좌절감, 불안감, 우울증, 조울증, 감정통제 상실, 반사회성, 낮은 자존감, 생명 및 인간존엄성에 대한 경시 등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해외로 이주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캄보디아인들도 62%가 이런 트라우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캄보디아의 아동성매매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왜 사회적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낮은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여성이나 약한 자에 대한 폭력이 만연해 졌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아마도 6.25전쟁 이후 우리 역시 같은 감정적 상태에 있었을 게다.) 아직도 이들의 트라우마는 진행형인 것 같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거권운동본부’(HRTF=Housing Right Task Force, 캄보디아 주민활동 단체)의 활동가 피름(Phearum)에 따르면, 프놈펜(Phnom Penh)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벙끅(Boeung Kok) 호수 주변뿐만 아니라 도시 전반에 걸쳐 폭력적인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아동성매매 근저에 쌓인 트라우마 문제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자기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지 충분한 설명을 정부로부터 듣지 못한 채, 형편없는 보상비(한 가구 당 U$250~U$700)를 받고, 물도, 전기도, 학교도, 병원도, 교통편도 없는 재정착촌(프놈펜에서 보통15km~35km 떨어진 외곽에 위치)으로 이주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의 한 달 생활비가 4인 가족 기준으로 최소 약 300달러가 필요하다 하니, 기껏해야 2달치 생활비를 받고, 일자리도 잃은 채 떠나야 하는 것이다. 반항의 대가는 정부의 엄청난 폭력과 심지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힘 있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정부관리가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난 화요일, 주거권운동본부(HRTF)가 지원하고 있는 마을의 한 주민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월요일에 정부의 강제철거로 남편이 많이 다쳤는데, 병원에 입원해 경황이 없는 틈을 타, 정부 관리들이 700달러의 보상비에 합의한다는 남편의 지(指)장을 받아갔단다. 재정착촌을 배정받은 것도 아니고, 당장 거처할 곳도 없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체 사무실로 찾아온 그녀를 보니, 황망한 모습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을 보고, 꼬옥 껴안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터트린다. 보상 거의 없는 강제이주에 속수무책 혼자서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낮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생전 처음 듣는 얘기들, 어려운 얘기들을 들으며, 아마도 많이 힘에 부쳤으리라. 오죽했으면, 딸 벌 되는 외국인을 부둥켜안고 울었을까. 그렇게 15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피름과 벙끅(Boeung Kok) 호수 인근의 빈민촌을 찾았는데, 그곳의 주민 왈, 우리는 여전히 폴 폿(Pol Pot, 크메르루즈의 리더)시대에 있다고. 정부의 폭력도, 가난도 모두 달라진 것이 없다며, 건조한 목소리로 읇조리 듯 말하는 그들을 보니, 그들에게 아픔의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오랜 시간동안 뼈 속 깊이 박힌 좌절감과 두려움이 어떻게 짧은 시간 내에 극복될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 간신히 세상으로 얼굴을 내밀 자신감을 얻었는데, 일이 잘 안되어 이들이 다시 좌절하고 더 깊은 자기들만의 방으로 후퇴하게 될까봐 우려된다. 발등에 떨어진 문제에 맞서기에 앞서, 자신들의 감정과 싸워야 하는 이들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겨내 크메르인들의 피플 파워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국인 부둥켜안고 10여분이나 '울먹'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와 이웃에 있는 시민단체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모두들 영어실력이 상당하다. 캄보디아에서는 시민단체 월급이 회사보다, 심지어 외국계 회사보다 나아서 많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선호한다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현재 활동 중인 캄보디아 시민단체만 약 2~3,000개 정도 된다고) 주로 고학력의 20~30대 층이 많은 편인데,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 많은 정보를 접하고 외국인들과 일을 해서 그런지(캄보디아의 대부분의 단체는 국제NGO와 함께 일함),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상당히 자신감에 차 있다. 크메르루즈 시대를 겪었던 세대와 세대차이가 날 듯도 하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와 빈곤의 양 극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누구는 온갖 정보를 향유하지만, 누구는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있다. 누구는 높은 도덕성을 이야기하지만, 누구는 거리낌 없이 아이를 팔고 있다. 누구는 자신감에 넘쳐 눈이 반짝이지만, 누구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인간 사회 어느 곳이나 양극이 존재할진데, 유난히도 캄보디아는 나에게 앙코르왓과 소말리 맘의 이야기가 주었던 그 극단의 이미지처럼 그것들이 너무 강렬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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