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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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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의 닷새, 가슴 아려온다”
[동남아일기29-미얀마] 회색빛 양곤 거쳐 만달레이 둘러보고...
 
윤경효
▲양곤시티센터 야시장 거리찻집에서 사람들이 차와 담소를 즐기는 모습.     © 윤경효
△2009년 12월 21일(월요일)=
아침 8시 30분. 미얀마(버마)가 태국보다 30분 느리니까, 미얀마(버마)는 8시겠다. 양곤국제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깨끗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예약한 호텔에서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다. 흰 와이셔츠에 체크무늬 사롱(버마 전통의상)을 두른 호텔직원을 뒤따라가니, 낡고 오래된 봉고차가 한 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낡은 차. 한 20년은 되었을라나.
 
호텔까지 30~40분 동안 가는 길 내내 보이는 양곤은 낡은 회색빛이다. 거리는 버마의 전통의상인 긴 사롱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언뜻, 도로 한쪽 구석에서 장총을 든 군인이 서있는 게 보인다.
 
물건을 운반하는 트럭이 이곳에서는 버스로도 이용되는 것 같다. 짐칸을 개조한 트럭이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빵빵대며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하도 빵빵거리는 통에 도대체 어느 차가 소리를 내는지 나는 종잡을 수가 없는데, 운전사는 너무나 익숙하게 맞대응까지 한다. 헐~
 
도로 한쪽엔 장총 맨 군인이...
 
공항에서 양곤 시내중심지까지 가는 길에 한국식당 간판을 4개나 봤다. 지난 번 한국 유학생이 교민들이 꽤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푼 뒤, 2달 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온 몸이 노곤하다. 하루 종일 호텔에서 빌린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세계적으로 유명한 배낭여행 안내책)을 뒤적거린 후 저녁나절 식사 겸 호텔 인근의 야시장을 둘러보려 나왔는데, 거리가 어둡다.
 
오늘 호텔에서만 벌써 4번의 정전을 겪었으니, 거리가 어두울 법도 하다. 거리 상점 여기 저기 LED조명을 이용해 불을 밝혔지만, 자동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밝지는 않다.
 
▲도심 인도를 장악한 거리 상점들(사진 위 왼쪽). 손님을 기다리는 트라이쇼(Trishaw) 기사(사진 위 오른쪽).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사진 아래 왼쪽)과 트럭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사진 아래 오른쪽).     © 윤경효

 
그래도, 거리 곳곳에 키 낮은 탁자와 의자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버마식 차를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을 마친 후 술 보다 차를 마주하고 담소를 즐기는 것이 일상인 듯하다.
 
두런, 두런, 하하, 허허, 깔깔... 무슨 얘기들이 그리 재밌는지... 친구라면, 한편에 끼어들어 앉아 함께 수다삼매경에 빠져보고 싶다.
 
△12월 22일(화요일)=인구 약 5천만명의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미얀마(버마)(공식명칭: Union of Myanmar). 1962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47년간의 군부독재와 이에 맞서 싸우고 있는 민주세력의 수장인 아웅산 수치(Aung San Sukyi-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여사로 유명한 나라.
 
“두런 두런, 뭐 그리 재밌는지”
 
나라를 부르는 명칭에서부터 미얀마로 불러야 하는지, 버마로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미얀마나 버마나 이네들 말로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다수민족인 버마족(현재 전체 인구의 약 68% 차지)을 지칭하는 의미라는데, 영국 식민지배 당시, 영어표기로 ‘버마(Burma)’를 사용했고, 1989년 미얀마 군부는 식민지 잔재 용어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국가 이름부터 ‘미얀마’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한다.
 
민주세력은 군부가 국명을 바꿀 정치적 권한도 없고, 국민의 동의를 얻지도 않았기 때문에 ‘미얀마’라 칭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는 일부 국가(미국, 영국, 호주 등)는 이들을 ‘버마’라 부르고, 다른 일부(독일, 일본, 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이들을 ‘미얀마’라 부르고 있다.
 
내 관점에서는 민주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군부의 국명 개칭도, 그렇다고, 영국이 식민지배 시절 자기 식대로 부른 ‘버마’라는 이름도, 둘 다 그다지 상큼해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둘 모두 이 나라에 오랫동안 더불어 살아왔던 다른 소수민족들을 배제한 이름이니. 그저 어서 빨리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그들 모두가 동의하는 나라 이름을 되찾길 바랄 뿐.
 
▲거리 간이식당에서 먹거리를 사는 여인(왼쪽). 거리 찻집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가운데). 중앙시장 내 과일노점들(오른쪽).     © 윤경효
▲저울추를 이용해 귤의 무게를 다는 가게 주인(왼쪽). 거리의 노점상(가운데). 교복을 입은 여대생들(오른쪽).     © 윤경효

 
오후 내내 온 도심을 걸어 다녔더니, 종아리가 욱신거린다. 얼마나 걸은 것인지. 종종 여행자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뒤를 쫓는 경우가 있다는데, 만약 나를 쫒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도 다리 꽤나 아플 것 같다. 헐~
 
미얀마에 들어가면 어떤 사람에게도 정부나 정치에 대한 것은 묻지 말라던 경고가 나를 자꾸 움츠러들게 한다.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환영에도 조심스러운 맘 때문에 선뜻 대화에 나서지 못하겠다. 아직도 사람들과의 소통에 소극적인 나를 책망할 뿐. 이럴 땐 좀 가벼워야 하는데. 쓰압…-,.-;;]
 
버마와 미얀마, 뭐라 부를까?
 
△12월 23일(수요일)=저녁 5시, 만달레이(Mandalay)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오늘 저녁 6시에 출발해 장장 12시간을 달려, 내일 아침 6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도심부 도로는 잘 닦여있더니, 터미널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비포장도로다. 울퉁불퉁한 길 위에 대형버스와, 미니택시와, 물건을 잔뜩 실은 트럭, 트라이쇼, 그리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까지 어지럽게 뒤엉켰다. 타고 갈 고속버스회사의 승객대기실에 앉아 있노라니, 복권부터 먹을거리까지 잡상인이 오나가며 물건을 판다.
 
이곳에서는 최고급 버스라지만, 우리나라 일반 고속버스보다 못하다. 보니, 중고버스를 수입한 듯. 사람들이 두꺼운 재킷에 더해 담요까지 준비하는 걸 보며, 의아해 했는데, 타고 가다보니, 알 것 같다. 대부분 버스의 에어컨 조절 장치가 망가져서 일정시간이 지나면, 너무 추워 견디기 힘들다. 긴소매에 재킷을 입고 목도리까지 둘렀건만, 배에서 느껴지는 한기로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만달레이까지 가는 도중 밤 10시경과 새벽 3시경, 두 차례 차에서 내려 신분증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길을 통과하는 모든 차량, 사람은 검문대상이 되는 것 같다. 무장군인이 있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으로 위압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노숙자 가족(왼쪽). 가까이서 찍기 어려워 도로를 사이에 두고 클로즈업을 해봤지만,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양곤 시내 곳곳에 버려진 옛 건물들이 많은데, 그곳이 집 없는 사람들의 임시 거처로 이용되고 있는 듯. 식민지양식의 복합주택단지(가운데). 술파야(SULE PAYA-버마식 불탑양식).(오른쪽)     © 윤경효


버스여행 중 두 번이나 검문
 
△12월 24일(목요일)=밤새 에어컨의 찬바람에 시달렸더니, 체온이 내려가 머리까지 띵하다. 아침 7시 호텔에 도착하니, 피곤에 지친 얼굴이 안되어 보였는지, 잠시 몸이라도 뉘이라고 작은 골방을 내어준다. 그곳에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뻗어 12시까지 잤다.
 
방을 옮긴 후 행여나 하는 맘에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하려는데, 갑자기 스크린이 먹통이 되었다. 정전이다.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정전이 수시로 되는구만. 쯥…-,.-;;
 
오후 나절 만달레이 도심거리를 걸어 다니다, 론리플래닛에서 추천한 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배낭여행자들로 가득하다. 론리플래닛이란. 훗... 자리 잡고 앉으려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함께 하지 않겠냐고 해 그쪽으로 합류했다.

독일에서 온 남자 2명, 프랑스에서 온 커플,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독일여자 1명, 이렇게 6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여행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벌써 미얀마(버마)만 4번째라는 독일여행자 마크(Marc)의 유머와 이야기보따리에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식당에 있는 동안 내내 내 귓가에 ‘코리안, 코리안’이라는 속삭거림이 그칠 줄 모른다. 미얀마(버마)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하는 소리다. 이곳에는 한국의 드라마가 히트를 넘어 안방극장을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니, 나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종종, 그 관심이 너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 안 사실인데, 왜 이 곳 사람들이 그렇게 한국의 연예인에 열광하는 지 물었더니, 우선 잘생기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건 주로 중국과 한국드라마라고. 그러니까, 그들에겐 별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헐~ 미얀마(버마) 정부가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메리 크리스마스.
 

▲만달레이는 미얀마(버마) 스님들의 고향과 같은 곳으로 수많은 파야(Paya)와 사찰들로 유명하다. 오전 10시 30분 스님들이 모여 공양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양을 위해 줄을 서서 가고 있는 스님들(왼쪽). 사가잉의 파야들(가운데). 이런 파야들이 온 언덕을 뒤덮었다. 타웅타만(Taungthaman) 호수를 가로지르는 약 1.2km 길이의 200년이 넘은 나무로 만든 다리 우베인(U-bein).(오른쪽) 아직까지도 건재한 이 다리를 매일 지역주민과 공양을 다니는 스님들이 애용한다.     © 윤경효


 
유럽여행자들과 합석 유쾌한 시간
 
△12월 25일(금요일)=마크 여행사(독일인 마크가 급조직한 여행프로그램을 두고 우리들은 농담 삼아 이렇게 불렀다)의 활약으로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만달레이시 주변에 있는 사가잉(Sagaing), 아마라푸라(Amarapura), 우베인(U-bein) 등 중소규모의 도시와 마을 투어가 1인 당 5000쩻(약 5000원)의 가격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인 3명과 나, 이렇게 4명이 함께 움직였는데, 다행히도 여행을 느긋이 하는 성향이 맞아떨어져 모두들 시간을 즐기며 둘러보았다.
 
태국에서는 스님과 눈을 마주쳐서도, 웃음을 보여서도 안 되는데, 이곳에서는 스님이 먼저 스스럼없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미얀마(버마)에서도 남자들이 일생에 최소 1~2회 스님이 되는 경험을 해야 하고, 이 경험을 한사람만이 결혼을 할 수 있다고.

미얀마(버마)의 주요 특산물이자 수출품이라는 실크 수공예와 대리석 공예시장을 둘러보는데, 어려보이는 여인들이 눈이 띈다. 한국 스타의 사진을 작업장에 붙여뒀기에 나이를 물었더니, 18, 19살이란다. 2~3년 전부터 일하기 시작했으니, 미성년 노동이다.
 
미얀마(버마)에서 평균 최소생활비가 4인 가족 기준 4~5,000쩻이 필요하다는데, 보통 서민이하 사람들은 하루 내내 뼈 빠지게 일해 봐야 기껏1,000~1,500쩻 정도 번다고.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가 돈벌이를 해야 한단다.
 
여행객들이 주로 다니는 길목의 사람들은 그나마 낫지만 시골의 광산, 가스개발지역에 들어가면 10세 전후의 아동들에 대한 노동착취가 아주 심각할 정도라고. 군부정부의 통제로 어떠한 인권에 대한 정보도 구하기가 어려워, 국제시민단체들도 일부 사람들의 증언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고, 구조활동을 하려해도 쉽지 않다고 한다.
 
“태국과 달리 스님어 먼저 웃음”
 
예를 들어 지난 2008년 5월 태풍 나르시스의 강타로 약 1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국제사회에서 도움을 주려했으나, 미얀마(버마)정부가 거부했다.(UN 식량프로그램 등 일부 유엔지원은 수용함)
 
▲베틀로 실크자수를 놓고 있는 소녀들(왼쪽).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있는 농부(가운데). 시골마을의 아이들(오른쪽).     © 윤경효


미얀마(버마)는 동남아 최대 산유국이자 천연가스 보유국이다. 인권문제를 이유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국가는 경제제재 조치를 하고 있으나, 중국, 일본, 태국, 동남아 국가 등 아시아 국가들의 지속적인 자원개발 투자로 인해 미얀마(버마)의 군부정권은 더 혹독하게 유지되고 있다.

현재 미얀마(버마)는 천연가스와 석유개발사업으로 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거리로 내쫒고 있다. 풍부한 자연자원이 오히려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향해 한 푼이라도 벌려고 구걸하듯 물건을 파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난다.
 
△12월 28일 월요일=미얀마(버마) 10일 여행에 200불을 예산으로 잡은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과 착오 때문이다. 태국보다 물가가 쌀 거라 예상했는데, 숙박비는 거의 비슷하고, 주요 여행자 이동수단은 정부의 외국인 이중가격정책 때문에 지출비용이 차이가 없다.
 
여행자수표도,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없는(큰 호텔에서는 사용할 수도 있으나, 수수료가 10% 이상임) 이곳에서 단돈 200불은 좀 여유롭게 2곳, 아주 가난하게 3곳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예산이라, 나는 만달레이에서만 5일을 죽치고 앉아있다.
 
독재국가 빈곤국민, 눈물 난다
 
미얀마(버마) 친구가 있었다면, 아쉬웠을 시간이, 혼자 멍하니 바라만 보니, 지친다. 헐~ 남은 쩻을 다시 달러로 바꾸기도 쉽지 않으니, 트라이쇼 운전기사들의 돈벌이를 위해 어제 걸어 다녔던 길도 트라이쇼를 불러 타고 다녔다.
 
만달레이 힐(Hill)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위너(Winner)라는 영어별명을 갖고 있는 트라이쇼 기사를 만났는데, 중학교 중퇴라는데 영어가 유창하다. 1988년 자신이 중학생이었을 당시 미얀마(버마)에서 대규모가 민주화운동이 있었는데, 그때 참여했다가 강제퇴학 당하고 정부에 의해 더 이상 학교에 다니게 될 수 없었다고.
 
▲ 빨래터이자 공동 목욕터인 우물가. 도시 곳곳에 있는 서민의 공동 위생시설(왼쪽). 시멘트 바닥에 체스판을 그려놓고 병뚜껑을 이용해 체스를 두는 젊은이들(오른쪽).     © 윤경효

하지만, 스님의 도움으로 절에서 6개월 동안 공부를 더할 수 있었고, 그때 닦은 영어를 기초로 독학으로 공부했단다. 시위에 참여한 후 정부에서 정치활동 금지 서약을 하게 해서 지금 공식적으로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민주민족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정당)를 지지하고, 가끔 행사에도 참여한다고.
 
70대 중반의 고령의 부모와 3명의 동생들과 함께 사는 위너는 택시기사와 트라이쇼 기사 두 가지를 병행하는 투잡(Two Jobs)족이다. 돈을 벌어야 장가를 갈 수 있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씨익’ 웃는 그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얼마 전 첫째 여동생을 시집보냈다.

시장 한 귀퉁이에 이미 만들어 놓은 볶음국수 두 사발만을 두고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한 끼 분량의 국수를 샀는데, 가격이 300쩻(약 300원)이다. 맛있다고 먹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이후부터 화장실을 벗어날 수가 없다. 만들어 놓은 길거리 음식은 가능한 피하라고 했던 여행책자의 경고를 무시한 나의 책임이지. 쓰압…-,.-;;
 
트라이쇼 기사, 추치 여사 지지...
 
△12월 29일(화요일)=어제 먹은 음식 때문에 오늘도 내내 설사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미얀마(버마)에서의 마지막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몸이 아파서인가, 아니면, 마음이 아파서인가? 여행 5일째부터 내내 가슴 한구석을 답답하게 했던 것이 이제는 숨 쉬기 힘들만큼 가슴 전체를 짓누르고 있다. 미얀마(버마)의 이 모든 상황에 괜히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욕지거리를 ‘워워’하며 가라앉힌다. 내뱉은들 무엇하리. 마음만 더 허한 것을.

함께 했던 여행자들은 미얀마(버마)가 너무 좋았다는데, 내게는, 지금까지 갔던 어느 곳보다도 가슴 아픈 곳이다.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기사입력: 2010/03/21 [16:59]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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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몽골 대초원에서는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에서는 현지 시민사회 자원봉사활동 보고서를. 그리고 마침내 영국 쉐필드로 날아간 그가 이번엔 유학보고서를 독자들에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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