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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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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노숙, 집안에 누우니 천국”
[동남아여행23-태국] 방콕인근 철거민 재정착촌 노숙경험
 
윤경효
▲ 통기타 하나로 술자리의 여유와 멋이 느껴진다. 그렇게 마셔도 술에 취해 해롱대는 사람은 없다.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고, 즐기는 거니까. ‘편안하게(사바이), 즐겁게(사두억), 쉽게(사눅)’. 태국인들의 생활 모토처럼 이들의 빈민운동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서 항상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네 여유 없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선조들은 풍류와 여백(여유)의 미를 즐겼다는데, 역사책이 잘못된 건가? 우리가 너무 변한건가?     © 윤경효
"윤! 위스키? 비어?, 컴, 컴!"
"헉…오늘도…???? 이 알코홀릭들~!! 고만 좀 마셔라이~"

술 잘 안 마시는 것을 이제는 알만도 한데, 오늘도 어김없이 술을 권하는 누이와 덩. 오늘도 어김없이 일을 마치고 술상을 차린다. 싸구려 위스키, 소다수, 얼음, 약간의 안주거리, 그리고 통기타. 술친구들은 보통 누이, 덩, 그리고 대학 빈민촌연구동아리 동기 2명 등 4명인데, 술과 기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저녁나절을 보낸다.

오늘은 대학 동아리 후배 2명이 동참했다. 너덜너덜해진 기타 악보를 보니, 오늘 부르는 이 노래가 어제도, 그제도 불렀던 노래인 듯싶다. 매일 저녁 얼굴 보는 친구들인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겠는가. 저녁 내내 기타와 노래 소리로 사무실 곳곳이 채워진다.

‘매일 똑같은 사람, 똑같은 노래, 똑같은 술, 니들은 지겹지도 않냐? 나가서 연애 좀 혀~~!!’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하니, 그냥 ‘헐~’하고 웃고 만다. 헐~ 왜 모르겠는가. 누군들 연애를 안 하고 싶을까. 박봉의 활동비에 집도 없이 사무실을 집 삼아 사는데. 요즘 세상에 이런 조건의 사람과 연애할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지...
 
‘누이·덩, 맨날 술이야~♫~’
 
시민단체에는 유독 노총각, 노처녀들이 많은데, 남자들은 돈이 없어서, 여자들은 사회의식이 강해서 연애든, 배우자든 부담스러운 조건이란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요즘 남녀가 선호하는 파트너감이 대략 짐작돼 좀 씁쓸하지만. 어쩌랴, 이게 현실인 것을... 사실, 남 얘기도 아니고. 헐~ ^.^;;

11월 1일 일요일 오전. COPA(시민행동: Community Organization for People’s Action) 활동가들과 함께 방콕 변두리에 있는 온눗 14구역의 철거민 재정착촌을 방문했다. 1995년에 마을부지가 마련되고, 철거민들은 각자의 재정형편에 따라 집을 짓고 정착했다.

▲ 기타연주에, 회화에, 재주가 많은 덩은 시간 날 때 마다 흰 면티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 나도 맘에 들어 한 벌 구입했다. 면티 위에 물감을 입히고 있는 덩(왼쪽)과 색칠하는데 참여한 나(오른쪽).     © 윤경효

 
당시 전국빈민조직연대(FRSN)와 함께 주민들이 힘을 합쳐 정부에 철거민 재정착촌 정책 수립을 이끌어 낸 후 최초로 건설된 마을인데, 이후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유야무야되면서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마을부지는 마을주민들이 정부로부터 토지를 임대하는 형식이다. 총 140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현재 이 토지임대료 때문에 골치를 썩는 중이란다. 마을건설 당시 정부와 협상할 때 토지임대료 납부를 개개인별로 정부에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료를 모은 뒤 마을 이름으로 납부하기로 했었는데, 일부 가구가 납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사실, 1995년 철거민들이 재정착촌에 들어온 뒤 조직적인 활동이 많이 느슨해졌다가 2004년 마을 삶의 질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한 주민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다시 조직하기 시작해 마을센터를 만들었고, 현재 마을의 절반인 70가구가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다.
 
▲ 온눗 14구역 마을센터 전경(사진 위 왼쪽). 센터가 운영하는 유기농 텃밭(사진 위 오른쪽). 생협 가게(사진 아래 왼쪽). 버려진 틴(Tin) 소재 기름통·과자통 등을 모아 집 외벽과 담벼락을 만든 ‘재활용 하우스’(사진 아래 오른쪽). 얼마나 오랜 시간 깡통을 펴고 오리고 붙이고를 했을 것인가? 내 눈에는 작품으로만 보이는 이 집의 2층 방 창가에 빨래들이 널려 있다. 헐~     © 윤경효

 
“처녀총각, 연애나 좀 하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가구들은 아직 마을센터에 참여하지 않는 가구들이라 한다. 토지 임대료는 내야 하는데, 이 문제로 자칫 마을 내 공동체분위기를 해칠까봐 우려하는 눈치다.
 
COPA 활동가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보지만, 결국 ‘배제’의 칼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다들 안타까운 표정이다. 이게 현실인 게지. 그저, 그것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을센터는 회원들의 사랑방이자 품앗이 공부방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생협의 수익금 일부는 아이들의 교육지원금으로 쓰인다. 생협 가게 옆으로 재활용쓰레기 수거장이 있는데, 아이들이 재활용쓰레기를 모아오면 그 양만큼 돈으로 적립해 주고, 나중에 학용품 구매 시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재활용은행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 방콕 통근열차 내부. 지금은 없어진 우리나라 통일호 열차와 비슷한 듯.     ©윤경효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이 돈 적립, 인출 등 전 과정을 직접 운영한다는 것. 아이들의 경제교육뿐만 아니라, 인성, 환경교육까지 포괄하고 있다. 또한, 센터 내 마당에서는 식용개구리와 금붕어 등을 키워 아이들의 교육기금에 보태고 있으며, 센터 맞은편 텃밭에서는 유기농 채소와 약재 식물들을 함께 재배하는데, 회원들은 언제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다. 회원 수에 비해 규모가 작기 때문에 모두가 즐길 만큼 넉넉하지 않지만, 먹거리 안전에 대한 교육과 친목 도모 효과가 높다고 한다.

11월 2일 월요일. 오늘은 태국의 2대 명절 중 하나인 ‘러이 끄라통’ 축제일이다. 매년 태국력 12월 보름에 열리는데, 연꽃모양의 바나나 잎 배(끄라통)에 초, 향, 꽃, 동전 등을 담아 강이나 호수 등에 띄우며 물의 신에게 지난 한 해동안의 잘못을 속죄하고 소원을 빔과 동시에 액운을 띄워 보낸다는 의미를 갖는단다.
 
‘러이 끄라통’, 소원을 빌며
 
명절을 즐길 겸, 노숙자들도 찾으러 다닐 겸해서 덩, 누이, 그리고 방콕노이 노숙자센터 사람들과 함께 방콕 인근에 있는 나콘빠똠(Nakon Pathom)시에 갔다. 방콕노이 간이역(방콕 서쪽)에서 오후 5시부터 기차를 기다리기를 2시간여. 공짜 통근열차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 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불평 한마디 없다.

하루 4번 운행되는 방콕과 인근 외곽 도시 간 통근열차는 모두 공짜인데, 도심에 살기 어려운 저소득 도시근로자에게는 아주 유용할 듯싶다. 자연히 도심 내 인구집중도 줄일 수 있을 터.

▲ 내가 노숙한 영화상영 광장. 덩이 절에서 잔다고 했을 때 조금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아마도 큰 회의실 같은 곳에서 자나보다 했지, 길바닥일 줄     ©윤경효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나콘빠똠은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벌써 북새통이다. 사찰 주변으로 먹거리 장터, 쇼핑몰들이 즐비하고 전통연극, 영화상영 등 다양한 야외공연이 곳곳에서 무료로 벌어지고 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뚫고 도착한 곳은 영화상영 광장. 스크린 바로 앞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새벽 1시까지 2~3차례 주변을 돌아다니며 노숙자를 찾으려 다녔지만, 누가 노숙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새벽녘에는 이미 잠든 사람들이 많아 결국 큰 성과 없이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나저나 오늘 밤 잠자리는 길바닥인데, 하필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가 쌀쌀하다. 배낭을 베게 삼아 몸을 웅크리고 옆으로 누었는데, 스물 스물 몸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에 뼈가 오그라드는 것 같다. 몸을 펴고 싶어도 사람들 오가는 길바닥인지라 대자로 누울 수도 없고...
 
길바닥 누우니 한기에 뼈가...
 
그런데도 졸리니 그렇게 춥고 불편해도 계속 누워있게 되고, 이래서 노숙자들이 많이들 동사(凍死)하는구나 싶다. 생애 처음 경험한 노숙. 지붕과 벽이 있는 ‘집’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 나콘빠똠에 있는 왓 프라톰 파고다(Wat Phrathom Jaedee). 축제를 맞아 전등 옷을 입고 환하게 빛을 발하는 모습이 화려하다(사진 왼쪽). 소원을 담아 하늘로 띄우는 연등(사진 가운데). 강에 띄우는 끄라통(사진 오른쪽).     © 윤경효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돌아와 사무실에 도착하니, 오전 9시다. 어제 씻지도 못했는데, 그 상태 그대로 방에 들어와 이불 깔고 누웠다. 아~~~ 천국이다. 이 얇은 요가 이렇게 푹신하게 느껴질 줄이야... 남들 눈 신경 안 쓰고 대자로 뻗고 잘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하하, 하~~아암, 음냐~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기사입력: 2010/01/14 [00:50]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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