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 빵 가치있는 일, 난 찾았나?"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⑩] 마지막 글 “삼빠이 끄뜨무 라기”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8/01 [00:11]

"눈물젖은 빵 가치있는 일, 난 찾았나?"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⑩] 마지막 글 “삼빠이 끄뜨무 라기”

윤경효 | 입력 : 2009/08/01 [00:11]
2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제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것 같은 착각… 이런 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2달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은 채, 지난 7월 3일 금요일, 마지막 주간회의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UPC친구들이 울 것 같으냐고 묻는데, 그저 멍할 뿐이다. 내가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표현하기 위해 부랴부랴 마지막 인사를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인도네시아어로 준비했는데, 친구들이 감동한 눈치다. 비록 문법은 엉망이었지만, 노력이 가상했던 게지... 하하하. Trimah Kasi(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을 하는데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갑자기 지난 2개월 동안 만났던 인도네시아 친구들의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에 행복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가슴 한가운데로 뻥 뚫고 지나갔다. 삶이 고단할 터인데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은 그들을 보면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7월 3일(금) 주간회의를 마치고 ‘와룽 콤비(Warung Komby)’에서 송별파티를 했다. 식당에서 회식을 잘 안 하는 UPC인데, 내 송별회를 위해 처음으로 좀 비싼 식당을 예약했단다. 주문한 인도네시아 음식, 밥과 닭튀김.     © 윤경효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더니, 그 말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삶에서 진정한 유머가 나올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힘든 일을 겪어 본 사람들의 생활개그가 깊은 공명을 주듯. 그 공명에 어떻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2개월 행복, 가슴 뻥 뚫고...
 
여행 중에는 그저 보고 배우는 것으로 족해야 하는데, 결국 일을 만들고 말았다. 내가 떠난 후에도 한국에서 1명의 자원봉사자가 올 예정인데, 광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작년부터 인턴십 프로그램 일환으로 UPC에 현장교육을 요청했단다.

나를 비롯해 한국은 UPC에서 배워가는 것이 많은 반면, UPC 활동가들은 그런 기회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와르다씨에게 한국의 시민단체와 활동가 교류프로그램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자란 배경은 못 속인다더니, 7년간 시민사회 코디네이터로 일했다고, 그 순간 든 생각이 한국에서도 지역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국제교육기회가 많지 않은데,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불쑥 뱉어버렸다. 아~ 난 아직도 앞뒤 생각 없이 일 저지르는 버릇이 없어지지 않았구나. 헐~ 기왕 저지른 일, 활동가 교류프로그램이 잘 추진되었으면 좋겠다.

▲ 어째 나보다 활동가들이 더 흥분한 것 같다. 음식을 기다리며 춤추는 UPC활동가 마뜨리(Matri, 오른쪽 세 번째).     © 윤경효


어제 오전 6시부터 오늘 새벽 1시까지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 투표가 진행되었다. UPC와 UPLink에서는 두 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여 2라운드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라 예상하고, 그때 1백만 표를 갖고 후보들과 정치협약 협상을 하려 했는데, 오늘 개표진행 결과를 보니, 유도유노 현 대통령이 60% 이상 득표하는 것으로 나타나 1라운드에서 종결 될 것 같다.

올해 UPLink 활동 중간점검 및 대선 이후 대책회의를 위해 오늘 아침 일찍 UPC와 전국의 UPLink 활동가들이 수라바야(Surabaya)로 떠났다.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릴레이 회의가 이어질 것이란다. 힘들게 모은 1백만 표가 정치협약에 활용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본 목적은 대선을 계기로 빈민들을 조직하려 했던 것이었으니, 이미 큰 성과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1백만의 빈민들이 이후에도 계속 네트워크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활동가들이 고민 중인데, 지혜를 모아 잘 풀어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생각 없이 일 저지르는 버릇”
 
지난 2개월 동안 내가 무엇을 얼마나 영향 받았는지 지금은 정리가 안 된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몸으로 체득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 듯, 내가 느낀 것을 머리로 깨닫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다만, 어느 곳이든 일이나 일상생활의 지루함이나 문제점은 비슷한 것 같다. 비슷하겠지. 머리로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역시나이다.

▲ 송별파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는 UPC활동가들.     © 윤경효



UPC도 활동가들이 운동에 조금씩 지쳐가는 것을 비롯해서 조직운영방법에 대한 것이나 활동가들 사이에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속상해하고 좌절하는 등의 모습이 한국이나 이곳이나 어쩜 그렇게 비슷한 지. 비슷한 스타일의 한국과 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이 겹쳐지기도 한다. 다른 사회, 다른 문화, 다른 역사를 갖고 있는데도 살면서 우리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똑같구나...

‘벤자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라는 영화에서 벤자민이 오랜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제 살면서 반복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을 찾았니?’라고 묻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말이 내 마음에 깊이 남았었다. ‘반복할 만한 가치 있는 일’.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짝짝(Cakcak)과 해리(Heri)가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버스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면 2시간이나 걸리는데도, 기꺼이 나와 마지막 가는 길까지 보살펴 주는데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다.
 
“왔어, 알아서 갈 수 있지?”
 
인도네시아의 문화가 원래 손님에게 이렇게 극진히 대접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다음에 올 때는 이런 극진한 대접은 바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UPC 회원이 되었으니까. 그때는 ‘어, 왔냐?’, ‘알아서 갈 수 있지?’라고 할지도... 헐~

삼빠이 끄뜨무 라기(다음에 또 봐요).


 


 

[UPC/UPLink 활동가들]

◇크리스틴(Christin)

▲Christin

UPLink-National팀에서 데이터정리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술라웨시(Sulawesi)섬의 끈다리(Kendari)시 UPLink에서 활동하다가 올해 초에 National팀으로 옮겨왔다. UPC사무실에서 살고 있는데, 나한테 자기 방을 내주고 2개월 동안 회의실에서 생활한 고마운 친구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항상 엄마처럼 나를 챙겨준 인정 많은 그녀는 ‘모두’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

◇드위(Dewi)

▲ Dewi

UPC 행정담당인 그녀는 UPC 및 UPLink의 모든 활동과 활동가들의 모든 동선을 꿰고 앉아 소통시켜주는 조정자 역할도 하고 있다. 족자카르타 출신으로 자카르타로 옮겨온 지 이제 1년 반 정도 되었다. 올해 서른 살인 수줍음이 많은 그녀에게는 사귄 지 1년 정도 된 족자카르타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조만간 결혼할 계획이라고.

◇내니(Neny)와 마야(Maya)

▲Neny와 Maya

UPC의 회계담당자들. 내니(왼쪽)는 UPC 설립 당시부터 일했고, 마야(오른쪽)는 작년에 들어왔다. UPC 및 UPLink의 모든 돈거래는 그녀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지라 우리는 그녀들을 ‘UPC은행’이라고 부른다. 하하하. 
 


◇율리(Juli)

▲ Juli  

도시계획설계담당자로 2002년 UPLink 자원봉사자로 시작하여 2007년에 UPC의 정식 활동가가 되었다는 그는 내성적 성격의 부끄럼 많은 가장. 독일유학 준비를 위해 토플학원을 3개월 동안 다니고 있는데, 와르다씨가 영어실력 늘라고 영어대화를 독려하는데도, 잘 못한다고 자꾸 발뺌이다. 하하. 장학금 받아 꼭 유학갈 수 있기를...
 

◇짝짝(Cakcak)

▲ Cakcak 

율리와 함께 도시계획설계담당자인 짝짝은 나와 동갑내기 친구. 중산층의 회사원이었던 그는 쓰나미 복구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이후에 시민운동에 뜻을 두고 UPC활동가로 작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한지라 영어가 유창한데, 종종 통역을 부탁하면 반대의미로 장난을 쳐 전달하곤 해서 내가 뺀질이라고 불렀다. ㅎㅎ. 사진촬영과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로맨틱 소심남.ㅋ

◇안야(Anye)와 우쪽(Ucok)

▲Anye와 Ucok

UPC의 사내커플인 안야와 우쪽은 각각 유아교육센터와 미디어를 담당하는 활동가. UPC에서 가장 어린 안야는 사람들을 돕는 이 활동이 자기에게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당차고 열정적인 친구.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우쪽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한 자유주의자. 둘 다 최근 활동에 지쳐서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던 차에, 우연히 만난 태국의 라마승 초청으로 7월 한 달간 태국에서 템플스테이(Temple Stay)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지난 7월 4일에 태국으로 떠났다. 아직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이 귀여운 커플이 태국여행 후 다시 원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부처님께 절해야 하나?ㅎ...
 
◇해리(Heri)

▲ Heri 

반둥(Bandung)시에 근거를 둔 환경단체인 YBBB활동가인 그는 작년부터 UPC의 유기물쓰레기 재활용프로그램을 위해 UPC로 파견 나왔다. 올 3월에 결혼한 신혼인데 활동 때문에 주말부부가 되어버렸다. 주말에는 등산모임의 대학생들을 이끌고 등산을 다니곤 하는 그는 작은 밭을 일구는 농부이기도 하다. 
 

◇라흐만(Rachman)

▲Rachman

공장노동자 출신인 그는 부당해고 된 이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와르다를 만나 UPC의 설립 당시 원년멤버가 되었다. 노동단체에서 일하다가 단체가 문을 닫는 바람에 작년부터 Staff으로 UPC에 합류했다. 대안의료프로그램 담당자이자 Community Organizer.
 


◇에디(Edi)

▲ Edi   

UPC 설립 원년멤버인 에디는 Community Organizer. 무슬림 종교지도자가 되기 위해 종교학을 공부했던 그는 1990년대 초반 그가 살던 마을(Kampung)이 강제 철거되는 과정에서 종교지도자의 꿈을 버리고 UPC에 합류했다. 항상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은 신사인 그는 장차 와르다의 뒤를 이어 UPC의 책임자가 될 지도 모른다.
 

◇얀토(Yanto)

▲ Yanto 

대안의료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얀토는 자카르타공항 근처 빈민촌에 살고 있다. 외모와 달리 굉장히 부드러운 말투와 모션을 가진 그는 종종 사람들에게 게이로 의심받기도 한단다. 하하. 사람들에게 대안의료를 가르칠 때 그의 비장한 얼굴을 본다면, 달리 생각될 터인데... 헐~
 

◇와르티야(Wartiyah)

▲Wartiyah

구제(Saving Group) 프로그램 담당자인 그녀는 원래 철거민이었다가 UPC의 활동가로 합류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충격에 그녀의 딸은 한동안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단다. 여전히 그녀의 집은 불법주거지에 위치해 또 언제 철거민 신세가 될지 모르는 상황. 그녀에게 UPC의 활동은 곧 생존이다.
 

◇해릴(Cheril)

▲ Cheril 

술라웨시 마카사르(Makasar)시 UPLink에서 활동하다가 작년부터 UPLink-National팀으로 합류한 그는 데이터팀에서 일하다가 앞으로는 Community Organizer로 활동할 예정이다. 내가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25살 청년... 헐~
 


◇쩨뽓(Cepot)

▲ Cepot 
청소년 전통댄스클럽을 담당하는 그는 손재주가 참 많은 활동가다. 보기와 다르게 어찌나 꼼꼼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미는 지…헐~ 빈민촌 출신으로 UPC 사무실에서 기거하고 있다.
 


◇도도(Dodo)

▲ Dodo  
인도네시아에서 시민운동세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족자카르타 출신인 도도는 젊은 청년들을 조직하기 위해 족자에서 활동하다가 자카르타로 옮겨왔다. 거리 음악인이었던 그는 20대를 길에서 노숙하며 보냈다고. 독일 한 독지가의 지원으로 음반도 2집까지 냈다. 돈이 없어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타고난 감각과 재주는 여느 교육받은 활동가 못지않다. 항상 명랑하고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유쾌, 상쾌, 통쾌함은 그의 인생역정에서 비롯된 듯.
 
◇마뜨리(Matri)와 빠르미(Parmi)

▲ Matri와 Parmi    

UPC의 요리사이자 집 구석구석을 관리하는 엄마 같은 존재, 마뜨리(왼쪽)와 빠르미(오른쪽). 마뜨리의 자바음식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정말 다양한 인도네시아 서민음식은 다 맛본 듯하다. 헐~ 두 사람 덕분에 UPC 활동가들과 UPLink 활동가들이 사무실에서 제 집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와르다(Wardah)

▲ Wardah     ©
UPC와 UPLink-National팀의 총괄 코디네이터인 그녀는 UPC 설립자이기도 하다. 무슬림 종교지도자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녀는 원래 전형적인 무슬림 여성신도로 영어교육학 교수가 되려 했다고. 그랬던 그녀가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론 온몸을 감쌌던 히잡을 벗어던지고 사회운동가로 변모했다. 국내외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그녀지만, 국제회의보다는 빈민촌 방문을 우선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며 겸손한 리더.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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