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서 따스했던 그 겨울이 사라졌어요”

[노마드의 길을 따라] 온난화가 부른 겨울의 실종

정미경 기자 | 기사입력 2007/02/14 [18:19]

“얼어서 따스했던 그 겨울이 사라졌어요”

[노마드의 길을 따라] 온난화가 부른 겨울의 실종

정미경 기자 | 입력 : 2007/02/14 [18:19]
가장 흉악하고, 너절한 깡패두목이라고 할 수 있는 부시정권에 의한 세계적 규모의 테러보다도 더욱 우리를 옭죄는 것이 있습니다.

어차피 직접적인 전쟁과 테러는 국지적이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보다 더한 온난화는 국경이라는 것도 없으며, 더욱이 갈수록 그 해독이 치명적인데서, 지금 세계는 식자들에 의한 끊임없는 경고가 빗발치듯하고 있어요. 그것은 지금·여기에서 당신과 내가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느 사이엔가, 논에 물을 댄 스케이트장이 개장했다는 소식은 들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밭고랑의 서릿발을 차마 밟을 수 없어, 그 자리에 멈추어 한없이 들여다보던 한가함도 옛이야기가 되어버렸고요.
▲골짜기를 굽이 돌아치던 폭포가 얼어붙은 빙벽을 타고...     ©

골짜기를 굽이 돌아치던 폭포가 얼어붙은 빙벽을 타고 오르던 젊은이들의 부러운 행렬은 정말 구경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새벽을 여는 유리창에 서린 성애를 바라보면서 내질렀던 감탄은 그저 전설 속에 묻혀버린 한 토막의 추억.

 전설로 남은 성애의 추억
그랬었지요. 흙은 온통 서릿발에 곤두섰고, 흐르는 강조차 꽁꽁 얼어붙어 썰매와 스케이트를 지치던 개구쟁이들의 벌겋게 달아오른 뺨들이 그렇게나 멋있었는데…. 그러다가 하얀 눈이 펄펄 내리기라도 하면 세상은 깊은 침묵 속으로 잠겨들었던 그때 말입니다.

단고구마에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 마실 온 이웃들과 한바탕 떠들어대던 그때는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어요.

든든하게 차려입은 겨울옷이 감싸주는 몸은 훈훈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얼굴을 후려치는 칼바람에 머리는 그야말로 얼얼하였고요. 따스함과 시림이 공존했던 그해 겨울은 정말이지 짜릿하고도 흥분되던 계절이었습니다. 얼어서 따스했던 그해 겨울은 없어졌어요.

어제는 가장자리만이 얼어있던 연못이, 자고나서 보면 어느새 복판까지 전체가 꽁꽁 얼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내리꽂히는 굵은 물줄기가 폭포 바닥의 시퍼런 물로 되고, 그것이 언저리의 살얼음, 서릿발 얼음 밑으로 숨어버렸던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순간 얼어버린 소용돌이하며, 물길의 깊이에 따라 푸르름의 빛깔이 제각각이었던 강물은 햇살만 받으면 도무지 눈이 부셔서 정말이지 똑바로 볼 수가 없었지요.

서릿발 같은 하얀 얼음꽃에서부터, 커턴 주름처럼 여울진 얼음판은, 석양에 지는 햇살 속에서 더욱 애간장을 녹이는 그 무엇으로 우리들 가슴을 후끈하게 달구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청둥오리와 같은 철새들이 떼 지어 놀았지만 아뿔싸! 그때의 돌다리는 도무지 건너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바위를 둘러싼 뿌연 얼음은 기포를 많이 포함했기 때문이라나?

 눈꽃송이 밀어의 흩뿌림...
섬광처럼 눈을 멀게 했던 고드름의 반사광은 들판의 볏 짚단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법한 소년에게로 마음하나만 줄달음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어떤 이물질의 결합을 허용하지 않았던 얼음과 같은 순수함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더 가슴 졸이던 을씨년스러운 겨울저녁이었어요. 그렇게 폭포줄기는 날마다 다른 빙벽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겨울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따스하고 훈훈했던 그해 겨울이었어요.

우주먼지가 응집하면서 결국에는 별을 탄생시켰다던가? 하늘의 미세먼지 주위로 재빠르게 수증기들이 포집됩니다. 그것이 모이고 쌓이는가 했더니, 어느 사이에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육각형의 대칭구조로 결정을 만들어냅니다. 자연에서는 이 형태가 매우 안정적인 구조라고 알려져 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눈이 한없이 내립니다. 자신의 조직구조 안에 따스한 공기를 하나 그득 품은 함박눈으로 말이에요. 때문에 함박눈이 내리는 날은 거지도 빨래를 하는 날이라고 했었나봅니다.

단열성과 열저장 능력이 참으로 뛰어나, 한겨울의 따스한 바람으로 우리들의 동결되어있는 관계들을 순식간에 녹여주는, 하여 눈은 혼자만 몰래 갈피에 넣어 숨겨두는 사연들을 만들어 내었지요. 얼어서 따스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글루가 안온했던 것도 아마 마찬가지일겁니다. 혹독한 겨울만이 아름다운 관계들을 만들어나갑니다.

별이 되어 쏟아지는 눈꽃송이에 얼마나 많은 가슴들이 오그라들고, 발을 동동 구르도록 애태우며, 그리고 설레었을까. 조곤조곤 나누던 별 같은 밀어의 흩뿌림이, 삭풍이 휘몰아쳤었던 얼어버린 세상을 얼마나 부드럽게 감싸 주었던가.

 “그 겨울을 망가뜨린 부시”
눈 속에 묻힌 보리하며,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뭇 씨앗들은 또 얼마나 달콤한 꿈들을 꿀까. 서릿발 흙 속으로 은근하게 스며드는 따스한 온기에 짐승들은 또 얼마나 많은 잠꼬대를 하고 지낼까. 하나도 같은 무늬가 없는 눈의 결정체는 그 하나하나가 영혼을 지닌 별들의 잔영임에 틀림  없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너와 나 사이를 밀어낸다면, 서릿발 내려앉은 눈가의 애절함은 나와 너 사이를 한없이 끌어당깁니다. 바로 당신이 나의 영혼임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그 겨울을 망가뜨린 네오콘과 부시일당들! 백주테러에 더한 저들의 죄과가 한겨울을 더더욱 숨 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태양계의 푸른 지구호마저 태우고 있는 이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제국주의는 영원한 분노와 저주의 과녁일 뿐입니다.

저들이 있는 한, 너무도 절절하여 짙푸른 그리움으로 얼어버린 폭포와 새하얀 기다림의 눈꽃송이는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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