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여수와 순천에서 발생한 여순사건 당시 반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를 대상으로 한 재심 첫 재판이 열렸다. 여순사건 발생 71년 만이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29일 오후 2시 30분 316호 법정에서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피해자 장환봉(당시 29세), 신태수(32), 이기신(22)씨의 유족이 낸 재심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국민이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우리의 아픈 과거사”라며 “사건 발생 71년, 재심 청구 8년이 지나는 등 유가족들에겐 너무도 길었던 통한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법원이 부족하게나마 그 책무 중 일부를 해야 한다”며 “유족의 한이 얼마나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행법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희생자들이 무고하게 판결을 받은 내란죄의 실체를 밝히고 명예 회복할 수 있는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검찰이 요청한 재판 진행절차에 동의한다”면서 “검사는 명예회복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공소사실이 특정됐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죄명인 내란죄의 실체에 대한 판단이 있으면 명예회복에 대한 판결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요청했다.
검찰도 “재심이 시작된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 희생자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검찰은 형사재판의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재심을 청구한 유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피해자 장환봉(당시 29세)씨의 딸 장경자(75세.여)씨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오랫동안 묻혀있었고 반란이라는 불명예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왔다”며 “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심경을 밝혔다.
다음 재판은 오는 6월 24일 오후 2시 열린다.
재심 재판에서 앞서 이날 오후 1시 30분경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앞에서 여순사건 재심 대책위원회는 우천 속에서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의 위법적이고 불법적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법부의 준엄한 심판을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재심을 청구한 유족에게 뜻에 따라 무죄 판결을 촉구한다”고 밝히고, 법정으로 이동 재심을 과정을 방청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 일부가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제주 출병을 거부하면서 발생된 사건으로 정부군의 진압과 사후 토벌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과 군경 일부가 희생된 사건이다.
장씨 등은 1948년 10월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순천을 탈환한 국군에게 체포된 뒤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50년 7월 7일 대구에서 처형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여순사건을 직권조사해 군경이 순천지역 민간인 438명을 반군에 협조·가담했다는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장씨 유족 등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 쟁점은 당시 군경이 장씨 등을 불법체포·감금한 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1심과 2심은 “장씨 등에 대한 판결문에 구체적 범죄사실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장씨 등은 물론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영장발부를 미루어 판단할만한 자료가 없어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사전·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봐야 한다”며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심 청구 7년 5개월 만인 지난 3월 21일 재심청구사건에 대해 대법관 9대4 의견으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해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고, 장씨 등 연행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재심사유를 인정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원본 기사 보기:전남조은뉴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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