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란, 머리 홍옥뒤꽂이 빼 타레주에게 건넸다"

[연재소설] 홍매지숙명 피다, 18장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18-1)

이슬비 | 기사입력 2018/04/15 [11:33]

"서란, 머리 홍옥뒤꽂이 빼 타레주에게 건넸다"

[연재소설] 홍매지숙명 피다, 18장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18-1)

이슬비 | 입력 : 2018/04/15 [11:33]

 제18장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3-1)


가라고루성에서 나고현까지.


서남쪽으로 말을 달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칠주야를 가야 간신히 도착할 정도로 먼 거리. 아마 가면서 음식도 먹고, 눈구경도 하면서 여유롭게 가면 적어도 십일야는 걸리리라. 아니, 아마 십사야가 걸릴지도.


그리 먼 거리를 유흔의 군대는 단 이틀 만에 주파(走 破)했다. 본래대로라면, 여기 저기 픽픽 쓰러지거나 낙오되는 병사들이 많아야 할 터인데, 이틀 동안 전혀 먹지도 자지도 못한 5천 명의 병사들 중 단 한 명도 쓰러지거나 낙오되지 않은 것은 오직 키야트 아이누이기에, 그리고 유흔의 군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서란은 이제 겨우 열한 살이었다. 아무리 어릴 적부터 말타기에 익숙한 키야트 아이누라 하여도, 서란은 어디까지나 어린아이였고,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속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서란은 척후부대에서 이탈해 자꾸만 뒤에 쳐졌고, 이를 보다 못한 백호장이 서란을 자신의 말에 태워 유흔을 향해 내달렸다.
 
잠시 멈추십시오!”
 
백호장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백호장의 말과 유흔의 말 사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벡호장은 자신의 앞에 앉은 서란을 흘깃 내려다보고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힘이 드냐?”


아니.”


그러면 무서우냐?”


아니.”


무서운 것도 아니면, 졸린 것이냐?”


아니.”


모두 아니라면, 혹시 피곤한 것이냐?”

 

아니.”


모두 아니면, 어찌하여 뒤처지는 것이냐?”


다를 너무 빨라. 그것뿐이야.”
 
백호장은 다시 한 번 서란을 내려다보았다. 백호장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서란을 품에 안고 등자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꽉 잡아라.”


…….”


다친다.”
 
서란의 작은 손이 백호장의 목을 꼭 껴안았다. 백호장은 머리에 쓴 투구를 한 손으로 벗어던지고, 그대로 등자 위를 박차고 날아올라 유흔의 앞에 내려앉았다.
 
척후부대의 백호장 타레주, 한씨가의 제4후계이셨던, 한씨가의 방계 유흔 도련님을 뵙습니다. 허락 없이 진영을 이탈한 죄를 용서하소서.”


용서하고 말고는 사안을 들은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터. 백호장은 무슨 일로 진영을 이탈하였는지 고하라.”
 
유흔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해 있던 백호장은 품에 안겨 있는 서란을 유흔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탈자가 발생하여 허락 없이 진열을 벗어나는 중죄를 저지르면서까지 도련님의 앞에 서는 바입니다.”


…….”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속력을 따라잡지 못하여 군영을 이탈해 뒤처지는 것은 당연한 일. 또한 이 아이는 본래, 도련님께서 거두시던 아이가 아닙니까. 하여, 도련님께 그 처분을 맡기고자 중죄를 저질렀나이다.”
 
유흔은 서란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백호장이 얼른, 서란을 안아 올려 유흔의 품에 안겨주었다.
 
백호장.”


, 도련님.”


이번 일에 대한 처분은 신씨가와의 전쟁이 끝난 후, 그때 결정하겠다.”
 

 
나고현까지 가는 내내 서란은 유흔의 품안에 안겨 잠을 잤다. 유흔은 그런 서란을 굳이 깨우려 하지 않았고, 서란은 지금 이 길이 어디로 가든 길이든, 지금 이곳이 어디이든 유흔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화야.”
 
유흔은 조용히 서란을 불렀다. 서란은 눈을 뜨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 같아?”


…….”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야.”


…….”


그러니까 나를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지 마.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어.”
 
꿈을 꾸는 것일까. 서란은 유흔의 품에 갇혀 있는 동안 단 한 번, 뜻 모를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나 유흔은 그 노래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서란이 부르는 노래는 다름 아닌, 유흔이 가르쳐준 노래들 중 하나였다.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유흔은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품에 안긴 서란을 토닥거렸다. 서란은 곧, 으음 하는 소리와 함께 유흔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유흔의 군대가 나고현성 앞에 도착했을 때는 달빛조차 모습을 감춘 깊은 밤이었다. 유흔은 서둘러 서란을 깨웠다.
 
화야, 화야, 다 왔어. 일어나.”
 
서란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달빛 하나 없는 밤이라 그런지, 주위는 고요하다 못해 깊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유흔이 부장 하나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부장이 전군을 재촉해, 척후부대의 말에 방어래를 물리게 했다. , 척후부대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병장기를 천으로 감싸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유흔은 서란의 검에도 천을 감아준 후, 초계기를 세워 백부장 타레주를 불렀다.
 
이 아이도 데려가라.”
 
타레주는 군말 없이 명을 받들었다. 서란을 넘겨받아 자신의 말안장 앞에 태우는 타레주의 귓가에 유흔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 무사히 데려와라.”
 
타레주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명을 따르겠노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척후부대는 말발굽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재빠른 속도로 적진 곳곳에 침투한 그들은 저마다 조를 나누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적진의 정보를 탐색하려 애썼다.
 
눈을 감겠느냐?”
 
서란은 타레주와 단 둘이 한 조가 되어 있었다. 아무도 짐덩어리일 뿐인 어린아이와는 한 조가 되려 하지 않았고, 결국, 타레주만이 서란과 한 조가 되어 있었다. 타레주는 서란과 함께 말에서 내려 적진의 가장 후미, 병참부대에 멈춰 섰다.
 
아니.”
 
서란의 말에 타레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 타레주는 품에서 나무 대롱을 하나 꺼내어 입에 물고 불었다. !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적병 하나가 풀썩 쓰러졌다. 타레주는 바로 옆에 있는 적병 하나를 더 쓰러뜨리고는, 그 주위에 있던 적병들에게 다가가 마키리로 목을 베었다. 뒤늦게 침입자가 발생한 것을 알아챈 불침번들이 타레주와 서란을 향해 다가왔지만, 그들은 타레주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타레주는 그들이 칼날의 방향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쾌도술(快 刀 術)을 구사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타레주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붉은 피가 허공으로 튀어 올라, 꽃잎이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서란은 작은 마키리 하나만으로 혈화(血 花)를 피어내는 타레주를 올려다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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