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사랑의 한을 간직하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자 기생인 이매창(李梅窓‧1573~1611)이 한 폭의 배꽃으로 되살아났다.
전북 부안군이 부안문화원과 지난 2015년부터 당대 최고의 여류시인 매창을 선양하기 위해 영정제작 사업을 시작한지 2년여의 산고 끝에 결실을 맺고 3일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영정 제작자인 김호석(수묵화가‧미술사학과 박사) 화백은 "전체적인 물감 안료는 천연물감을 사용했고 16세기 가체모양의 실제를 재현했으며 얼굴과 손은 부안에서 출토한 황토를 사용해 맑고‧곱고‧그윽하고‧지극함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특히 "▲ 움직임이 있는 생명력 ▲ 조선 여인의 이상 ▲ 선각자로서 이미지 ▲ 조선 미감의 구현 등에 중점을 둔 자문위원의 자문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매창의 영정은 먼저, 맑고 고요한 조선 미감이 표현됐으며 여인의 얼굴과 자태가 고요하고 단아해 내면의 상태를 표현하는 주력했고 얼굴빛은 투명하고 곱지만 눈매를 통해 지성적이고 개성 있는 선각자의 당당함을 나타냈다"고 강조했다.
김 화백은 또 "머리카락은 살짝 젖어있고 눈은 쌍까풀 없이 예쁘고 고우며 입술은 살포시 다문 모습에 왼손이 오른손을 감싸며 상대방에 대한 지극한 배려가 보이고 복색은 연노랑 저고리와 쪽빛의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밝혔다.
김종규 부안군수는 "매창(梅窓)사후 400년 만에 영정을 제작해 부안 정명 600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해 뿌듯하고 매창의 문학정신 고취와 향토문화예술의 창달을 도모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세심한 행보를 드러냈다.
영정 전 제작 과정을 자문해준 변영섭 前 문화재청장은 "영정 속 梅窓은 춤을 추고 거문고를 타며 땀 흘려 젖어있는 모습은 영정에 생명력을 담은 것으로 가히 미술사적 도전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한편,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 하는가 /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 가락 하여라" 라는 이화우 흩 뿌릴제로 유명한 梅窓은 본명이 향금(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이며 호가 매창(梅窓)이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허균‧이귀 등과 교류가 깊었으며 부안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룬 매창은 가무‧현금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으며 1668년 구전해 오던 매창시 58수를 모아 부안의 개암사에서 간행한 매창집이 있다.
시집 속에는 오언절구 20수‧칠언절구 28수‧오언율시 6수‧칠언율시 4수 등 58수가 순서대로 수록돼 있다.
부안군은 지난 1983년부터 여류시인 이매창 묘를 "도기념물 제65호 지정문화재"로 관리하고 있으며, 묘소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매창을 기리고 있다.
"이화우 흩 뿌릴제" 라는 이 시조는 매창(梅窓)이 연인 유희경을 그리며 지었다고 전해진다.
매창은 부안 출신의 기생으로 한시에 능했을 뿐 아니라 거문고 연주 또한 뛰어났다.
그 명성이 전국에 퍼져 수많은 시인가 문장가들 그리고 사대부들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부안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한 단 한 사람의 연인은 유희경(1545~1636)이다.
유희경의 신분은 조선시대에 가정 업신여김을 받던 천민이었다.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은 기생이 사랑한 남자가 천민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매창(梅窓)은 38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시문‧가무‧거문고에 능했고 사회적 신분을 넘어 당대의 문장거벽들과 사귀며 수백편의 주옥같은 시가를 남겼다.
그중 가곡원류에 실린 "이화우 흩날릴제"는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매창은 비록 기생 신분이었으나 행동거지가 바르고 절개가 곧은 여인이었다.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전북판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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