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이 누운 자태의 사동 그 천국에 서다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12] 가재바위까지 항아리형상의 포구 신항으로 거듭난다니...

한도훈 | 기사입력 2015/12/07 [09:13]

사슴이 누운 자태의 사동 그 천국에 서다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12] 가재바위까지 항아리형상의 포구 신항으로 거듭난다니...

한도훈 | 입력 : 2015/12/07 [09:13]
사동항은 저동항이나 도동항에 비하면 아주 작은 포구다. 도동쪽 보루산 산등성이에서부터 바닷가 가재바위를 배경으로 항아리처럼 생긴 포구이다.

사동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끝부분에 얼핏 보면 오징어 머리 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게 가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가재바위이다. 이곳을 가잿골이라고 하기도 한다. 육지에서 가잿골은 ‘마을 끝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곳에서 바다가재가 많이 잡혔나보다. 통구미에도 가재굴바위가 있다. 이곳이 낚시 포인트다. 방어도 잡고 다른 물고기도 잡을 수 있다.

까마득한 절벽과 해안동굴을 마주하면...

이 가재바위를 지나 도동항까지 해안산책로가 연결되어 있다. 중간에 무지개다리도 설치되어 있어서 망향봉, 보루산을 올려다 볼 수도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절벽들, 그리고 옛날 해적들이 살았을 듯 으스스하게 생긴 해안동굴이 마중한다. 울릉도에서 빼앗을 게 뭐 그리 많다고 해적이 있을까마는, 그리 생각하는 것은 세파에 찌든 때가 두꺼워서다. 이 때를 벗겨내려면 한 세월 울릉도에서 보내면 된다.
 
▲ 사동항에서 바라본 망향봉.     © 한도훈

울릉도는 사자의 입에 머리를 넣어도 물리지 않는 그런 천국이니까. 울릉도에선 남의 것을 도둑질하거나 남을 상해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항구만 폐쇄하면 금방 잡히기 때문이다. 성인봉으로 도망쳐도 며칠 버틸 수가 없다. 하늘로 뿅 솟구쳐 날아갈 수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울릉도 사람들은 모두 남을 해꼬지할 줄을 모른다. 남을 배려하고 사는, 바로 천국이다.

보루산 중턱에서 바라보면 사동항이 아주 작게 보인다. 이 사동항을 중심으로 마을 당산나무인 후박나무숲이 있고, 그 주변으로 집들이 들어찼는데 와록사(臥鹿沙)라고 한다. 1883년부터 사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전라도 개척민들이 지은 이름이다.

개척민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보니까 어디를 둘러봐도 그 흔한 모래 한줌이 없었다. 그런데 사동에 와 보니 모래가 바닷가에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와옥사(臥玉沙)라고 한 거다. 전라도에선 흔하디흔한 모래지만 여기서는 귀하기만 하니 그 감격에 이름을 그리 지은 거다. 동네 뒷산을 보니 마치 사슴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보여 와록사(臥鹿沙)로 부른 거다. 모래와 사슴이 중첩된 거다.

옛날 우리나라에 사슴이 참 많았는데 토종 사슴은 멸종해버려서 그 모습을 알 수가 없다.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인 윤두서의 사슴 그림을 보면 뿔이 우람한 토종 흰사슴을 발견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 흰사슴을 닮은 모래사장을 연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후 와록사를 지우고 모래만 남게 해 사동(沙洞)으로 ‘모래마을’이 된 거다.
 
현재 사동이 1, 2, 3리가 있는데 그렇게 여러 마을들이 생겨났다. 와록사 위쪽에 새롭게 들어선 마을은 새각단이다. 어느 해인지는 몰라도 관모봉 중턱이 무너져 내려오다가 와록사 앞 200m에서 멈추었다. 이곳에 평지가 생겨 너도 나도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느닷없이 새롭게 마을이 생겨 새각단이 된 것이다.

도둑도 해코지도 없는 개척민의 천국

새각단 뒤쪽으로 성인봉을 오르는 산길의 초입이 있는데, 이곳은 안평전(內平田)이다. 나무도 울창하고 평지가 있어 농사짓기에도 알맞아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산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평지라는 의미로 안평전(內平田)이라 한 거다.
 
▲ 바다에서 바라본 사동.     © 한도훈

울릉도 해안도로가 도동에서 산비탈을 타고 내려와서는 와록사 앞에서 급격하게 꺾어져 돌아간다. 해안도로에서 처음 만난 동네가 있는데 바로 신리(新里)다. 새마을. 점점 울릉도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우복동 일부와 중영 일부를 합해서 신리(新里)라고 부른 거다.

신리 뒤쪽 산 속으로 높이 올라간 곳에 왜막골이 있다. 일본인들이 배 만들기 좋은 나무를 베기 위해 막을 치고 살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여기에도 일제의 나무 약탈이 자행된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다음은 옥천동(玉泉洞)이 있다. 원래는 우복동(牛伏洞)이라고 했다. 이곳 산등성이가 '소가 엎드려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 부르게 된 이름. 소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딴 땅이름은 우리나라에 많이 있다. 소가 우리네 삶과 친근한 짐승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우복동을 옥천동이라고 새롭게 부르게 된 것은 1904년부터이다. 마을 앞으로 옥천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시냇물이 한없이 맑아 옥 같고, 마을에서 판 샘물 맛이 시원하고 맑아 붙여진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 사동에 속하는 마을로는 간령, 중령. 장흥동, 중평전이 있다.

사동 해안은 아담하지만 멀리 가두봉 등대까지 펼쳐져 있다. 해안에는 몽돌이 가득 깔려있다. 이 몽돌이 해안도로를 만들면서 많이 사라졌고, 울릉신항을 만들면서 몽땅 사라져 버렸다. “영원히 죽어버린 몽돌 살려내라.”

옛 장흥초등학교인 울릉예술문화 체험장이 있는 곳을 물래치기라고 한다. 울릉도에서 가장 센 파도가 밀려와 해안도로를 덮치기 일쑤여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거다. 물래치기에서 ‘물’은 바닷물이고, 밀려온다는 올 래(來), ‘치기’는 파도가 덮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파도가 몰려와서 덮치는 것을 형상화하면서 우리말, 한자를 뒤범벅해서 만든 말이다.

을릉신항 들어선다니, 기대반 우려반

사동항 방파제에서 좌우 풍경을 바라보는 맛이 좋다. 보루산 중턱에서 가두봉 너머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멋있다. 도동에서 사동으로 내려오는 길에 사동항을 바라보는 건 알차다. 가두봉에 올라 사동항 전체를 바라보면 현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산 만물상은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 사동 옛사진.     © 한도훈

지금은 사동에 울릉신항이 이미 완료되어 있고, 앞으로 울릉도, 독도를 지키는 이지스함이 정박할 대규모 항으로 변모하겠지만 아직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방파제 길이가 300m가 넘는 큰 항구로 개발되면 울릉도가 그만큼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파제를 만들기 위해 아주 큰 석산 네 개쯤은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그게 사동항의 미래다.

“사동항이여! 울릉도의 미래여! 웅장한 항구로 다시 태어난다니... 그게 독(毒)일지, 약(藥)일지 모르겠구나.”

시집 '코피의 향기'를 쓴 시인 한도훈입니다. 어린이소설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를 우리나라 최초로 집필했습니다. 부천시민신문, 미추홀신문, 잡지 사람과 사람들을 통해 언론인으로써 사명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콩나문신문에 '부천이야기'를 연재하고 있고, 울릉도, 서천, 군산, 제주도 등지의 여행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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