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인 풍요와 안녕 기원하는 도동신당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10] 깍깨등 아래 다섯 신들의 안식처 앞에...

한도훈 | 기사입력 2015/11/09 [09:50]

울릉인 풍요와 안녕 기원하는 도동신당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10] 깍깨등 아래 다섯 신들의 안식처 앞에...

한도훈 | 입력 : 2015/11/09 [09:50]
깍깨등 아래 성인봉 등산로인 대원사 절 입구에는 도동신당(道洞神堂)이 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절이 있는 골짜기라고 해서 절골이라고 불렀다. 울릉도, 도동을 지켜주는 신들의 안식처다. 오래된 나무들이 신당을 둘러싸고 제법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도당신당 자리는 예전엔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사직단은 한양을 비롯해서 전국 주, 부, 군, 현에 세워져 있었다. 나라의 사신과 직신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도동 사직단은 일제시대 때 일제에 의해 폐쇄되어 잠시 거짓으로 산신을 모셔놓기도 했다.

이 도동신당(道洞神堂)을 울릉도 주민을 외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친다. 급하게 성인봉에 오르거나 망향봉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기 일쑤다. 이 도동신당에도 눈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관모봉인 깍깨등에 주민들의 한(恨)이 바윗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봉에 오르기 전 약간의 시간을 내 도동신당에서 경건한 마음을 품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도동신당 전경.     © 한도훈

 
주민들의 고단한 삶과 한 서린 기도처

조선시대 때 울릉도는 왜구의 침탈이 워낙 심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섬을 비워 놓고 관리를 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때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 육지에서 내쫓김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정도로 어려움을 처한 많은 이들이 관리의 눈을 피해 도망쳐 왔다. 조그만 나무배나 돛배에 몸을 싣고 집채만한 파도와 싸우며 울릉도에 도착해 그야말로 명이나물 같은 걸 뜯어 먹고, 풀뿌리를 캐 먹으며 겨우겨우 살아가야 했다.

“이런 도적 같은 놈들! 울릉도를 왜구 침탈로부터 비워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불법으로 살고 있으니 모조리 잡아다 배에 실어라.” 조선 정부는 정기적으로 울릉도를 순찰해서 발견한 주민들을 마구 잡아갔다. 이들을 관비나 노비, 변방의 병사들로 채워 넣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도망치다 잡혀간 사람들이 부지수였다.

거기에다 먹고 살기 위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어야 했기 때문에 태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어야 했다. 파도에 고깃배가 뒤집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성인봉 산신이며 지역에 조그만 산의 주인인 산신, 바다의 주인인 해신에게 기도를 올려야 했다. 그 대표적인 적인 것이 태하의 성하신당이고, 동네마다 해신당이며 동제당 등이 많았다.

도동신당에는 절골 주민들뿐만 아니라 도동 주민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다섯 신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그 첫 번째는 도동 사신위(道洞 社神位)이다. 땅을 관장하는 신이다. 땅은 주민들에게 먹을거리를 주기 위해 곡식을 자라게 한다. 깎아지른 망향봉 산줄기며 행남봉 줄기, 깍깨등 줄기에 자란 나무뿌리, 풀뿌리들을 괭이나 삽으로 파내 일군 밭이다. 거기에다 사계절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너와집·투막집을 지을 수 있게 땅을 제공해준 사신의 신위를 모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윗쪽에서 바라본 도동신당.     © 한도훈


두 번째는 군사신위(郡社神位)다. 울릉군 전체를 관장하는 토지신이다. 울릉군 전체의 땅이 기름지고 풍성하게 해 곡식이 자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곳이다.

"도적같은 놈들 모조리 잡아다 배에 실어라"

세 번째는 군직신위(郡稷神位)가 모셔져 있다. 직신(稷神)은 오곡을 풍성하게 해준다. 앞에 군(郡)을 넣은 것은 도동뿐만 아니라 울릉군 전체의 곡신을 기린다는 의미이다.

네 번째는 주산신위(主山神位)가 있다. 울릉도의 주산인 성인봉 산신령의 신위이다. 성인봉 산자락은 울릉도 주민들에게 수많은 먹을거리를 제공해 준다. 명이나물, 부지깽이, 더덕, 호박 등 농작물을 지을 수 있게 산자락을 제공해주고 있는 거니까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다섯 번째는 도동 사해위(道洞 社海位)다. 도동 앞바다를 풍성하게 해주는 신이다. 도동을 기점으로 해서 동서남북 앞바다를 지켜주는 해신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정부에서 우리나라 사해신(四海神)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동해신은 강원 양양, 서해신은 황해도 풍천(豊川), 남해신은 전남 나주, 북해신은 함경 경성에서 일년에 두 번 제사를 지냈다. 마찬가지로 도동신당에서도 도동 주변의 사해신(四海神)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이들 다섯 신들을 위해 도동 마을에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마을 축제를 열고 있다. 이장과 주민들이 제관과 제주, 축관을 선출한다. 축관은 마을 개발위원 중에서 선출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제를 지낼 때까지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 부정을 불러들이지 않으려고 몸가짐을 조심하는 거다.

특히, 초상이 난 집이나 짐승을 잡는 집에는 출입하지 않는다. 초상집에서 묻어오는 것을 상문살이라고 한다. 집안에 초상이 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부정이다. 도동신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서도 일 년 동안 궂은일은 보지 않고 언행에 조심한다.
 
▲ 도동에 있는 해신당 현판.     © 한도훈


제사를 지낼 때 필요한 자금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물은 메 다섯 그릇, 돼지 머리, 나물, 건포, 삼실과, 해물, 시루떡 등을 올린다. 메(飯)는 제사 때 신위(神位) 앞에 놓는 밥이다.

지신을 밝고 걸립을 하며 마을축제를 벌인...

제사를 마치면 간단하게 음복을 하고 제물을 마을 회관으로 옮긴다.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서 간단하게 음복한 후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 총회를 연다. 총회 후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들러 지신을 밟고 걸립을 하며, 편을 나누어 윷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축제를 벌인다. 이렇게 마을축제가 바로 도동신당의 신들을 위한 제삿날에 이뤄진다.

“도동신당이여! 오, 울릉도, 도동, 절골, 깍깨등 마을을 지켜주는 사신과 직신이여! 신비의 울릉도를 풍요롭게 가꾸어주시고, 울릉 앞바다 파도를 항상 잔잔하게 해주소서!”

시집 '코피의 향기'를 쓴 시인 한도훈입니다. 어린이소설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를 우리나라 최초로 집필했습니다. 부천시민신문, 미추홀신문, 잡지 사람과 사람들을 통해 언론인으로써 사명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콩나문신문에 '부천이야기'를 연재하고 있고, 울릉도, 서천, 군산, 제주도 등지의 여행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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