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료관엔 울릉인의 삶과 애환 한가득"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8] 갈판·돌확·강고배·남포등·설피 등 전시

한도훈 | 기사입력 2015/10/17 [11:21]

"향토사료관엔 울릉인의 삶과 애환 한가득"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8] 갈판·돌확·강고배·남포등·설피 등 전시

한도훈 | 입력 : 2015/10/17 [11:21]
도동약수공원내에 울릉향토사료관이 있다. 이곳을 가려면 독도박물관 표석과 '對馬島本是我國之地'(대마도는 본시 우리나라땅)이라는 표석이 서 있는 곳을 거친다.

'대마도 우리나라 땅' 표석에는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 총사령관이자 지도자였던 도요토미가 구끼 등을 시켜 제작한 조선국지리도 내 팔도총국이 그려져 있다. 이 지도에는 대마도가 조선땅임을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임진왜란에서 결국 패배한 도요토미조차 대마도가 조선땅임을 인정했던 것이다. 독도뿐만 아니라 대마도가 우리땅임을 나타내주는 증거물을 표석으로 세워놓고 있다. 이 한가지 증거만으로도 일본이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 성립한다.
 
도요토미 제작지도 '대마도는 한국땅'

울릉향토사료관은 독도박물관과 독립된 건물로 그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부터 시작된 울릉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주로 생활역사 위주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역사사료관으로서는 아주 작다. 좀 더 크고 웅장하게 울릉도 역사를 재현해 놓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울릉향토사료관에 전시된 돌확 돌공이.     © 한도훈

▲ 갈돌 갈판.     © 한도훈

▲ 오징어잡이 배에서 사용하는 남포등.     © 한도훈


울릉향토사료관 들머리에는 작게 제작된 울릉도 전체 입체지도가 있다. 이를 통해 여행을 할 울릉도의 이모저모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또 한쪽에는 간략하게 정리된 울릉역사표가 눈에 띈다. 청동기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놨다.

유물전시실 정면에는 울릉도에서 발견된 고인돌에 대한 설명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내수전, 현포, 남양 등지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남양에서 발견된 고인돌에는 성혈까지 되어 있어 그 가치가 크다.

유물전시실은 왼편부터 관람하게 되어 있는데 맨먼저 울릉도 선사시대 유물들이 눈에 띈다. 거친 곡식을 갈 때 쓰던 갈판과 갈돌, 도토리묵을 쑬 때 사용하던 돌확과 돌공이가 있다. 선사시대 때는 이들 도구가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울릉도내 여러 고분들 주변에서 발굴된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청동제함이나 접시가 있고, 세귀달린 굽다리바리, 굽다리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병 등이 있다.

울릉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을 증명하는 돌을 깎아 만든 석인상도 눈길을 끈다. 현포리 고분에서 발견된 것인데, 얼굴은 손으로 꾹꾹 눌러 그은 것처럼 눈코입을 간단히 새겨놓았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모은 뒤 마주잡아 기도하는 자세다. 하반신은 아주 간략하게 처리했다. 현포 거주자가 치성을 드리려고 만든 민불로 여겨진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생활도구 총망라

울릉 너와집으로 꾸며놓은 전시실에는 여인이 베를 짜는 모형이 있다. 울릉도에서도 직접 옷감을 짜 입었음을 알 수 있다. 목화를 심어 실을 잣아 옷감을 만든 것. 저동에 많이 나던 모시나 칡넝쿨로 만들어 입던 갈옷, 삼으로 만든 삼베옷이 주였다. 목화실을 잣던 물레, 옷감이나 무쇠솥을 솔질하던 소나무뿌리로 만든 솔도 전시되어 있다.
 
▲ 도동 각석문.     © 한도훈

▲ 석인상.     © 한도훈

▲ 설피.     © 한도훈


조상 제사 때 쓰던 목제기, 식구들의 둥근 밥상, 추운 겨울날 눈쌓인 산천을 구경할 수 있도록 안방을 덮혀주던 화로, 산골마다 집집마다 어둠을 밝히던 등잔, 한밤중 안방에 놓아두던 요강, 옷가지들을 넣어두던 장롱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쓰이던 농기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투막집, 너와집에서 키우던 소나 돼지에게 먹이는 여물 써는 작두, 돗자리를 짜던 바디, 논과 밭을 갈던 소 등에 짊어지게 했던 멍에, 논 갈 때 사용하던 써래, 망치며 칼, 그리고 나무를 벨 때 쓰던 큰 톱 등이다.

일을 할 때나 외출할 때 즐겨 신던 짚신, 귀하디귀한 짚으로 만든 소쿠리, 곡식을 담아 놓는 망태, 지게에 올려놓는 발채, 병아리를 키울 때 사용하던 대나무 닭장 어리, 나무로 깎은 여물바가지, 소나무 뿌리에서 복령을 캘 때 쓰던 쇠꼬챙이, 말뚝이나 못을 박거나 떡을 칠 때 쓰던 메 등이다.

그 옆에는 울릉도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던 전통배인 강고배가 전시되어 있다. 1900년대 초 울릉도 천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사용된 배다. 주로 오징어잡이이 사용했으며, 전복·소라를 캐거나 김·다시마 같은 해초류를 딸 때도 썼다. 처음에는 작았으나 이후 여러 장치들을 부착해 점차 커졌다.

울릉도인들의 생활도구도 전시되어 있다. 오징어잡이에 쓰이던 어구들이다. 저동어화 같은 불야성을 이루는 오징어잡이 때 사용한 남포등과 주낙이다. 주낙은 긴 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매달은 것을 말한다. 이 낚시들을 싸리로 만든 주낙바구니에 꼽아놓고 썼다. 기타 여러 낚시바늘도, 물을 끓이던 주전자, 옷을 다리던 숯다리미도 전시되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 이동할 때는 가장 요긴한 것이 설피이다. 신발에 덧대 신던 넓적한 덧신이다. 단단한 다래나무나 물푸레나무를 타원형으로 구부려서 만든 틀을 칡끈이나 삼끈 또는 새끼줄로 단단하게 신발에 고정해 사용한다.

'울릉도의 모든 것' 담기엔 규모 작아보여

울릉도 전통 눈썰매는 설마(雪馬)라고 한다. ‘눈밭을 달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설매다. 울릉 섬조릿대를 잘라 앞축을 불에다 정성껏 구우면서 구부린다. 이렇게 구부린 몇 개의 섬조릿대를 하나로 엮는다. 그 위에 짚신을 단단하게 고정하면 눈위를 달리는 스키가 된다. 이때 지게 작대기로 몸균형을 잡는다.
 
▲ 베틀.     © 한도훈
▲ 농기구.     © 한도훈
▲ 울릉도 전통 강고배.     © 한도훈


이밖에도 도동 신묘명각석문도 전시되어 있다. 이 각석문은 1937년 도동 축항공사 때 바다에서 인양되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삼척영장 겸 첨절제사 박석창이 신묘년 5월에 울릉도를 수토하기 위해 파견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마름모꼴의 바위 면에 20행 143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날짜, 수토 내용, 수토관 및 수행원들의 이름 순으로 새겨넣었다. 울릉도 수토시 왜학이 동행한다는 점, 울릉도에 왜선창이라는 선착소가 있다는 점, 일행전원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점 등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울릉향토사료관이여, 울릉도 과거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초라하게 보일까? 울릉도 학생들에게도 관광객들에게도 풍부한 울릉도 역사를 보여주고, 유물에 대해 충실한 설명이 뒤따라야 할텐데...”


시집 '코피의 향기'를 쓴 시인 한도훈입니다. 어린이소설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를 우리나라 최초로 집필했습니다. 부천시민신문, 미추홀신문, 잡지 사람과 사람들을 통해 언론인으로써 사명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콩나문신문에 '부천이야기'를 연재하고 있고, 울릉도, 서천, 군산, 제주도 등지의 여행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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