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한 가운데 솟은 천하제일 성인봉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2] 250만년전 용암 솟구쳐 올라 천지창조...

한도훈 | 기사입력 2015/08/25 [01:35]

동해 한 가운데 솟은 천하제일 성인봉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2] 250만년전 용암 솟구쳐 올라 천지창조...

한도훈 | 입력 : 2015/08/25 [01:35]

태초에 울릉도는 없었다. 그저 한반도하고 연결된 드넓은 평원이 있었다. 그 평원에서 4500만년 전부터 시작해 2500만년 전후 거대한 용암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울릉도 씨앗이 잉태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에 수많은 화산이 폭발해 땅이 솟아오르자 그 사이로 깊은 협곡이 형성되었다. 태평양 쪽에서 엄청난 바닷물이 밀려와 한반도와 울릉도 협곡 사이를 메웠다. 

그렇게 해서 동해바다가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다. 천지창조(天地創造). 동해바다가 처음 열리던 날을 상상해보면 멀쩡하던 정신마저 몽롱해진다. 영혼이 솜털처럼 가벼워져 동해바다로 날아간다. 현실 세계에선 도저히 만나볼 수 없는 신비로운 일이 태초부터 시작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도 울릉도는 아직 섬으로 불쑥 솟아오르질 못했다. 바닷속에 잠겨 있는 암초 같았다. 암초 몇 개 바닷물 위로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고나 할까. 그 실체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 성인봉 능선 중 하나인 말잔등.     ©한도훈

▲ 성인봉에 군락을 이룬 섬조릿대.     ©한도훈


그러다가 250만년 전에 다시 울릉도에서 용암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바다밑 땅껍질을 뚫고 뛰쳐나오지 못해 안달이 난 용암 덩어리들이 하늘 위로 높이 솟구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터져나온 용암덩어리가 식으면서 울릉도의 초기 모습이 만들어졌다. 

화산재 사이로 너도밤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그 때는 성인봉, 나리분지, 알봉분지 따위는 없었다. 현무암질 집괴암이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집괴암(集塊岩)은 화산이 분출하면서 화산재가 멀리 날아가지 않고 바로 근처에 높게 쌓이는 것을 말한다. 울릉도는 그저 높게 쌓여진 현무암질 집괴암만으로 이루어진 섬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인봉이 울릉도에서 우뚝 서게 되고, 그 아래로 많은 봉우리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결정지었다. 어디에선가 너도밤나무, 섬단풍나무, 우산고로쇠 같은 나무 씨앗이 날아들어 집괴암을 부수고 뿌리를 내렸다. 

그러다가 1만년 전에 다시 화산이 폭발해서 성인봉 아래가 푹 꺼진 뒤 나리분지가 만들어 졌다. 이때 화산 폭발로 인해 청록색이나 회색인 조면암(粗面岩)이 많이 분출되어 울릉도 골격이 만들어졌다. 조면암은 비와 바람에 약해 황갈색이나 회색으로 색깔이 변질되어 갔다. 나리분지를 만들어낸 화산이 폭발한 용암 분출구에서 뿜어낸 용암은 나리령 암벽이 되었다. 

나리분지가 만들어진 다음 세월이 많은 흐른 뒤 6300년 전에 다시 화산이 폭발해 알봉분지를 만들어 냈다. 용암이 분출하던 산은 새의 알처럼 생긴 알봉이 되었다.

그 뒤 성인봉(聖人峰)은 안정화의 길을 걸었다. 성인봉은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처럼 높지 앉지만 천하제일봉(天下第一峰)이다. 동해바다 그 넓은 터에 성인봉만큼 높은 봉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우뚝 솟아오른 그것만으로도 옷깃을 여기게 하는 성스러움이 배어난다. 이처럼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산의 모양이 성스럽다고 하여 성인봉이라 한다. 

성인봉이라는 호칭을 얻는 데는 또 한가지 설화가 있다. 원래 비가 많이 오기로 한 유명한 울릉도에 석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실 물이며 빨래할 물조차 귀해 야단이 났다.

가뭄 때마다 성인봉 정상에서 관을 파내면...

다들 넋 놓고 한숨만 푹푹 쉬며 걱정을 하던 끝에 어떤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쳤다. 점쟁이는 성인봉 꼭대기를 파 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점쟁이의 말을 듣고 성인봉 산꼭대기로 올라가 한 길쯤 파 들어가자 갑자기 연기가 솟아올랐다. 땅속에서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연기가 솟아오르자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더 깊이 파 내려가자 묻은 지 오래 되지 않은 시체 한 구가 나왔다.
 


▲ 신비를 간직한 성인봉 원시림.     © 한도훈

 

▲ 성인봉에서 바라보는 미륵봉.     © 한도훈



이 시체 때문에 비가 오지 안 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시체를 개울로 굴려 버리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뒤부터는 울릉도에 이상한 일이 생기거나 가뭄이 들 때면 섬사람들은 성인봉 꼭대기를 파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대개 관이나 시체가 나왔다. 이는 성인봉이 너무도 영험한 명산이라서 꼭대기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이 번창한다는 풍수설을 믿고 남몰래 묘를 조성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성인봉은 높이가 984m이다. 울릉도 사방으로 말잔등, 뺍재이등, 대등, 나발등, 깍깨등, 줄맨등 같은 산등성이가 있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고개로는 나리령, 서달령, 태하령이 있다. 산봉우리로는 미륵봉, 형제봉, 송곳봉, 삿갓봉, 가두봉, 관모봉, 두리봉, 망향봉, 두루봉 등을 품에 안고 있다. 다들 천하절경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적 기질을 갖고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들이기도 하다.

울릉도에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봉을 꼭 올라야 한다. 성인봉을 오르지 않으면 울릉도를 구경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성인봉 등산이 일반화 되었다. 등산로가 잘 닦여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대원사 코스, KBS중계소 코스, 안평전 코스, 저동 봉래폭포 코스, 나리분지 코스 등이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형제봉에서 미륵봉으로 이어지는 산행코스를 즐겨 타기도 한다. 전문 산악인들은 송곳봉이나 삼선암 암벽타기를 즐겨한다. 제일 많이 애용하는 코스는 KBS중계소 코스이다.

KBS중계소가 있는 곳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이곳에선 도동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동항 집들이 있는 움푹 꺼진 계곡하며 망향봉, 소질산 등이 정겹게 겹쳐 있다. 사동으로 넘어가는 꼬불꼬불한 달팽이 도로도 인상적이다.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서면 다른 곳을 바라볼 수가 없다. 너무도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는 너도밤나무, 섬피나무, 섬고로쇠나무, 우산고로쇠, 섬단풍나무, 섬벚나무, 두메오리나무 등 때문이다. 여름이면 짙은 안개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득 메워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길게 머리 푼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서늘해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이내 식는다. 

도동항 너머 망향봉·소질산 정겹기만 하고

나무숲 아래에는 고사리, 고비 천국이다. 울릉도는 사람들의 천국이고, 성인봉 등 봉우리는 고사리류의 천국이다. 푸르고 싱싱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일색고사리, 잎 모양이 날개를 편 공작처럼 아름답다고 한 공작고사리 등 성인봉 산등성이, 골짜기, 평지 등 가리지 않고 무리지어 자란다. 오랜 세월동안 낙엽이 쌓여 이불처럼 푹신한 땅이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기 때문에 이들 양치식물은 잘 자란다.

성인봉 가는 중간에 구름다리를 만난다. 이 구름다리에서 말잔등 산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 말잔등에 잔뜩 안개가 끼면 안개에 가려졌다 나타났다 하는 풍경이 기가 막히다. 이 구름다리를 조금 지난 뒤에 등산객들이 쉴 수 있는 팔각정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서 타가지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거나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창조된 싱싱한 산소를 흠뻑 들여 마실 수 있다. 이 산소야말로 온몸에 맑은 피를 돌게 해 술담배 등으로 쌓여 있는 노폐물을 밖으로 뽑아내는데 일등공신이다.

안평전 코스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마주치는 바람등대부터는 섬조릿대 군락이 이어진다. 죽도의 섬조릿대는 키가 훌쩍 크지만 성인봉 섬조릿대는 키가 아주 작다. 늘 안개에 시달리고 바람에 시달려서 그런 모양이다. 섬조릿대가 서걱대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나무 계단을 밟고 한달음에 달려가면 성인봉 정상이다.
 


▲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본 성인봉.     © 한도훈

 

▲ 울릉도 성인봉의 정상 표지석.     © 한도훈




성인봉 정상에는 성인봉(聖人峰)이라고 쓴 표지석만 덩그렇게 박혀 있다. 이 표지석을 배경삼아 다들 사진찍기에 바쁘다. 성인봉 꼭대기는 항상 안개가 자욱하다. 맑은 날이 그야말로 손으로 꼽는다. 성인봉 꼭대기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정자’를 세우면 어떨까? 하루고 이틀이고 그곳에 머무르면서 변화무쌍한 성인봉 아래 풍경을 사진에 담기도 할텐데... 자연 파괴일까?

성인봉 꼭대기에서 미륵봉, 나리분지, 알봉분지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내려간다. 흙으로 터를 다져놓은 전망대 앞에는 섬조릿대가 키자랑 하듯 서 있고, 가을이면 마가목의 빨간 열매가 유혹한다. 안개가 걷히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보면 배가 고프고 멀미까지 나려고 한다. 그때, 잠깐 안개가 걷히고 해가 반짝 뜨면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다. 발 아래 펼쳐진 단풍바다. 그 단풍바다는 그대로 몸을 날려 풍덩 빠지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성인봉에서 내려올 때는 원시림으로 가득한 나리분지 코스를 택한다. 그런데 나리분지쪽은 온통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져 오르기는 힘들고 내려가기는 수월하다. 산등성 중간에 가운데가 뻥 뚫린 섬피나무 고목을 만난다. 세월에게 몸피며 속알맹이를 전부 내주고 껍질로만 서 있는 것이다. 성인봉이 원시림인 까닭을 온몸으로 증명해주는 나무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섬피나무 같은 몇 아름씩 되는 나무들 뿐이다. 

섬조릿대 두른 전망대에 펼쳐진 단풍바다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중간에 다시 한번 미륵봉, 나리분지, 알봉분지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다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하와이 카우아이섬은 저리 가라할 정도이다. 나리분지를 넘어 멀리 솟아있는 송곳봉이 아스라한 꿈속처럼 밀려든다. 신령수까지 연결된 등산로를 따라 즐겁고 행복한 산행을 마무리한다. 
 
“성인봉(聖人峰)이여! 동해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아 마땅한 봉우리여! 가을 단풍으로 곱게 물들면 천하절색 미인이 따로 없고,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하와이 카우아이섬 조차 저리 가라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인봉이여!”




시집 '코피의 향기'를 쓴 시인 한도훈입니다. 어린이소설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를 우리나라 최초로 집필했습니다. 부천시민신문, 미추홀신문, 잡지 사람과 사람들을 통해 언론인으로써 사명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콩나문신문에 '부천이야기'를 연재하고 있고, 울릉도, 서천, 군산, 제주도 등지의 여행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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