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법 개혁' 광해의 평창서 가을난장

[북한산둘레길③] 참나무숲 ‘명상길’ 및 도성연결 ‘평창마을길’ 7.4km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2/10/24 [01:07]

'대동법 개혁' 광해의 평창서 가을난장

[북한산둘레길③] 참나무숲 ‘명상길’ 및 도성연결 ‘평창마을길’ 7.4km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2/10/24 [01:07]
조선왕조의 시작을 알린 첫 왕비의 혼이 서린 정릉. 북한산둘레길 세 번째 여행을 시작한 곳입니다. 왕조 후반기 세정문란을 바로잡으려는 광해군의 ‘개혁 대동법’ 상징인 ‘평창’ 구석구석을 둘러봤습니다. 참나무 울창한 명상길을 지나 풍광 화려한 마을길을 걸으며 여행자들은 가슴 한가득 예쁜 가을을 맞이했답니다.

정릉 청수장 종점에 여행자들이 모인 건 지난 13일 정오가 다 돼가는 때였습니다. 두 번째 여행부터 나오기 시작한 최광신 선생이 보자마자 대뜸 “기다리기 지루하니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 합니다. 희한하게도 낮술로 시작한 여행입니다.

일곱이 발을 맞춰 참나무숲 울창한 4구간 ‘명상길’에 올랐습니다. 이름값을 하는 것일 테지요? 참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잠시 둘러서, 조선 첫 왕비였던 신덕왕후 강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3대 임금으로 이어지는 방과(정종)·방원(태종) 6형제의 친모인 신의왕후 한씨(왕조 건립 전 사망)에 이은 비운의 계비 생애를 숙연하게 기렸습니다.

정릉, 비운의 신덕왕후 기리고...

태조의 사랑을 받았던 신덕왕후. 방번, 방석, 경순공주를 낳았고 8번째 아들(자신이 둘째) 방석을 태자로 앉히려다 방원이 주도한 ‘왕자의 난’으로 두 아들을 잃었고 경순공주 마저 불교에 귀의하는 걸 겪었던 비운의 왕비. 사후 정동에서 정릉으로 쫓겨 온 것도 모자라 2백년이 넘게 종묘제례조차 못 받았으니 박복이라고 해야 하나요?

▲ 여행자들이 걸음을 뗍니다. 느림보 여행을 하면서 달려갈 때 못봤던 세상만사를 보고 느끼려는 것이지요. 고은 시인의 싯귀처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최방식 기자

▲ 평창동까지 이어지는 참나무 숲에는 이고들빼기, 벌개미취, 꽃향유, 쑥부쟁이 등 가지각색의 가을 숲(들)꽃들이 어여쁜 자태를 뽐냅니다.     © 최방식 기자

궁금했던 마을 이름도 하나 둘 아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다고 해 붙은 ‘기리묵골’을 한자음으로 고쳐 쓴 길음(吉音, 긴 계곡에서 사시사철 물소리를 들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한자음 풀이). 커다란 바위에 작은 돌을 나이수대로 문질러 붙였을 때 달라붙으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의 ‘부암’(付岩). 신덕왕후의 능을 세워 붙은 ‘정동’(貞洞, 중구).

평창동까지 이어지는 참나무 숲에는 이고들빼기, 벌개미취, 꽃향유, 쑥부쟁이 등 가지각색의 가을 숲(들)꽃들이 어여쁜 자태를 뽐냅니다. 여행자 눈높이의 조무래기 졸참나무부터 높이 파란 가을하늘을 가리고 버텨선 상수리나무까지 온갖 참나무가 가을 향을 풍기고 서있습니다.

김명희 선생의 숲 생태이야기는 북한산둘레길 문화역사여행의 인기품목이 됐습니다. 숲속 나무, 풀, 꽃으로 이어지는 해설은 이제 여행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 학교 교사답게 숲 전문서적을 배낭에 가지고 다닙니다. 배움의 여행인 것입니다.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는 만큼 깊이 볼 수 있다’면서.

형제봉 들머리까지 이어지는 명상길. 2.4km로 1시간 남짓 걸으면 됩니다. 그러다 어느 널따란 바위 위에 앉아 일행은 점심을 들었습니다. 가래떡, 과일, 커피와 차, 김밥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음식을 즐기고 앉았는데, 김명희 선생이 ‘창’을 하겠다고 합니다.

애초 다른 한 분이 시를 낭송키로 했는데 불참했고. 춘향가 중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뽑아냅니다. “사랑, 사랑, 내~사랑~이야...” 흥에 겨웠는지 박혜숙 선생이 벌떡 일어나 춤을 춥니다. 남은 일행은 ‘추임새’로 흥을 돋우고. 이거야 말로 때 아닌 산중 난장 아니오리까.

▲ 북한산둘레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습니다. 하늘 위로 병풍처럼 둘러친 봉우리들과 그 아래로 울창하고 화려한 계곡. 멀리 보현봉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 최방식 기자


다시 길을 나섭니다. 앉았던 바위에서 20여미터를 내려왔을까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납니다. 구복암(龜福庵)이라고 쓰였네요. 그러니까, 하마와 거북을 닮은 바위가 서있고 그 사이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 밑에 감실을 내고 그 곁에 칠성각을 세운 암자입니다.

“사랑, 사랑 내~사랑이야, 얼쑤~”

▲ 평창동 샛길 담벼락에는 벌써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나들이를 나온 여인은 담쟁이만큼이나 수줍은 모양입니다.     © 최방식 기자
여행자들은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누구 할 것 없이 떠올린 노래였죠. 90년대 노래패 ‘꽃다지’가 불러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곡. 당시 작곡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뒷날 유인혁으로 드러났죠. 지금 1세대 사회적기업 ‘노리단’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안석희씨의 다른 이름. 쓰레기를 재활용한 악기로 연주하는 퍼포먼스 그룹을 이끈답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 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리/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며/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 꾸나.”

때 아닌 합창을 마친 여행자들이 주변의 눈총에 쑥스러워하며 숲을 막 벗어나니 신작로가 길게 이어집니다. 평창마을길이 시작된 것이죠. 5km가 넘게 이어지는 구간인데, 마을과 숲의 샛길입니다. ‘부촌’(?)의 천태만상을 낱낱이 구경할 수 있는 재밌는 길입니다.

여행자들은 가을 평창동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습니다. 하늘 위로 병풍처럼 둘러친 형제봉, 보현봉, 문수봉, 비봉 등 한북정맥 북한산자락. 그 아래로 울창하고 화려한 숲과 계곡. 그리고 여기저기 흡사 고대광실(高臺廣室)과도 같은 멋진 주택들의 이어짐.

여행자 한 명이 ‘배 아픈 구간길’이라고 별칭을 지었습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고 하듯이요. 화려하고 거대한 별장들을 보니 정말 그런 것일까요? 순간 골목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옵니다. 여행자들이 다가가도 놀라지도 않습니다.

▲ 평창동 둘레길을 가는 고된 여행자들이 길가에 걸터앉았습니다. 지친 몸을 쉬어가려는 것이지요. 마을도 보고, 지나는 다른 여행자도 보면서요.     © 최방식 기자


여행자 한 명이 다시 한마디 던집니다. “이래봬도, 나 평창동 고양이야.” 거들먹거리는 듯 해 해본 소리라면서요. ‘배 아파’(?) 하던 여행자들 모두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평창동스타일’ 춤이라도 추는 듯이요. 이런, ‘무례한 여행자들’의 모습 아니고 뭐겠습니까?

‘평창’(平倉)은 조선역사에선 아주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죠. 세정문란을 바로잡으려고 광해군이 시작한 ‘대동법’. 그렇게 거둬들인 ‘대동미’를 보관하던 선혜청(宣惠廳)의 가장 큰 창고 ‘평창’이 있던 곳이니까요. 조선 중기 문란해지기 시작하는 정치를 바로잡으려던 개혁정치의 상징이었던 셈입니다.

“이래봬도 나, 평창동 고양이야”

▲ 담쟁이 넝쿨이 담벼락을 타고 가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캔버스를 수놓는 화가의 붓놀림이나 물감도 이보다 더 고혹적이지는 않을 테지요?     © 최방식 기자
오랜 왕조,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배계층의 수탈. 후한(後漢)의 부패한 황실과 환관들에 분노해 터진 황건적의 난, 조선후기 정치 및 세정 문란에 저항해 일어선 동학농민운동이 그래서 생겼지요. 고대·중세로 이어지는 왕가의 세법은 ‘조용조’(租庸調). 토지, 사람, 가구에 각각 부과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전세, 군역(또는 신역), 공납이라는 이름으로 부과했죠.

가장 말썽거리는 공납. 호별로 부과되다보니 빈부구별 없이 똑같이 내게 돼 있어 가난한 백성을 수탈하는 도구로 악용됐죠. 관리들은 상공(常貢), 별공(別貢) 등 수천가지 공납을 책정해 백성들을 괴롭혔고요. 때문에 집을 버리고 유랑하거나 노비가 되는 백성들이 많았죠.

그때 나온 게 대동법. 선조 때 율곡이 ‘대공수미법’으로 추진했고, 아들 광해군이 대동법으로 시행한 것이죠. ‘공납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납부 품목을 일원화하고, 부과 기준을 토지로 단일화한 것이죠. 관리와 사대부들에겐 눈엣 가시였을 테지만요.

여행자들은 3시간여 평창마을 구석구석을 돌았습니다. 6구간은 그게 전부였던 것입니다. 끝은 구기동(옛터골)으로 이어지는 계곡. 구기터널까지 마을과 집들이 늘어서 있고요. 뒤풀이 장소를 찾고 있는데, 뒤늦게 평창마을길을 좇아 따라잡기를 한 지각 여행자가 나타납니다.

이어진 우연.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 듯. 그냥 들어가자고 해 그리했는데, 솜씨가 좋은 음식점입니다. 비빔밥, 순두부찌개, 빈대떡, 그리고 막걸리 한 잔씩 따라놓고 마주 않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뒤풀이가 더 흥미진진할 정도. 이번엔 장석희 선생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 숲속 나무, 풀, 꽃으로 이어지는 생태해설은 여행자들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학교 교사인 여행자 한 분은 전문서적을 배낭에 가지고 다닙니다. 배움의 여행인 것입니다.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는 만큼 깊이 볼 수 있다’면서.     © 최방식 기자
▲ 저 멀리 서울도성의 주산 병풍이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북악산(오른쪽 끝)에서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이어진 능선. 북풍을 막아주는 서울의 ‘장풍’ 능선 뒤에서 보니 색다르군요.     © 최방식 기자


청년시절 노동운동을 했다고요. 최근까지는 사회적기업을 해왔고. 의정부에서 국수집을 운영하며 노인돌보기 사회활동을 했답니다. 노동자 몇이 마련한 종자돈으로 국수집을 냈고, 그걸 운영해 남는 돈으로 한 달에 2번 수백명의 노인에게 무료 음식을 베풀고. 국수집은 일자리나누기 사회적기업으로 열매를 맺고요.

“나도 잘하는 게 있기는 있네...”

장 선생의 인생사를 엿듣다 날 저무는 줄도 몰랐습니다. 술기운도 거나해졌고요. 건강한 사회를 꾸미려고 청춘을 받쳐 헌신 봉사한 이에게 여행자들은 박수로 격려했습니다. 또 다른 사회적기업(협동조합)을 구상하고 있다는데, 참여나 후원할 이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지를 다니며 지녔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노심초사는 사고를 부르기 마련. 일찍 도망가려다, 마음에 걸려 ‘회군’에 ‘2차’에 나서고. 그 다음엔, 후회막급뿐이었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최광신 선생. 그가 여행 중 건넨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라는 말이 취중 떠오릅니다. 술·담배는 잘 하지 않느냐 했더니 글쎄 이러더라고요. “아, 그러네. 내게도 잘하는 게 있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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