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尋牛)여행’ 이카루스 다시 깨우다

18.6km 서울성곽길 문화역사여행④ 장충체육관~남산~숭례문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2/08/29 [09:51]

‘심우(尋牛)여행’ 이카루스 다시 깨우다

18.6km 서울성곽길 문화역사여행④ 장충체육관~남산~숭례문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2/08/29 [09:51]
서울성곽여행을 마쳤습니다. 네 번에 걸친 한양도성 돌아보기, 두 달이 걸렸네요. 걷다가 놀다가, 웃고 땀 흘리고 수다 떨며 무더위조차 잊었습니다. 얻은 게 뭐냐고요? 글쎄, 아무것도 없는 데... 버리려고 나섰으니. ‘소’를 찾아 나섰지만 ‘소’도 ‘집’도 사라져버린 ‘심우(尋牛)의 방랑길’. 여정의 끝, 남대문시장 어딘가에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동행자들이 둘러앉았습니다. 그리곤 또 다른 여행을 꿈꿨습니다. 자승자박의 미노스궁에 갇혔다 자유를 찾아 훨훨 날지만 ‘한낮의 꿈’으로 그친 ‘이카루스’를 애달파하는 다이달로스를 추모하면서요.

팔월의 마지막 토요일. 가을이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를 갓 넘긴 날. 여행자 열한명이이 장충체육관 앞 지하철 나들목에 모였습니다. 하눌님도 무심하시지. ‘호미걸이’를 마치고 이제 막 구부정한 등을 펴 맑은 하늘을 기다리는 농부의 속타는 마음도 모르고. 처서비에 큰애기 울고 간다는데, 여행자까지 울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약속시간을 놓쳐버린 미안함에 전철을 내려 택시를 타고 골목길 막주행(기사님 고마워요^^*) 끝에 헐레벌떡 지하도로 뛰어드니 여남은이 모여 수다삼매경입니다. 평소 ‘남의 티’ 질타에 맛 든 기자. 이번엔 제가 딱 걸렸습니다. ‘제 눈 들보’의 흉측함을 봤으니까요.

‘큰애기 울고간다’는 처서비 속 여행길

막 걸음을 떼는데 빗줄기가 거세집니다. 숲길에서는 대게 반절은 나뭇잎이 가려주고 남은 반은 땀을 씻어내며 증발하니 웬만한 비에는 그냥 다니는데, 여긴 좀 다릅니다. 도심 성곽길이니 그런 거지요. 장충공원 언덕을 오르는데 모자 벗은(?) 장충체육관이 적나라합니다.

리모델링을 한다고 지붕을 벗겨놨는데, 제 속살을 드러낸 게 부끄러운 모양. 박정희 정권이 그리고 전두환 정권이 그 안에서 저지른 수치를 들켜버리기라도 한 듯, 사죄의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습니다. 99.92%. 5·16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 72년 유신헌법을 만들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장기집권을 노골화한 8대 대통령 간선투표 결과는 제적대의원 2359명 중 2357명 찬성이었습니다.

▲ 박정희·전두환 독재가 제 안에서 저지른 ‘반역의 역사’가 수치스러운 듯, 장충체육관은 몸뚱이를 적나라하게 발가벗겨놓고 눈물을 뚝뚝 흘립니     ©이규호

▲ 명성황후를 지키다 일제가 고용한 낭인들에게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위로하려고 지은 장충단. 그 걸 헐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당을 만든 일제. 박문사(博文寺)에 영빈관을 지어 사용하다 재벌에 팔아버린 정권. 기모노는 되고 한복 출입은 막는 호텔이 거기 들어서 있으니...     © 이규호

네 번째 여행은 수치와 오욕의 눈물이 스민 길을 잇고 또 이어 갑니다. 서울도심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신라호텔. 이제는 성곽 안쪽을 제 땅으로 만들어 놓고 여행자들에게 “여긴 사유지니 조용히 지나가시길 바란다”는 안내문까지 내어 건 그들. 주인들에게 어떤 연유로 이런 협박(?)을 하는 건지.

명성황후를 지키다 일제가 고용한 낭인들에게 황후와 함께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궁궐 신하들과 호위무사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고종이 지은 장충단. 사당을 헐고, 벚꽃을 옮겨 심고, 마침내 남소문동천 동편자락을 송두리째 헐고... 안중근 의사에게 총맞아 죽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사당을 만든 일제. 그 박문사(博文寺)에 영빈관을 지어 사용하다 삼성에 팔아버린 정권.

고급 레스토랑에 기모노를 입고 들어가는 건 허용되는데, 한복을 입고 들어가면 가로막는 회사는 어떤 전통과 문화를 가졌을까요? 호텔 정문이 왜 경희궁 정문과 유사한지, 영빈관이 왜 궁궐 전각과 유사한지, 이 땅 주인인 한국인들의 공유 문화유산이 어떻게 파괴되고 재벌 손에 넘어갔는지, 끝 모를 아픔을 주체할 길 없습니다.

사유지라는 경고문구가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성곽 안쪽 숲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얼마나 매료됐는지 비가 그쳤는데도 우산을 쓴 동행자가 여럿이었습니다. “비 안 온다”는 소리에 멋쩍게 우산을 접었습니다. 호텔 울타리를 넘으니 거기부턴 또 서울클럽 사유지라고 합니다. 성곽바깥 길을 걷기로 하고 암문을 빠져나갔습니다.

‘99.92% 수치’ 사죄하듯 장충체육관 ‘눈물’

신당동 넘어 강동·성동 도심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비겐 뒤 영롱한 서울 동쪽 하늘은 앙증맞은 동자승 얼굴입니다. 다투고 성내며 외면했던 서울사람들. 남보다 좀 더 많이 먹고 조금 더 차지하겠다고 이웃을 제치고 속이며 따돌려온 경쟁의 달인들. 그 탐욕의 등짐이 버거워, 조금만 내려놓으려고 여행길에 나선 자신을 가만히 되돌아봤습니다.

자유센터와 반얀트리클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곽마루. 한양도성은 다시 끊겼습니다. 호텔·스파, 그리고 골프·테니스 연습장으로 빼곡히 들어찬 남산 동쪽 기슭. 독재정권의 반공상업주의가 엄습해옵니다. 64년 반공센터로 건립돼 몇 년 뒤 부동산업자 손을 거쳐 이젠 6성급 호텔(위락시설)이 된 반얀트리클럽.

▲ 호텔·스파, 그리고 골프·테니스 연습장으로 빼곡히 들어찬 남산 동쪽 기슭. 64년 반공센터로 건립돼 몇 년 뒤 부동산업자 손을 거쳐 6성급 호텔(위락시설)이 된 곳. 독재정권의 반공상업주의가 엄습해옵니다.     © 이규호

▲ 남소문동천, 묵사동천, 그리고 쌍리동천으로 이어지는 남산의 자연 계곡들이 일제·독재정권, 그리고 그들로부터 적산불하 받은 자들의 훼손으로 사라져버린 곳. 군부대가 옮겨간 자리엔 이제 남산 한옥마을이 들어앉았습니다.     © 이규호


‘조용히 지나가 달라’는 호텔 마당의 문구는 또 한번 치욕스러웠습니다. 부자의 땅을 밟고 지나는데 도둑고양이마냥 왜 그리 오금이 저리는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고관대작이었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었을까요?

호텔 안마당을 가로질러 장충단길을 건너 국립극장. 수백미터 성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반공센터와 자유센터를 건립할 때 그리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유지라 문화재 발굴작업도 자유롭지 않다니 참 ‘거시기’ 합니다. 반공으로 시작해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한 현대사의 씁쓸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겁니다.

남산 동쪽 기슭. 순환도로를 걷다 성곽이 보여 숲 언덕으로 좇아 오르니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남산에서 처음 봤습니다. 구간마다 표지석(축성 일자와 책임자 이름을 새겨놓은)이 있는 걸로 봐선 처음 축성한 게 거의 그대로 보전된 모양입니다.

남소문동천, 묵사동천, 그리고 쌍리동천으로 이어지는 남산의 자연 계곡들이 일제·독재정권, 그리고 그들로부터 적산불하 받은 자들의 훼손으로 사라져버린 그 곳. 일본의 조계사자리를 넘겨받아 캠퍼스를 넓혀 남산 북동기슭 일대를 뒤덮은 동국대도 그 중 하나.

3백여미터 가파른 성곽길을 올랐습니다. 남산 동쪽(마제, 말발굽처럼 생겨) 봉우리에서 서쪽(잠두, 누에머리처럼 생김) 봉우리로 이어지는 계곡길을 30여분 걸었습니다. 여행자 한 분이 숲 전문가였기에 재미있는 생태이야기를 즐겼습니다. 어디서나 만나는 나무와 풀, 늘 마주하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공에서 천민자본주의로, 씁쓸한 남산...

싫은 엔진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서 보니 전기충전을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매연까지 얼굴에 뿜어대면 참 얄미울 뻔 했습니다. 중국, 일본 말투의 많은 관광객들이 N서울타워를 오르느라 힘들게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타워 2층 난간에 섰습니다. 큰 키의 타워가 금방이라도 넘어올 기셉니다. 여행자들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건 열쇠꾸러미. 맹꽁이들이 주렁주렁 난간을 모두 꽉 채웠습니다. 연인들의 소원을 떠받든 육중한 자물쇠들. 이제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나 눈에 띄는 것들이죠.

▲ 남산 동쪽 기슭. 순환도로를 걷다 숲 언덕에 오르니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남산에서 처음 봤습니다. 구간마다 표지석(축성 일자와 책임자 이름을 새겨놓은)이 있는 걸로 봐선 처음 축성한 게 거의 그대로 보전된 모양입니다.     © 이규호

▲ 여행자들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맹꽁이 열쇠꾸러미들. 연인들의 소원을 떠받든 육중한 자물쇠들. 세계 어디를 가나 눈에 띄죠. ‘사랑의 자물쇠’를 묘사한 소설과 영화를 보고 ‘따라쟁이’들이 퍼뜨린 문화. 디지털시대, 영상미디어의 위력을 절감합니다.     © 이규호


‘사랑의 자물쇠’가 맨 처음 등장한 건 2006년 이탈리아 소설. ‘난 널 원해’ 속 한 쌍 연인이 로마 북부 밀비오다리 가로등에 자물쇠(체인)를 매달고 사랑을 약속한 뒤 열쇠를 강물에 던지는 장면. 이듬해 영화로 제작되며 ‘따라쟁이’들을 자극했죠. 파리에도, 모스크바에도, 도쿄에도, 제주에도, 광한루에도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영상미디어의 위력을 절감합니다.

문제는 쇳덩이 무게. 밀비오다리에서는 그 무게를 못 버텨 가로등이 2개나 무너졌다고 하던데. N서울타워도 건물이 가라앉을 것을 우려해 정기적으로 조금씩 떼어내고 있답니다. 사랑의 맹세와 징표가 그렇게 사라지는 줄은 몰랐겠죠? 자물쇠를 채놓고 약속을 못 지킨 이들은 또 어떡한답니까?

여행자들은 타워 곁 팔각정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제사를 지내려고 국사당(國祀堂, 목멱신사)을 세운 자리.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위에 있으면 안 된다며 헐어버리고 조각을 가져다 인왕산 골짜기에 짜맞춰놓은 국사당(國師堂). 무학대사의 사당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산 위엔 정체불명의 팔각정이 들어서고.

국사당을 옮겨버린 자리엔 해방 뒤 독재자 이승만이 자신의 호를 따 ‘우남정’을 지었답니다. 4·19때 부셔버렸는데, 박정희 정권이 다시 복원해 놓았지요. 그 뒤 팔각정이라고 부른다니. 정보통신 역할을 스마트폰에 내주고 우두커니 서있는 곁의 봉수대가 ‘썩소’를 날립니다. “거긴 네 자리가 아냐.”

‘사랑의 자물쇠’, 따라쟁이들의 작품

봉수대 넘어 꾸역꾸역 허공을 가르며 다가서는 무엇. 60년 역사의 괴물 케이블카입니다. 62년 처음 오르내릴 땐 '삭도차(索道車)'라고 불렸다는데. 동아줄을 길 삼아 가는 차. 밀가루 만들어 파는 장사꾼이 돈벌이를 시작했다는데, 그 어떤 ‘권력 끈’이 있어 이런 사업을 시작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숭례문까지 이어진 돌계단, 꽤 지루합니다. 산속 아름다운 성곽길을 대리석으로 꾸며놓으니 이런 부조화가 어디 있으리까. 구두신고 오르라고 만들어놓은 거죠. 숲길 ‘뚜벅이’들 한 테는 정말 싫은 길이죠. 30여분을 내려왔을 겁니다. 평평하게 지반을 다져놓은 자리. 일제가 강점기 때 조선신궁을 조성했던 곳에 서니 눈이 흐려집니다.

▲ 국사당을 헐어버린 자리. 이승만이 제 호를 따 지은 ‘우남정’. 4·19때 헐렸지만 박정희 정권이 다시 복원, 팔각정이라고 불렀다니. 정체불명의 건물 말고, 국사당을 다시 옮겨놓으면 좋겠습니다.     © 이규호

▲ 일제가 조선신궁을 조성했던 곳. 남산 서북자락을 발가벗기듯 헐어내고 세운 치욕의 건축물. 매년 수백만명씩 강제 동원해 머리를 조아리게 했던 만행을 알 리 없는 여행자들은 먹먹한 가슴을 안고 계단길을 내려왔습니다.     © 이규호

숭례문에서부터 거기까지 남산 서북자락을 발가벗기듯 헐어내고 반듯하게 계단을 만들고 그 위 넓은 기단위에 세운 조선신궁. 조선인들을 닦달해 매년 수백만명씩을 동원, 강제로 머리를 조아리게 했던 일제. 그 만행을 알 리 없는 여행자들은 먹먹한 가슴을 안고 계단길을 내려왔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러 30여분. 강점통치 기반을 닦았던 이토 통감을 처단했던 기개 앞에 잠시 숙연한 마음. 이어지는 백범광장. 이승만 광장을 폐하고 만들었다니 역사바로세우기가 조금은 진척이 있었나요. ‘양복차림에 하얀 운동화’ 같다고나 할까? 600년 성곽 끝에 새 돌로 축조해 덧붙여 그런지 어색하기만한 남은 성곽길을 따라 숭례문까지 내려왔습니다.

19km 서울성곽길 순례를 그렇게 마쳤습니다. 동행자들의 자그마한 박수소리와 함께. 경쟁해야 한다고, 바쁘다고, 일없다고, 관심없다고 외면하고 눈길을 주지 않았던 서울. 거기 바람과 구름, 산과 강, 사람과 동식물, 그리고 마을과 길이 있었습니다. 그냥 조금 느리게 걸었을 뿐인데,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느림보 되니,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는...

삶과 그 이야기. 느림보가 되어 맛보는 소소한 일상. 입이 근질거려 이웃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그저 몇 발짝 더 가봤죠. 유용한 지식이나 경험 또는 추억 따위를 만들자는 건 아니고요. 입이 열리고 길이 트인 것 말고 뭘 더 바라리까? 탐욕에 녹아내려 잠든 이카루스를 깨워, 그냥 훨훨 날아보기만 하려는 건데. 여행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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