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빈대공부, 나 여행하는 거 맞아?

[동남아일기17] 모기에 이어 빈대와 씨름, 자료정리 숙제는 언제...

윤경효 | 기사입력 2009/10/19 [14:42]

때아닌 빈대공부, 나 여행하는 거 맞아?

[동남아일기17] 모기에 이어 빈대와 씨름, 자료정리 숙제는 언제...

윤경효 | 입력 : 2009/10/19 [14:42]
‘스스슥, 스스슥.’ 환각인가? 온 다리에 빈대(bedbug)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 꿈속을 헤매는 와중에도 다리에 행여 뭔가 느껴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매트리스에 약품을 뿌리고 침대시트와 담요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음에도 다시 나타났다. 모기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이번엔 빈대다. 한 달 동안 벌써 4번째다. 젠장... ㅠ.ㅠ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효과가 없다.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룸이 워낙 많은 여행자들이 오가는지라 빈대에 오염되기 쉬워 그러려니 하고 3번째까지는 웃어 넘겼는데, 한 달 사이 4번이나 뜯기고 보니, 웃을 수가 없다.

▲ 겉보기에는 참 깨끗한 게스트하우스. 어느 날인가 하우스메이드(Housemaid)가 침대 정리할 때 기존 손님이 사용했던 담요를 깨끗하다며 바꾸지 않고 새것인양 그냥 놓아두는 것을 보고, 뭐라 한마디 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이주노동자에, 쉬는 날도 없이 일 하는 게 안쓰럽고, 행여 매니저한테 이 일로 핍박 받을까 걱정해서 넘어갔는데, 지금 후회하고 있다. 4군데의 빈대 물린 자국은 내 선택에 대한 대가일지 모른다. 헐~     © 윤경효

 
그 동안 방에 빈대가 출현하면 모든 옷감종류에 옮겨 붙기 쉬우니 내 침대뿐만 아니라 룸메이트들 것도 한꺼번에 모두 새 것으로 바꾸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여러 번 말했었는데, 말로만 바꿨다 하고 사실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어제 확인하고 나서 잠시(?) 화가 났었다.
 
“이번엔 빈대, 한달 사이 4번...”
 
사무실에 나가느라 바꾸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매니저의 말을 믿었는데, 그 동안 ‘눈 가리고 아웅’했다고 생각하니, 괘씸하기 그지없다. 1달 넘게 같이 지내고 있는 샨티는 내가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살짝 눈치까지 볼 정도였으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그냥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될 것을, 왜 한 달 동안 머물면서 물어뜯기며 기분 상하는 꼴을 보는 지,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웃기는 년이다. 헐~ 방값 할인 받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나 개인적으로는 문제해결이 되지만, 그런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저 개인적인 일로 치부해버릴 수가 없었다.
 
▲ 흰 노트 위의 빈대(출처,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Bedbug)와 빈대에 물린 자국. 모기와 달리 빈대는 한 번에 줄줄이 사탕처럼 문다. 빈대 생태에 대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게 될 줄 몰랐다. 쯥... -,.-;; 놀라운 사실은 이놈들이 따뜻한 곳을 좋아해서 몸이 더운 사람이 더 물리기 쉽다는 것. 더운 몸에 달콤한(?) 피를 가져 ‘모기’에게 사랑받는 나는 그들에게도 잇걸(it girl 아닌 eat girl)인 셈. 이놈의 인기는 빈대에게까지 뻗치는 구나! 헐~     © 윤경효


알고 봤더니, 빈대에 물렸음에도 어차피 다음 날 떠날 거니까 또는 귀찮아서 얘기하지 않은 여행자들이 많았고, 어떤 이는 방 바꿔 달라 해서 본인만 쏙 빠져나간 이들도 있었다. 사실, 대단한 사회적 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그 피해자 중 한 명이고 보니, 앞서 빈대를 경험한 이들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편의만 생각한 그들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과 쓸데없는 감정소모는 하고 싶지 않아, 책임매니저와 독대해 일단 현재 발생한 빈대문제는 함께 머리 맞대 해결보기로 하고,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인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정도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눈에 진물 나도록 읽어치워야...”
 
개인적인 불만사항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관리체계측면에서 고민해달라는 의미로 얘기했는데 제대로 소통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남은 기간 동안 다른 곳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옮기는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9월 6일 일요일, 프랑스에서 온 루도(Ludo)와 베트남에서 온 닝(Nhien)과 함께 페낭 국립공원을 찾았다. 언니인 닝은 베트남에 있을 때 일본계 속옷회사에서 일하다 지금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중. 베트남에서 한국인 인상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상당히 긍정적. 베트남전쟁 때 악연도 있었지만, 이제 용서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숙여졌다.     © 윤경효

 
지난주에 요청한 ‘석탄화력발전소의 환경 및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헌 자료를 오늘 받았다. 9월 한 달 동안 석탄화력발전의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문헌자료를 조사해 정리해 주기로 했는데, 자료 확보하는 데만 2주가 지나가 버렸다.

다음 주에는 사라왁(Sarawak, 보르네오섬에 있는 말레이시아 영토 내 한 주)주에 있는 SAM 사무소에 가서 도서자료를 정리해 주기로 했는데, 이러다 보고서 작성을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부터 눈에서 진물이 나도록 모든 자료를 읽어 치워야겠지? 아~ 부담 ‘만땅’이다… 나, 여행하고 있는 거 맞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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