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종식’ 기여 70년 민주노조운동, 양극화·비정규직 해소에 힘써야

전태일 분신 50주기, 유신독재청산 과제 토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20/11/06 [10:28]

‘독재 종식’ 기여 70년 민주노조운동, 양극화·비정규직 해소에 힘써야

전태일 분신 50주기, 유신독재청산 과제 토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20/11/06 [10:28]

70년대 제조산업 여성노동자들이 앞장선 민주노조운동이 사회 지식인과 연대해 가혹한 탄압을 뚫고 유신 및 신군부 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정치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재벌·산업 자본 중심의 경제운영에 따른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양산으로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어 이를 해소할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유신정권의 폭압으로 노동현장에서 투쟁하다 해고·구속(일부 사망) 등으로 지금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이 필요하며,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청년노동자의 삶의 조건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지원 법제 마련 등이 절실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70년대민주노동운동동지회(회장 임현재, 이하 70민노동지회, 청계피복·동일방직·원풍모방·컨트롤데이터·YH무역 노조)가 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3간담회실에서 회원 및 관계자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70년대 민주노동운동과 유신독재 청산의 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강은미·배진교·심상정·이은주 국회의원과 유신청산민주연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자유언론실천재단, 전태일재단, 한국작가회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4·9통일평화재단,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이 주최했다.

 

YH무역·동일방직·원풍모방·청계피복 노조 톺아보기

 

임현재 70민노동지회장은 개회사에서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는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당시 친구의 죽음을 회고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청산되지 못한 유신독재의 뿌리를 뽑는데 당시 민주노조운동을 벌였던 우리들이 함께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함께 가자”고 당부했다.

 

▲ 70년대민주노동운동동지회(청계피복·동일방직·원풍모방·컨트롤데이터·YH무역 노조)가 5일 국회의원회관 3간담회실에서 '70년대 민주노동운동과 유신독재 청산의 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최방식 기자

 

‘유신시대 노동통제와 여성노동운동(YH사건을 중심으로)’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서아현(독립연구자)씨는 “근로조건 개선을 내세워 75년 여성노동자들이 설립한 YH무역노조가 현장 동료 남성 관리자들과 상급단체인 섬유노조의 배신(사용자 및 정보기관 내통), 사용자와 정부기관의 탄압으로 종교계 사회운동가와 연대해 지난한 투쟁을 벌였다”며 “노조활동을 강화하려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사회연대 및 의식화 노력은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정치투쟁으로 옮겨붙었다”고 진단했다.

 

서 연구자는 “구속 노조원 석방과 노조탄압 중단 투쟁 과정에서 노조 간부들은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일방직 똥물 사건, 고려대 노동연구소와 사회선교협의회·도시산업선교회 간부들과 연루됐고, 78년 폐업통보에 양당 및 각종 사회단체와 연대투쟁을 시작했다”며 “결국 내부의 결의 및 외부의 지원을 받아 79년 8월 신민당사 점거농성 과정에서 당국의 강제해산 및 김경숙 대의원 사망으로 부마항쟁의 불쏘시개, 박정희 피살에 따른 유신체제 종말에 이르는 징검다리가 됐다”고 언급했다.

 

서 연구자는 이어 “이처럼 YH무역 노조운동은 박정희 정권의 수출·산업 육성에 동원된 여성노동자들이 종교·학생 운동가와 연대해 사회·노동운동을 싹틔우며 유신체제 붕괴에 기여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며 “이런 여성노동조합 운동의 기반 위에 87년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질서 타파운동이 꽃을 피울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오빠·동생 학비벌이’ 여성노동자 떨쳐 일어서 단결

 

‘노동자의 유신독재 청산과제’(원풍모방·청계피복 노조활동 중심으로) 발제에서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조 대표(노동사 연구)는 “외국인투자기업 노조설립 제한 및 강제중재, 국가보위특별조치법을 동원한 단체교섭·노동쟁의 규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통한 노동3권 박탈, 노사협 및 기업별 노조 강제 등의 탄압을 뚫고 청계피복노조(70년) 원풍보방·동일방직노조(72년·민주화) 콘트롤데이타노조(73년) 등이 독립적 자주적 민주노조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들 독립·자주적 민주노조들은 △노동3권 억압을 뚫고 노동조건 개선 △각종 소모임 조직을 통한 활동과 교육(원풍모방의 경우 조합원 50% 이상이 72개 소그룹 참여) △구로동맹파업·5·3인천투쟁·블랙리스트철폐 등 다른 노조와 연대 및 사회운동 참여 △국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 활동을 벌였고, 마침내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동력으로 지금의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씨앗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또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유신독재 피해자 명예회복과 피해배보상 △유신독재가 남긴 제도와 인적 청산 활동 △기업별노조 청산 및 비정규직 포괄 산업별노조 전환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적 임금(무상 주거·의료·교육 등과 누진세·자본세·부유세 등 재원 마련) 확대와 비정규직 가산임금제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3세계 노동자와 이익분배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토론회를 마치고.  ©이대수 유신청산민주연대 운영위원장 


이어 청계피복노조 사례 발표에서 신순애 전 청계피복노조 부녀부장은 “50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동지가 ‘근기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분신한 뒤 2주만에 노조가 설립됐고, 그로부터 1달을 좀 넘겨 단체협약과 휴일근무제를 합의했다”며 “그 뒤 평화시장·동화시장·연쇄상가·을지상가·통일상가 등을 다니며 노조원을 확보하고 두 곳에 공부방을 만들어 각종 노동교실을 통해 사회운동가들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각종 구속 체포 등의 탄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노동3권 박탈 유신체제에 맞서 온몸으로 싸운 노동자

 

신 전 부장은 “75년 일요일 휴무제 관철, 76년 유니온샵(취업과 동시에 노조원 자격 획득)과 1일 8시간제 및 시간외 근무수당 확보, 76년 명절휴가 관철, 노동교실 강제폐쇄 저지 및 구속 이소선 여사(전태일 어머니) 석방, 80년 퇴직금제 확정(법상 16인, 단체협약상 10인), 80년 신군부의 노조 해산, 84년 ‘법외노조’ 결성 등으로 이어졌다”고 발표했다.

 

이은 동일방직노조 사례발표에서 정명자 동일방직해고자복직추진위원은 “일제강점기 때 5대 방적기업 중 하나였던 동양방적(인천공장)이 미군정과 정부 소유를 거쳐 55년 민영화됐고 66년 동일방직으로 바뀌었는데 73년 업계 최고 매출을 이룰 정도였다”며 “전평 산하 노조로 있다 61년 섬유노조로 편입돼 노동통제조직으로 있던 동일방직노조는 72년 국내 첫 여성 지부장을 배출하는 민주노조의 기틀을 잡았다”고 언급했다.

 

정 위원은 이어 “76년 대의원대회 방해와 지부장·총무 경찰 연행으로 탄압이 본격화 되자 노조는 전면파업을 벌였고 경찰기동대 투입에 나체투쟁을 벌이다 연행되는 사건이 있었다”며 “사측이 내세운 의문의 지부장을 쫓아내는 투쟁을 거쳐 이총각을 지부장으로 세웠으나 부당노동행위가 멈추지 않았고 78년 대의원대회장 똥칠(회사 남자대의원 동원)과 상급단체의 지부장 제명, 노동절 정부행사장 시위, 명동성당 단식농성, 124명 집단해고(78년)와 블랙리스트 배포, 노조 강제해산(80년), 복직투쟁(현재까지), 민주화운동 보상, 국가상대 소배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한상욱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두 축은, 유신독재와 싸우려고 공장 울타리를 넘어 학생·지식인과 연대하고 다수 노동대중이 단결해 노동자 정체성을 확보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늘의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을 만들었다”며 “유신독재가 막을 내린지 40년이 지났지만 청산은 미완이고 ‘노동민주주의’는 요원해 이를 잘 성찰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공장 넘어 연대·단결, ‘노동민주주의’ 초석 다진다

 

한 위원은 따라서 “△상징적 사건과 과정 특정 인물과 정치구조 속에 이뤄져온 70년대 노동운동의 다양한 업종 지역 활동을 발굴해 대중참여 과정을 보여주며 △여러 노동현장에서 벌어진 활동과 많은 이들과 집단의 행위를 기록하며 △개인 훈장이나 정치적 업적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집단의 기업으로 승화되고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해 ‘오늘의 전태일’ 목소리를 경청하는 노동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수 유신청산민주연대 운영위원장은 토론에서 “유신체제의 노동통제는 71년 국가보위특별조치법에 기반해 시작됐으며, 형식적으로 남아있던 노동3권을 통제하고 산업별 노조를 기업노조로 강제 전환시켜 정부·기업이 한 몸으로 자본주도의 개발독재 경제성장에 노동자를 세워 피와 땀을 가로채는 체제를 만들고 그 기득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연대와 사회개혁을 통해 민주적 노동현장을 만들고 사회발전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또 “노동자들이 지역사회 생협이나 시민단체에 참여해 연대의 지평을 넓히고, 귀촌귀농 등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며, 고령화사회에서 인생 이모작·삼모작을 준비하며 정치·사회·문화 권력 개혁에 적극 참여하고, 평등 사회를 이루는 데 힘을 보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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