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일상, 남은일 낼로 미뤄라”

[동남아여행15] 환경단체 CAP에서 ‘원주민토지권 상실’ 업무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9/19 [00:10]

“말레이시아 일상, 남은일 낼로 미뤄라”

[동남아여행15] 환경단체 CAP에서 ‘원주민토지권 상실’ 업무

윤경효 | 입력 : 2009/09/19 [00:10]
말레이시아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침 8시, 자명종 소리에 눈비비고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는 토스트조각과 원두커피 한잔으로 배를 채운 뒤 사무실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게스트하우스 맞은 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를 10~20분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말레이시아 남자들의 과도한(?) 친절을 때론 미소로 화답하거나 때론 무시하곤 한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쾌적한 피낭 고속버스(Penang Rapid Bus)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곳까지 15분 정도 달려가는 동안 차창 밖을 내다보면, 아침 영업을 시작하거나 출근에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생김새만 다르지,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오전 10시. 사무실에 도착해 서류더미를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점심때가 다 된다. SAM의 사무실에 자리가 없어 자매단체인 CAP(Consumer's Association of Penang: 피낭소비자협회) 사무실을 이용하고 있는데, 활동가들이 대부분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거나 도시락을 싸오기 때문에, 나 혼자 터덜터덜 사무실 근처의 유일한 식당을 찾곤 한다.
 
토스트에 커피한잔, 그리고 출근
 
식당에 갈 때마다 사무실 옆에 위치한 페낭주립모스크를 가로질러 가는데, 한번은 신발을 신은 채 모스크 뒷문 현관을 가로질러 가려다 할아버지 신도한테 혼난 적이 있어, 매번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한다. 헐~


▲ 조지타운의 르부출리아(Lebuh Chulia)거리(왼쪽)와 문화유산 건물들(가운데). 조지타운의 일부 지역은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지역이고, 믈라카에서와 비슷한 건물들과 배치를 볼 수 있다. 비 오는 날 아침 사무실근처 도로모습.(오른쪽)     © 윤경효

 
오후 5시. 활동가들이 하나 둘 퇴근하기 시작해서 5시 30분이 되니 어느새 사무실에는 5명 안팎의 사람들만 남아있다. 사무실이 주택가 외진 곳에 있어 어두워지면 길을 다니기가 위험하니, 6시를 넘기지 않기 위해 남은 일은 내일로 미루고 퇴근채비를 한다.

'남은 일은 내일로 미루다.' 한국에서는 항상 목욕하다 만 것처럼 찝찝했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헐~

현재 사라왁(Sarawak,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말레이시아의 한 주(State))주의 원주민 토지권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를 잠깐 돕고 있는데, 1994년~2002년까지의 토지법 및 산림법에 따른 사라왁(Sarwak) 주정부의 토지이용과 그로 인한 원주민의 토지권 상실현황을 정리하고 있다.

원래 토양쇠퇴(Soil Degradation)에 관한 보고서 작업을 배정할 예정이었다는데, 단체에서 담당자 배치 등 충분히 준비가 안 되어 1주일을 그냥 흘려보낸 끝에 결국 안 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 CAP 사무처 건물 출입구(왼쪽)와 내 책상(오른쪽). 두 개의 맨션건물을 이어 개조한 CAP사무처에는 50여 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는 곳. CAP은 환경문제를 소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연구·출판 및 교육·상담활동을 주로 한다.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서류더미들은 사라왁(Sarawak) 주정부의 1994년~2002년까지의 행정고시자료들. 토지이용에 관한 모든 내용을 따로 추출해 데이터로 정리해야 한다.     © 윤경효

일 미루기, 목욕하다만 찜찜함처럼...
 
사라왁주의 토지권 관련 정리 작업이 끝나면, 조홀(Johor, 말레이시아 남부에 위치한 주로 싱가포르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음)주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인근지역 환경피해에 관한 조사 및 보고서 작성이 기다리고 있다. 나중에 말레이시아 정부에 화력발전소에 대한 CAP의 입장문서로 제출할 예정이라니,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듯 하다.
 
퇴근길에 자주 가는 인도식당에 들러 흰밥과 볶은 야채, 계란부침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게스트하우스로 간다. 가는 동안에도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남성들의 시도에 또 시달린다. 조지타운의 르부출리아(Lebuh Chulia)거리에 워낙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이 근처를 다니는 말레이시아 남자들이 외국 여성여행자들에게 종종 과한 친절이나 작업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도착해 잘 몰랐을 때는 현지인의 친절에 그저 감사의 마음으로 환한 미소로 화답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그저 무시할 뿐이다. 황당한 건, 주로 중년의 남성들이 그렇다는 거. 말레이시아 친구가 그러는데 이쪽 동네 분위기가 좀 그렇다고. 주변에 홍등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런 저렴한 매너를 갖도록 하게 한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헐~

▲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중국계 말레이시안 앤지(Angie). 처음엔 생김새나 영어발음 때문에 말레이계인 줄로 알았다. 어느 하루 저녁식사를 함께 한 후에 장장 2시간 동안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보다 못한 웨이터가 계산서 들고 와 어서 계산하라며 반강제로 쫓아내지 않았다면, 아마 더 긴 시간을 보냈을 지도. ㅎㅎ... 작년에 새로운 삶을 찾아 직장을 그만두고 일과 함께 여행 중이라는 그녀는 이제 내 친구가 되었다.    ©윤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지낼 때 보다 생활경비가 더 들긴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Dormitory, 보통 4명 이상의 각기 다른 여행자들이 함께 거쳐하는 방)에서 지내며 버스 타고 사무실에 왔다 갔다 하기를 잘 한 것 같다.
 
‘과도한 친절’, 남자들 작업걸기?
 
인도네시아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부류의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만나 얘기할 기회가 많기도 하고, 보통 다른 사람들처럼 버스로 출퇴근하니, 버스가 늦게 온다고 그들과 함께 불평할 수 있어 좋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사적인 공간'에 대해서는 포기하긴 했지만, 책이며, 먹을거리, 속옷 등을 침대 위에 널려놓고 그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나를 보니, 딱 이 침대 크기만큼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와중에도 남들 눈에 잘 안 띄는 공간을 찾거나 방법을 찾는 것을 보면, 이것도 인간의 본능인가?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오늘 벌써 3번째 소나기다. 피낭에 온 후부터 일주일에 3~4일 하루 2~3차례씩 소나기가 오는 것 같다. 아침에 빨래해서 널어 놨는데, 비에 젖을지 모르니, 얼른 걷으러 가야겠다.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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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ne 2009/09/21 [00:14] 수정 | 삭제
  • 오늘 주소알려주셔서 찾아왔어요!ㅋㅋ페낭이 제일 익숙해서인지 뒤부터 보게 되네요ㅋ
    앞으로도 계속 좋은글 부탁드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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